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시론

<특별기고> 칠백의총(七百義塜) 논란의 원인과 진실

조종영 배천조씨 문열공종회장 ‘칠백의총(七百義塜)’은 1592년 8월 18일 임진왜란 당시 곡창지대 호남으로 진출하려는 왜적과 맞서 싸운 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휘하 700의병의 무덤 이름이다. 알려진 바로는 바로 앞에 펼쳐진 연곤평에서 조헌 의병과 영규 승병이 합세하여 왜적과 싸웠다고 한다. 그리고 700의병의 시신을 수습해서 무덤을

조종영 2024. 9. 30.

 

 

조종영 배천조씨 문열공종회장

 

 


 

‘칠백의총(七百義塜)’은 1592년 8월 18일 임진왜란 당시 곡창지대 호남으로 진출하려는 왜적과 맞서 싸운 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휘하 700의병의 무덤 이름이다. 알려진 바로는 바로 앞에 펼쳐진 연곤평에서 조헌 의병과 영규 승병이 합세하여 왜적과 싸웠다고 한다. 그리고 700의병의 시신을 수습해서 무덤을 만들고 칠백의총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금산군민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분명하고 지금까지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런데 국가유산청이 칠백의총 명칭 변경을 검토하고 묘하에 있는 전통 유교 사당인 종용사 안에서 영규대사를 위한 불교 의례를 포함하는 문제를 들고 나왔다. 9월 23일 ‘432주년 칠백의사 순의제향’을 한 달여 앞두고 아무런 공론의 절차도 없이 밀어붙이고 있다. 그 의도가 무엇일까? 민족정신이 깃든 이 숭고한 성지가 어쩌다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는지 참담함을 금할 수가 없다. 전혀 예상치 못한 논란 속에 서게 된 조헌 선생의 후손으로서 답답하고 송구한 마음으로 졸필을 들게 되었다.

 


 

칠백의총의 역사와 전통

 

 


 

칠백의총

 

중봉 조헌 선생은 조선 선조 시대 문신이며 성리학자이다. 정치 개혁적인 인물로 후대 실학자들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문묘(文廟)에 배향되어 유학자로 최고의 영예를 받는다. 임진왜란 5년 전부터 전란을 예견한 그는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을 회복한 후 호남을 엿보는 금산의 왜적과 싸우다 휘하 700의병과 함께 순절하였다.

 

당시 조헌 의병 칠백 명과 영규의 승병 수백 명이 금산의 왜적과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에서 조헌의 휘하 700의병은 한 사람도 전장을 이탈하지 않고 대항하다가 현지에서 모두 모두 전멸한다. 조헌의 제자와 금산군민이 700의병의 시신을 거두어 한곳에 묻고 칠백의총이라 불렀고 온 국민이 430여 년을 이의 없이 그렇게 부르고 있다.

 

1603년에 경내에 세워진 ‘중봉조선생일군순의비(重峯趙先生一軍殉義碑)’에는 당시 좌의정 윤근수가 조헌의 행적을 상세하게 비문에 담았다.

 

이러한 일련의 모든 사료는 일관되게 칠백의총이 중봉 조헌 선생의 칠백의사 무덤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기록하고 있다.

 

 

 

종용사(從容祠)

 

칠백의총 묘하에 종용사(從容祠)는 1647년 호남 유림이 건립하고 1663년 현종 때 사액을 받았다. 종용사가 칠백의사를 모시는 묘하의 사당임에도 당시 한 지역에 여러 사당을 건립하는 수고를 피해서 금산에서 비슷한 시기에 순절한 고경명, 변응정 등을 함께 모셨는데 모두가 유학자들이다. 그래서 승려인 영규는 별묘(別廟)를 지어 '승장사'라 이름하고 따로 제사를 모셨다.

 

영규를 종용사에 합사한 것은 1951년이라고 한다. 합사한 까닭은 알 수 없으나 아마 ‘승장사’가 훼철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학자를 모신 유교 사당에 불자인 영규를 합사하여 제사한다는 것은 종교적 문제가 있다. 그래서 조상들은 별묘를 만들어 영규를 따로 제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합사 후에 오늘날까지 사당의 전통대로 유교식 제사를 함께 받들어 모시는데 이의가 없었다.

 


 

 

국가유산청의 요구와 일방적 태도

 

 

 

국가유산청의 요구

 

국가유산청이 본인에게 공식적으로 통보해 온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한가지 요구 사항을 내놓고 끈질기게 독촉했다. 지난 8월 12일에 국가유산청 산하 칠백의총 관리소에서 소장을 대면했을 때

 

●불교계 요청이라면서 9월 23일 종용사(從容祠) 사당에서 지내는 ‘432주년 칠백의사 순의제향’에 영규 대사를 위한 불교 의례를 사당 안에서 하겠다며 이에 동의를 요구했다.

