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시론

<특별기고> 하정 류관을 통해 본 선비정신

류찬길 성균관청년유도회 여수지부 회장 ‘오가장물유청백(吾家長物惟淸白) 세세상전무한인(世世相傳無限人)’ 우리 집안에 길이 전할 것은 오직 청백(淸白)이니 대대(代代)로 서로 이어 끝없이 사람에게 전하라. 예문각 대제학(藝文館 大提學) 하정(夏亭) 류관(柳寬, 1346-1433)이 62세 때(1407년, 태종 7) 이조정랑(吏曹正郞)으로 재직하다 중시(重試)에

오흥녕 2024. 1. 23.

 

 

류찬길 성균관청년유도회 여수지부 회장

 


 

‘오가장물유청백(吾家長物惟淸白) 세세상전무한인(世世相傳無限人)’

 

 

우리 집안에 길이 전할 것은 오직 청백(淸白)이니 

 

대대(代代)로 서로 이어 끝없이 사람에게 전하라.

 

 

 

예문각 대제학(藝文館 大提學) 하정(夏亭) 류관(柳寬, 1346-1433)이 62세 때(1407년, 태종 7) 이조정랑(吏曹正郞)으로 재직하다 중시(重試)에 급제해 즉시 사헌부 장령(司憲府 掌令)에 특제(特除)된 조카 류사눌(柳思訥)과 나눈 시의 한 구절이다.

 

청백리(淸白吏, 청렴한 관리)로 이름 높았던 그의 집은 얼마나 낡았던지 비가 오면 지붕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기 위해 우산을 받치고 살았다고 하여 ‘우산각(雨傘閣)’이라 불렸고, 그 뒤 외가 5대손인 동고(東皐) 이희검(李希儉, 1516-1579) 물려받았다가 1592년 임진왜란의 와중에 불타 없어진 것을 동고의 아들인 지봉(芝峰)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이 다시 지으며 ‘비우당(庇雨堂, 근근이 비를 가리는 집)’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여기에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 《지봉유설(芝峯類說)》’을 썼다.

 

청백함을 기리기 위하여 서울 신설동의 동대문도서관 앞에 ‘우산각 어린이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방촌(厖村) 황희(黃喜, 1363-1452), 고불(古佛) 맹사성(孟思誠, 1360-1438)과 함께 ‘선초삼청(鮮初三淸, 조선 초기 세 명의 청백리)’으로 불렸던 류관은 우의정이라는 높은 벼슬을 하면서도 항상 베옷과 짚신으로 검소하게 살며, 음식은 밥과 국, 나물이면 만족했고, 집에 귀한 손님이 오더라도 탁주 한 사발과 콩자반, 무우 몇 쪽으로 대접했다.

 

집은 담장이 없는 부엌 1칸, 방 2칸으로 이루어진 초가(草家)라 장마철에 천장이 새어 방안으로 쏟아지자 태연하게 우산을 받쳐 들고 비를 가리며 부인에게 ‘우산이 없는 집은 비를 어떻게 견디겠는가?’라고 하며 가난한 백성들을 걱정했다.

 

이런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서울시는 청렴·결백하고, 공·사생활이 건실하며, 사회에 헌신·봉사함으로써 건전하고 신뢰받는 공직풍토 조성에 기여한 공무원을 발굴해 지난 2009년부터 ‘서울특별시 하정청백리상’을 제정해 운영하고 있다.

 

문정공(文正公) 조광조(趙光祖, 1482~1519) 선생도 어떤 사람에게 이르기를 “근래 이학(理學, 성리학)으로는 포은(圃隱, 정몽주)과 하정(夏亭, 류관)이 가장 바르다[最正]”라고 하였으며, 이단(異端)을 배척하여 여러 아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죽은 뒤에 불공(佛供)을 하지 말고 모든 것은 《주문공가례(朱文公家禮)》에 따르라”라고 하였다.

 

 

 

1402년(태종 2) 5월 경주부윤(慶州府尹)에 부임하여 재직시 9월에 밀양(密陽) 영남루(嶺南樓)에 올라 천(天) 글자로 차운(次韻)한 시(詩)는 9월의 평화로운 가을 저녁 풍경을 읊었다. 마지막 시구(詩句)는 국왕의 경연을 담당하는 신하로서 의무를 잊지 않는 마음과 중앙관직에 그리움이 나타나 있다.

