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시론

<泮村魯堂>추석, 유림(儒林)들은 안녕하셨습니까

김학경(문양서당 훈장) 풍요로운 중추가절(仲秋佳節), 우리 유림(儒林)들은 안녕하셨습니까.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정담(情談)을 나누셨습니까. ‘추석(秋夕)’의 다른 명칭인 ‘한가위’는 신라시대 때 길쌈놀이인 ‘가배(嘉俳)’에서 유래했다고 할 만큼 우리 민족의 대표 명절이다. 그런데 올해는 대체 휴일에 한글날 등 공휴일까지 겹쳐 거의 열흘간의 연

편집부 2017. 10. 8.

김학경(문양서당 훈장)

 

풍요로운 중추가절(仲秋佳節), 우리 유림(儒林)들은 안녕하셨습니까.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정담(情談)을 나누셨습니까.

‘추석(秋夕)’의 다른 명칭인 ‘한가위’는 신라시대 때 길쌈놀이인 ‘가배(嘉俳)’에서 유래했다고 할 만큼 우리 민족의 대표 명절이다. 그런데 올해는 대체 휴일에 한글날 등 공휴일까지 겹쳐 거의 열흘간의 연휴로 이어졌지만 언제부터인지 추석 명절을 맞아 차례상을 마련할 때마다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 비록 추석이 전통 농경 사회의 후퇴에 따라 사회적 의미가 반감되었다고 해도 조상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과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정담을 나누고 안부를 확인하는 자리의 의미마저 퇴색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가족이나 친척 간의 왕래마저 줄어들어서 4촌 형제간에도 못 알아 볼 정도로 소원해져 가는 세태(世態)를 극복하기 위해서 추석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추석 때만 되면 언론은 여성들의 지나친 가사 노동을 부각시키고, 가부장적 전통 사회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물론 전통 사회의 문제점은 개선하고 시대 요구에 맞는 행동 양식으로 바꿔야 한다. 하지만 많은 사회적 변화와 양성평등에 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추석 명절마다 되풀이되는 비판이 행여나 전통문화를 경시(輕視)하고 유교 의례(儀禮)를 폄하하는 의도로 비칠까 염려스럽다. 그나마 추석 같은 명절이 있어서 일 년에 두어 번 가족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게 되는 사회적 순기능을 긍정적 시각에서 보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런데 요즘은 가족들이 함께 모여도 서로 상대의 눈치를 살피며 대화를 해야 한다. 지난 연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세대 간, 가족 간 정치적 입장에 따른 논쟁이 가족 간 불화(不和)의 원인이 되고 심한 경우 오랜만에 만난 가족 간에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민주주의 사회는 다양한 정치적 입장이 공존하는 것이며 정치적 논쟁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고대 민주주의가 싹 텄던 그리스에서는 아고라(Agora)라는 광장에 모여 다함께 토론하고 정치적 논쟁(論爭)의 자리를 마련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정치적 의견 대립이 가족 간의 의(義)까지 상하게 하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 연말 촛불 집회로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촛불 집회에 대항하는 태극기 집회는 현재 진행형이다. 문제는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두 집단 간의 대화와 타협점을 찾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대화와 타협을 시도할수록 논쟁은 심화되고 집단 간의 감정과 갈등의 골이 심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모두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 부족에 있다.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논리와 불합리마저도 인정해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이상(理想) 정치가 아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Platon)은 민주주의를 중우정치(衆愚政治)라고 하였다. 중우정치는 말 그대로 어리석은 다수(多數)의 대중보다 현명한 철인(哲人)이 다스리는 사회가 이상 사회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성인(聖人)의 정치를 꿈꾸었던 유교의 이상 정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한때 세계의 경찰을 자임(自任)하던 미국이 트럼프와 같은 감정과 독선으로 혐오의 정치를 부추기는 지도자를 선택한 것도 미국 국민들이었다. 저성장, 불황, 실업 문제, 난민 문제 등이 대두되며 등장한 유럽의 극우(極右) 정치인들도 모두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택되었다. 하물며 탄핵으로 쫓겨난 박근혜 전 대통령도 국민들의 선택이었다.

이제라도 우리 유림들이 앞장서서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를 기반으로 상대를 존중하고 합리적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온 가족이 화합하는 화목한 명절, 국가 발전이라는 대의(大義)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다는 다원주의(多元主義)의 원칙이 존중되는 사회를 유림들이 선도할 필요가 있다. 유교의 민본정치(民本政治)도 기본적으로 위정자(爲政者)가 백성, 즉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의식의 발현(發現)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와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우리 유림도, 우리 사회도 안녕한 추석 명절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