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재 충주향교 전교
법 없이도 살아갈 사람’이란 말을 어린 시절부터 듣고 자랐다. 어떤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구별하는 도덕적 의식이나 마음씨를 양심(良心)이라 하는데, 사람에겐 누구나 양심이 있으므로 모든 사람이 양심대로 살아간다면 법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이 인간에게 주신 양심은 내팽개치고 무엇이든지 법으로 따지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현대인의 일상이 되어 버렸다. 양심에 근거하여 문서화하지 않고 사회통념으로 오랜 세월 내려온 것이 윤리와 인륜 도덕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인 인륜 문제까지 법으로 속박하는 것은 덕치(德治)를 무시하고 법치(法治) 만능으로 인륜까지 파괴하는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친척인지 모르고 결혼하였는데 뒤에 알고 보니 6촌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헌재에 제소한 결과 헌법재판소는 8촌 이내 혼인을 무효로 보는 민법 조항이 과잉 금지의 원칙을 어긴 것이라며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법무부가 친족간 혼인 금지 범위를 4촌 이내로 축소하는 방안을 연구 용역을 주어 올해 말까지 대체 입법안을 마련하도록 검토하자 성균관을 비롯한 전국의 유림들이 반대시위를 하며 법무부에 항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연구보고서에는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주요 서구 선진국은 물론 중국 등 아시아 주요 국가들도 4촌 간, 또는 5촌 간 혼인을 금지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하니 일반 국민의 상식이나 정서와는 동떨어진 발상을 하고 있다.
논란의 시작은 한 부부의 소송이었다. 6촌 사이인 A씨와 B씨는 2016년 혼인 신고를 하고 법적인 부부가 됐다. 하지만 석 달 뒤 A 씨는 이혼을 요구했는데 B 씨가 응하지 않자 6촌 사이의 혼인은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근거는 8촌 이내 혼인을 금지한다는 민법 809조 1항과 그걸 위반하면 혼인을 무효화 할 수 있다는 민법 815조 2호였다. 법원이 이 법 조항들을 이유로 혼인 무효 판결을 내리자 이번엔 B씨가 헌법소원을 냈다. 근친혼을 금지하는 조항, 근친혼을 무효화하는 조항 모두 헌법에 어긋난다는 거다.
헌법재판소는 4년이 넘는 심리 끝에 2022년 10월 근친혼을 금지하는 법 조항에 대해선 합헌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모든 근친혼을 일률적으로 무효화 할 수 있다는 조항에 대해선 재판관 전원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했다. 일률적으로 근친혼을 무효로 만들 경우 그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는 혼외자가 돼 법적 지위가 불안정해질 수 있고 배우자로서의 상속권이나 수급권도 상실돼 예측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그렇게 당장 법 조항을 폐지시키는 위헌이 아닌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내려졌고 올해 말까지 대체 입법안이 마련돼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법무부는 지난해 11월28일부터 12월6일까지 전국 성인 남녀 1천300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 방식의 여론조사를 한 결과, 근친혼 금지범위에 대해 75%의 응답자가 '현행과 같은 8촌 이내'를 꼽았다고 밝혔다. '6촌 이내'가 적절하다는 응답은 15%, '4촌 이내'가 적절하다는 응답은 5%로 조사됐다.
법무부는 개정 방향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며 시대 변화와 국민 정서를 반영할 수 있는 개정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한다.
성균관유도회총본부는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통념으로 받아들여 온 근친혼 기준을 성급하게 바꿔서는 안 된다'며 '가족 해체는 물론 도덕성 붕괴도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연구 용역을 맡은 측은 8촌 이내 혼인 금지 조항은 과도한 혼인 자유의 침해라고 주장했다. 5촌 이상끼리 유대감을 유지하는 경우가 현저히 감소했고, 5촌 이상 혈족 간의 근친혼이 후손의 유전적 질환 발병을 늘린다는 합리적 근거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아직 국민정서는 '당숙과의 혼인'이나 '4촌끼리 사돈이 되는 결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헌재의 결정처럼 특수한 경우만 구제해주면 되지 않나 싶다. 가족법은 사회의 특수성을 많이 반영하고 있어 해외 사례와 일률적으로 비교하는 건 적절치 않다.
반면 관습존중론 측에선 전통적인 가족 질서의 붕괴를 우려한다. 논란 직후 성균관 등 전국 유림은 ‘8촌 이내는 고조부를 함께 하는 가족’이라며 5촌 사이 혼인이 벌어지다 보면 인륜이 무너지고 족보가 엉망이 되고, 성씨 자체가 무의미해진다고 반발했다.
성균관을 비롯한 전국 유림은 지난 2월27일 ‘가족을 파괴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근친혼 기준을 급하게 변경하면 인륜이 무너지고 족보가 엉망이 된다. 인륜도 모르고, 도덕이 사라지고, 가족이 없는 세상이 와서는 안 된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인륜 도덕이다. 이를 버린다면 짐승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이참에 법조계에서도 인륜 도덕과 관련된 사항은 유림단체의 중론을 듣고 토론과정을 거친 후에 법으로 판단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여 전통문화인 인륜 도덕이 이 사회를 살맛나는 사회로 정화(淨化)하는 역할을 정부 당국에 강력히 건의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