 

등루정시구추천(登樓正是九秋天)

 

무한봉만옹후전(無限峯巒擁後前)

 

고목제비락하외(孤鶩齊飛落霞外)

 

단홍경기석양변(斷鴻驚起夕陽邊)

 

주란벽와담사월(朱欄碧瓦淡斜月)

 

대야평림횡취연(大野平林橫翠煙)

 

의주음시성일수(倚柱吟詩成一睡)

 

몽중시부시경연(夢中時復侍經筵)

 


 

누대에 오르니 바로 9월 가을인데,

 

끝없이 봉우리들이 앞뒤를 싸안았네.

 

외로운 따오기는 저녁노을 밖에 가지런히 날고

 

짝 잃은 기러기는 석양가에 놀라 일어나네.

 

붉은 난간 푸른 기와는 기운 달빛에 말고,

 

큰 들 평평한 숲은 푸른 연기를 비겼네.

 

기둥에 기대어 시를 읊다가 잠깐 조니,

 

 

 

꿈속에서 마침 다시 경연(經筵)에 입시(入侍)하네.

 

태종 6년(1406) 10월8일 판공안부사(判恭安府事) 류관(柳觀)과 우군 총제(右軍摠制) 성석인(成石因)이 경사(京師, 명나라 수도 베이징)에 정조사(正朝使)로 가서 신정(新正)을 하례(賀禮)하기 위해 영락황제(永樂皇帝, 재위 1402-1424)와 세 걸음에 시(詩) 한 수(首)씩 짓는 삼보시(三步詩)를 주고 받았으니 아래와 같다.

 

영락제(永樂帝)=삼경루하석양홍(三更樓下夕陽紅, 삼경루(三更樓) 아래 저녁때의 해가 붉도다)

 

하정공(夏亭公)=구월산중춘초록(九月山中春草綠, 구월산(九月山) 가운데 봄철의 풀이 푸르도다)

 

영락제(永樂帝)=노인산하소년행(老人山下少年行, 노인산(老人山) 아래 소년이 다니네)

 

하정공(夏亭公)=백마강두황독명(白馬江頭黃犢鳴, 백마강(白馬江) 머리에 누런 송아지가 운다)

 

영락제(永樂帝)=두견화소두견제(杜鵑花笑杜鵑啼, 두견화(杜鵑花) 꽃은 웃는데 두견(杜鵑)이는 우네)

 

하정공(夏亭公)=노고초청노고백(老姑草靑老姑白, 할미꽃(老姑草) 풀은 푸른데 할머니는 백발(白髮)이네)

 

이때 영락황제가 혁대(革帶)를 하사해 받아서 태종 7년(1407) 4월15일에 돌아오니 안쪽에 ‘합격(合格)’이라고 새겨져 있다.

 

세종 15년(1433) 1월19일에는 옛 제도에 의하여 시직(時職)과 산직(散職) 1, 2품 중에서 나이 70세 이상 약간(若干)의 사람으로 ‘기영회(耆英會)’라 일컫고, 성덕(聖德)을 노래하고 읊조리게 하며 기로소(耆老所)의 문신들을 위해 음력 삼짇날(상사(上巳), 3월3일)과 중양절(重陽節, 9월9일)에 국가에서 베풀었던 잔치를 열게 건의하여 정2품의 실직(實職)을 지낸 70세 이상의 문과 출신 관원만 참석했으며, 종친으로 70세 이상의 2품 이상인 자, 정1품관, 경연 당상관들을 위해서는 훈련원(訓鍊院)이나 반송정(盤松亭)에서 기영회(耆英會)를 베풀게 건의하니 다음 날인 1월20일 세종대왕께서 ‘류관이 글을 올려 기영회를 설치하고자 하니 내가 심히 아름답게 여긴다’라고 하였고, 지신사(知申事, 도승지) 안숭선(安崇善, 1392-1452)은 ‘지금 국가에 일이 없고 늙은 신하들이 회(會)를 만들어서 성덕(聖德)을 노래하고 읊조리니 술과 실과를 하사(下賜)하여 양로(養老)하는 은혜를 보이는 것이 마땅하옵니다’라고 하여 윤허받았다고 전한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신동에 위치한 비우당 전경이다.(출처 : 네이버 블로그 개미실사랑방)

 


 

 

『세종실록』  권60, 세종 15년(1433) 5월7일 기사의 졸기에 '초명이 관(觀)이었음'을 적고 있다.

 


 

 

『중종실록』 권39, 중종 15년(1520) 4월6일 기사에 '우산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한자 이름 '柳寬' 대신 '柳觀'으로 적힌 것은 초명(初名)이 觀이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