 

그 자리에서 400년 지켜온 유교 전통 사당에서의 불교 의례는 불가하다. 공론의 과정도 없이 제향을 한 달 앞두고 갑자기 이런 요구를 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굳이 사당의 전통을 훼손하면서 시행하겠다면 먼저 공론의 절차를 거쳐라. 그 결과에 따르겠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다.

 

●이러한 협의가 진행되는 중간에 새롭게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국가유산청이 칠백의총 명칭 변경을 위해 이미 ‘(재)한국 불교문화 유산연구소’를 선정하고 용역을 마쳤다는 것이다. 이는 용역업체인 불교문화연구소에서 본 종회의 의견을 듣고자 연락을 해오며 알게 된 것이다. 공정하지 않은 국가유산청의 행태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국가유산청은 이미 불교계의 요구대로 차곡차곡 진행하고 있던 것이다.

 

국가유산청이 칠백의총이라는 칠백의사의 혼이 담긴 무덤의 명칭 변경을 추진하고, 묘하에 있는 칠백의사를 모시는 400년 사당의 전통을 무시하면서 불교 의례를 시행하겠다는 것은 칠백의총의 역사와 전통을 송두리째 바꾸려는 의도 같았다. 당연한 공론의 과정도 거치지 않았고, 합리적인 이유도 제시하지 않은 채 급속히 밀어붙이고 있다.

 

칠백의총은 조헌 휘하 칠백의사 무덤의 명칭이다. 남의 무덤 이름을 당사자가 아닌 자들이 함부로 거론할 대상인지는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국가유산청의 일방적 태도

 

국가유산청의 일방적 요구 사항만으로도 편향성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진행 과정에서 국가유산청 공무원들이 절차를 무시하고 얼마나 절실하고 조급하게 서두르고 있는가를 알 수 있었다.

 

●지난 8월 12일은 ‘432주년 칠백의사 순의제향’을 35일 앞둔 날이다. 이때 유교 제향에 불교 의례를 포함하는 문제를 처음 들고나왔다. 그때 불가 의사를 명확히 제시한 바가 있어 일단락된 것으로 생각했다.

 

●9월 3일, 본청 문화유산 담당관과 칠백의총 관리소장 일행이 본 종회 사무실을 찾아왔다. 앞서 제시한 사항에 대한 동의를 재차 요구했다. 이때 각계 인사들과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회장 등의 의견을 정리하여 불가하다는 의사를 다시 전했다.

 

●9월 6일, 본청 문화유산국 국장과 과장, 담당관 등 일행이 또, 본 종회 사무실을 방문했다. 동일한 사항에 대해 동의 요구를 계속해 왔다. 이때 우리의 요구(본문 4항)를 문서로 제시하였고, 문화유산 국장 일행은 근거 없는 일방적 논리로 긴 시간 끊임없이 동의만을 요구해 왔다.

 

●9월 13일, 국가유산청이 일방적으로 불교계를 방문 종용사 안에서의 불교 의례를 허락했다. 우리와는 협의를 진행하면서 상대방에게는 요구 사항을 승낙한 것이다. 이를 법보신문 보도를 통해 인지하였다. 국가유산청은 결과를 정해 놓고 형식적인 논의를 계속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었다.

 

국가유산청의 요구 논리는 시종일관 이러했다. 조선시대에 영규대사와 승병이 온전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영규는 조헌과 함께 싸우다 순국했고 종용사에 위패도 합사했으니 이제 불교 의례도 동의하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요구에 역사와 전통 보전을 사명으로 하는 국가유산청이 400년 사당의 전통을 바꾸는 일을 손바닥 뒤집듯 이렇게 쉽게 접근해도 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왜? 국가유산청이 정상적인 절차도 외면하고 이처럼 급히 서두르는 것일까?

 

또 하나, 이보다 더 중대한 것은 칠백의총의 명칭을 변경하겠다는 문제이다. 국가유산청은 불교계 요청이라면서 명칭 변경 검토 연구기관으로 ‘(재)한국 불교문화유산연구소’를 선정했다. 누가 이를 공정하다고 인정할 것인가?

 

관련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면, 이 문제를 제기할 조건이 전혀 없다. 칠백의총이란 말 그대로 무덤의 이름이고, 그 주인은 조헌 휘하 700의병이다. 이러한 사료들은 일관성 있게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영규대사와 승병에 관한 자료는 매우 빈약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영규는 금산 전투 중에 부상을 입고 공주로 가서 숨을 거두었고, 무덤도 갑사 앞 계룡면에 있다. 그 외에 승병의 행적, 승군의 규모, 시신의 처리 등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발견된 기록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관한 사실 조사 연구가 바로 국가유산청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칠백의총이 조성되고 432년의 역사 속에 이러한 논란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고 새로운 사실이 나왔거나 달라진 것도 없다.

