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묘에서 최승교 전교와 장의 대표가 향에 불을 지피고 있다.
공묘에서 사배를 하고 있다.
공묘 참배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태산 등정 첫 관문인 천가문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삼척향교(전교 최승교) 장의 27명은 최승교 전교의 인솔로 지난 10월19일부터 10월22일까지 성지견학(聖地見學)을 목적으로 3박4일 동안 중국 곡부(曲阜)와 태산을 탐방하였다.
새벽 5시 죽서루 광장에서 최승교 전교, 84회 이응주 회장, 84회 장의 27명이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기대에 부푼 마음을 안고 13시30분 중국 청도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1시간 30분을 비행하고 청도공항에 도착한 후 관내의 청도박물관과 중국의 5․4 항일 기념공원을 방문하였다.
공항에서 관람지로 이동 중 청도시의 아픈 면모를 보았다. 청도시는 독일이 100년의 세월 동안 점령하여 통치한 결과 구 도심지는 독일식의 건물 일색으로 순수한 중국 본연의 모습은 전혀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또한 신시가지에 위치한 5.4 항일 기념공원은 젊은이들에게 선조들의 항일 정신을 계승하고자 조성하였을 것인데 그런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관광지로 전락하여 있어 아쉬웠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3.1 만세 운동과 중국의 5.4 항일 운동은 나라의 독립을 위한 민중의 봉기라는 동질성이 있어 그나마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청도시 방문 중 사람보다는 자동차를 우선하는 문화를 보았으나 교통 신호등에 대하여는 좋은 인상을 받았다. 교통 신호등은 우리와 같으나 신호등 색깔이 언제 바뀐다는 시간을 같이 표시하여 무질서한 가운데도 교통사고율이 높지 않음은 이 때문인 것 같았다.
우리나라도 청색서 황색, 황색서 적색으로 바뀔 때 이렇게 알려 준다면 운전자도 편하고 교통사고도 줄일 수 있어 보였다. 이런 신호등 운영 체계를 우리에게도 접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월20일 청도에서 400킬로 떨어진 곡부로 4시간 동안 열심히 달려갔지만 고속도로 주변에는 산이 거의 보이지 않아 과연 중국 땅은 넓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그런 가운데 옛 우리 조상들이 지배했던 만주 벌판의 넓은 땅을 보면서 중국이 지금은 '동북공정'이라는 미명하에 역사를 왜곡하여 자기의 주장을 합리화하는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쉽기만 했다.
드디어 곡부에 도착하여 곡부의 공자 유적의 모습을 보니 시간이 멈춘 것과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는 유적지가 오래되고 잘 관리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주요 유적지는 공묘·공부·공림 세 가지로 그 개념부터 알아야 할 것 같다.
공묘는 공자의 묘지가 아니라 공자께 분향하는 사당이다. 공묘의 특징은 건물이 3층이라는 점이다. 중국에는 그 누구도 2층에 살 수 없으며 황제만이 2층에서 살 수 있는데 공부가 3층인 것은 황제의 스승에 대한 예의를 표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공묘에는 향나무 고목이 많은데 어린 나무는 500년 오래된 나무는 2,000년이나 된다고 하니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짐작이 간다.
공부는 공자와 그 후손들이 살던 곳으로 그 특징은 모든 문과 문이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반드시 앞에 큰 벽체가 서 있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 사람들이 미신을 많이 믿는 관계로 귀신이 직접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벽을 세운 것이라 한다.
