재작년 미국의 전직 검사가 자신이 30년 전 사형을 구형한 사건에 대해 반성하는 내용의 사과문을 한 신문사에 보냈다. 그는 자신의 잘못된 수사로 3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고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출소한 뒤 병마와 싸우고 있는 피해자를 직접 찾아가 사과했다.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미국 사회가 박수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올해 초 삼례 나라슈퍼 사건 재판의 1심 배석판사였던 전직 판사가 오심 피해자들을 초대해 직접 사과했다. 그는 오심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죄송하다”고 말했고 이는 각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이들 전직 검사와 판사가 피해자들에게 한 사과가 왜 이렇게 이슈가 됐을까. 이런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검사가 잘못된 수사와 기소를 하고 판사가 잘못 판단을 했으면 그 잘못을 뉘우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 당연한 일조차 대단한 기사거리가 되는 게 우리 사법시스템의 실상이다.
얼마 전 ‘김제 가족 간첩단 사건’의 재심 선고가 있었다. 하지만 34년을 기다리다 무죄 판결을 받은 당사자들은 자리에 없었다. 세 명 중 한 명은 마지막까지 간첩이 아니라고 외쳤지만 끝내 사형집행을 당했다.
다른 한 명은 검사의 공소제기 후 구치소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나머지 한 명은 9년 감옥살이 끝에 풀려났으나 경찰의 집요한 보안 관찰 감시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이를 보도한 언론에서는 “그러면 다 끝난 것일까. ‘무죄’라는 추상적인 꽃다발을 부여받은 억울한 죽음들은 이제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인가. 고문조작에 개입한 수사관, 검사 등 그 어느 한 사람 처벌받지 않았다. 공소시효의 방패 뒤에 숨거나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강변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사법피해로 인한 억울한 죽음과 파탄난 가족들의 고통스런 삶을 호소하는 목소리는 여기저기서 들리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외면받기 일쑤였고 면허 받은 가해자들은 일말의 반성도 하지 않는다. 피해자는 거듭 나락으로 떨어지고 가해자는 처벌은커녕 오히려 승승장구하는 게 현실이다.
일찍이 사마천(司馬遷)은 이 같은 불공정한 세태를 두고 “하늘의 도는 옳은가 그른가(天道是耶非耶)”라고 한탄했다. 삶의 정도를 지키고 살아가는 사람이 오히려 벌을 받고 그렇지 못한 자들이 별 탈 없이 사는 불공정한 세태를 비판한 것이다.
그럼에도 사마천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역사의 기록을 남긴 것이다. 『사기(史記)』를 보면 「순리열전(循吏列傳)에 중국 진(晉)나라 문공(文公) 때 사법관(司法官)을 지낸 이리(李離)라는 인물의 얘기가 실려 있다. 사마천이 진문공으로 하여금 국법을 엄정하게 했다고 평한 인물이다.
그는 거짓말을 듣고 무고한 사람을 죽게 하자 스스로 투옥해 사형을 판결했다. 문공이 죄가 아니라고 하는데도 그는 문공의 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사법관에게는 법도가 있다. 형벌을 실수하면 자신이 형벌을 받아야 하고 사형을 오판하면 자신이 죽어야 한다”면서 “지금 거짓말을 믿고 사람을 죽였으니 그 죄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스스로 판결하고 칼로 자결했다.
사마천이 살았던 때가 기원전 2세기이고 이리가 살았던 진나라 문공 때가 기원전 7세기이니 지금으로부터 모두 2천여 년 전의 일이다. 비록 오래 전의 일이지만 법을 집행하는 자의 자세로 본다면 지금보다 못할 것이 하나 없다.
사법 개혁과 적폐 청산의 목소리가 높다. 정치에 줄을 대 혜택을 봤던 정치검찰에 대해서 확실히 책임을 묻겠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를 두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나왔던 얘기라며 굳이 폄하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번만큼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더 크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이리 정도는 아닐지라도 깊은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
이상호 /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