 

국가유산청은 무슨 근거로 칠백의총 명칭 변경을 검토하겠다고 나서는 것일까?

 

 


 

국가유산청에 대한 우리의 요구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하신 승병의 숭고한 업적은 마땅히 높이 받들어야 한다. 부족한 것이 있다면 채워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430여 년 이어온 전통과 역사를 보전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부득이한 사유로 고쳐야 한다면, 그만한 사료적 근거와 공론의 절차를 거친 후에 가능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국가유산청의 공정성에 의심이 가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우리 종회는 국가유산청을 향해 다음과 같은 요구를 계속해 왔다. 상급 부처와 신문고에도 같은 내용의 청원을 했다.

 

다음은 우리가 주장하고 요구하는 청원 내용이다.

 

 

1. ‘칠백의사 순의 제향’에 불교 의례를 추가하는 활동을 즉각 중단하라

 

(1) 유교 사당 전례의 전통과 가치를 보전하라

 

사당에서 유교 전례만을 시행한 것은 역사적 전통이다. 종용사 역시 조선시대 사액 사당으로 400여 년 동안 유교 전례만을 지켜왔다. 당연히 국가유산청은 이에 관련한 문화유산 일체를 보전하고 후손에 전할 책임이 있는 국가 기관이다.

 

(2) 역사적 전통대로 영규대사를 위한 ‘승장사’를 복원하여 제사하라

 

이 문제는 근대(국가유산청 1951년도 주장)에 대책 없이 영규대사를 종용사에 합사함으로써 빚어진 일이다.

 

종용사가 사액된 1663년(현종4) 때부터 영규대사를 모시는 별묘(別廟)가 함께 있었다, 이를 다시 복원하여 전통을 유지하고 이러한 갈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라.

 

(3) 합리적이고 공정한 공론의 절차를 거친 후에 제도 변경을 추진하라

 

위 (1) (2)에서 제시한 합리적인 요청을 무시하고 국가유산청이 무리한 계획을 계속 추진하겠다면, 반드시 시행 전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관련 단체, 전문기관, 학계 등이 참석하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공론의 과정을 거칠 것을 요구한다.

 

2. '칠백의총 명칭 변경 타당성 검토' 사실 조사 기관은 모두가 인정하는 공정한 연구기관으로 다시 선정하라

 

국가유산청이 선정한 (재)불교문화유산연구소에서 불교계 청원을 검토한다는 것은 국가 기관이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어느 국민이 합리적이고 공정한 국가 기관의 조치라고 동의하겠는가. 이를 다시 선정해야 한다.

 

 

위의 요구 사항에서 2항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추가가 더 필요하다. “남의 무덤에 명칭을 타인이 거론하지 마라. 거론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말이다. 칠백의총은 칠백의사의 무덤이 명백하다. 여기에 승병이 묻혔다는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한, 국가유산청도 남의 무덤 명칭에 대해 함부로 거론할 수는 없다.

 


 

●국가유산청이 정상적인 공무 절차로 처리했다면,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국가유산청의 조치에 이해될 수 없는 의문들로 가득하다.

 

- 역사와 전통을 보전하는 사명을 수행해야 하는 국가유산청이 왜 이를 훼손하는 일에 앞장서는 것일까?

 

- 왜, 고위 국장까지 종회를 쫓아다니며 이처럼 서두르는 것인가?

 

- 불교계 요청을 불교 연구기관에 용역하는 국가유산청의 목적은 무엇인가?

 

●종용사 사당 안에서 불교 의례는 전통을 깨는 일이고 종교 간의 예의도 아니다. 하루아침에 밀어붙일 일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승장사를 복원하여 시행하면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국가유산청이 전통을 복원하고 갈등의 소지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책을 두고 무리하게 갈등을 선택한 것이다.

 

 

●국가유산청이 (재)불교문화유산연구소에 칠백의총 명칭 변경에 관한 검토를 용역한 사실은 국가 기관의 공정성에 큰 문제이다. 그리고 이 사안은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칠백의사의 무덤이 명확하고 새로운 근거가 전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거론할 조건이 전혀 없는 것이다. 칠백의총이란 명칭은 무덤의 이름이지 전투 지역의 명칭이 아니다. 승병이 여기에 묻혔다는 근거가 나온 다음에 거론할 문제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논란은 국가유산청이 문제가 되지 않는 사안을 두고, 당연히 해야 할 절차를 모두 건너뛰면서, 한쪽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려는 편향적 조치에서 유발된 것이다. 이것이 논란의 원인이고 진실이다. 국가유산청은 지금 당장 모든 것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멈추어야 한다.

 

국민은 오로지 정부를 믿고 산다. 국가 기관이 원칙과 공정을 외면한다면 우리 사회는 끝없는 불신과 갈등으로 혼란에 휩싸일 것이 분명하다.

 

끝으로, 각계 전문가와 국민 여러분의 합리적인 판단과 도움을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