공부 내의 시설은 작고 간결하고 장식이 거의 없어 검소한 생활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부의 좁은 골목, 건물과 건물 사이를 거닐 때 옛 모습 그대로 보존하려고 노력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둥그런 출입문, 정원에 깔린 돌길, 빨간 기둥, 미로 같은 길을 걷다보면 내가 그 시대 사람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공림은 공자와 그 후손들의 묘소가 있는 숲으로서 그 면적이 72만평에 달하며 26만여 개의 묘소가 안장되어 있는 곳이다. 공자의 묘소는 공림 중심부에 위치하며 공자의 묘소는 포손(抱孫)이란 방법으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오른쪽은 아들, 왼쪽은 손자를 안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공림에서 알게 된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은 묘를 쓰고 난 후 오랜 세월이 흘러 봉분이 없어지면 그 위에다 후손들이 묘소를 만든다는 것인데 우리의 장례문화로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문화재를 보수하는 장인이 하던 말인데 작은 것 하나라도 빨리 보다는 원형이 나올 때까지 천천히 세심하게 보수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이를 관리하는 곳에서는 이 장인의 의견을 받아들인다고 하며 우리의 빨리 빨리 문화와는 크게 다른 것을 느꼈다.
돌아서 나오면서 공자께서 우리 인간이 짐승과 다른 것은 우리에게 '예'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예'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
다음날 곡부를 뒤로 하고 태안시에 있는 태산으로 이동하여 아침 일찍 태산 주차장에 도착하였으나 너무 많은 사람을 보고 중국의 최고 명산 태산의 위력을 실감하였다.
산 밑에서 태산을 쳐다보니 옛날 교과서에 있던 시가 생각난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사람이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만은.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우리는 태산을 오를 때 1/3 구간은 버스로, 1/3 구간은 케이블카로, 나머지는 도보로 이동하여 갔지만 중국인들은 1/3 구간 계단을 걸어간다고 한다. 이는 가족의 복을 빌기 위하여 왔기에 이 구간을 걸어야만 정성을 다한다고 믿기 때문에 꼭 걸어서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 구간의 계단 수는 1만여 개이며 올라가는 시간은 약 2시간 정도라는데 중국인은 이곳을 택한다고 한다.
그 구간을 지나면 약간의 평지로서 천제를 지내는 곳 '옥황정'까지는 왕복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우리가 봐서는 태산이 그리 높은 것 같지 않은데 여기 사람들이 높다고 하는 이유는 산동성 지역이 평지인데 그 가운데 1,500미터의 산이 있으니 더욱 높게 보인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설악산 정도라 비유하면 될 것 같다.
천제의 장소인 '옥황정'에 가보니 경건함보다는 너무 세속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분향을 하면 분향한 향을 임의로 제거하고 그 위에 향을 꼽는 욕심을 봤다. 또한 그 옆에서는 상인이 좌판에서 자물쇠를 팔고 그 옆 휀스에는 자물쇠가 수도 없이 매달려 녹이 슬어 있어 어찌 이런 신성한 곳이 세속에 밀려 훼손되어가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인간 욕심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아 입맛이 씁쓸하다. 공산주의 사회나 민주주의 사회나 국민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구복신앙' 사상만은 다를 수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옥황정 아래 암벽 지역에 역대 황제들이 새겨놓은 글씨를 볼 수 있는데 장엄함은 돋보이나 꼭 저렇게 자기의 권력을 과시해야 하는지 진시왕과 당 태종에게 물어보고 싶어진다.
특히 현자임을 알리고자 태산을 찾았으나 하늘의 방해로 뜻을 펴지 못한 진시황을 두고 천하가 둔자라 조롱하자 격분하여 조롱한 자를 참하고 고서를 불사르는 그 유명한 '분서갱유'도 이 태산에서부터 유래되었다고 한다.
중국의 5대 명산 중 으뜸인 태산으로 인한 경제효과를 보면 1일 3만여 명, 1년 1,000만여 명이 방문해 그들이 사용하는 비용으로 태안시 200만여 명의 주민을 먹여 살린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이 된다.
태산을 내려와 400킬로미터를 달려야 하는 청도 가는 버스 안에서 이번 순례를 다시 한 번 정리하여 보았다.
공자의 '효' 사상이 바탕이 되는 사람의 도리가 무엇인가 조금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상을 떠난 구복신앙, 우리가 백두산을 말하고 중국인이 태산을 말하는 것은 그 바탕에는 이 두 명산이 양 민족의 마음의 고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볻다. 이번 여행을 통하여 중국 민족성을 조금 더 이해하고 세상을 보는 안목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한대성 / 삼척향교 84회 장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