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경(용인향교 장의/문양서당 훈장)
2017년은 대한민국 사회의 격변기였다. 촛불 시위를 통해 권위적인 정부를 탄핵하고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구태(舊態)를 떨치기 위한 개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정치 보복이라고 하고 일부에서는 적폐(積弊) 청산이라고 한다. 하지만 촛불 시위는 민주적인 시민 저항 운동이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한 세계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다.
지난 이명박, 박근혜 보수 정권의 적폐 청산 과정에서 드러난 부끄러운 사실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보기 드물게 국민을 적(敵)으로 규정하고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을 철저하게 탄압했다. 양파껍질처럼 까면 깔수록 드러나는 지난 보수 정권의 민낯을 보면서 처참하고 분노가 일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보수 정권의 공범(共犯) 또는 방조자라고도 할 수 있는 제일 야당(野黨)은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고 새로운 야당으로 거듭나기 보다는 적폐 청산이 조작된 정치 탄압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보수의 가치는 기존의 질서를 존중하고 전통을 중시하며 법치주의를 우선시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보수는 오랫동안 냉전(冷戰) 시대의 반공(反共) 이데올로기를 근간으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자유주의 시장 정책만을 옹호하였다. 뿐만 아니라 지역주의를 활용하고 이른바 종북(從北)이라는 색깔론에 의지하여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였다. 불행한 일이지만 달리 보면 박근혜 정권의 국정 논단을 계기로 그 동안 보수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던 수구(守舊) 세력들이 합리적 보수로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발전의 기회가 주어졌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2017년 연말(年末) 보수 제1 야당의 모습은 보수의 변화에 대한 기대가 난망(難望)함을 보여준다. 제1 야당의 대표는 늘 막말로 정치 이슈를 생산하고 있다. 아마도 이렇게 막말 정치를 하는 이유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막말 정치와 SNS 정치를 본뜬 것일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막말 정치의 끝장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트럼프는 세계 평화를 위해 묵시적(黙示的)으로 평화 지대로 설정되어 있던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한다고 함으로써 중동(中東)의 화약고에 불을 질렀다. 급기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유혈 사태가 재발하였고 혼돈이 시작되었다.
물론 트럼프 개인이야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아무 말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세계의 리더로서 미국 대통령의 위상은 허물어지고 철저히 개인의 정치적 이익만 남았을 뿐이다.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세계 평화도 한순간에 걷어찰 수 있다는 막말 정치인의 끝장을 보여주고 있다.
막말 정치는 자신들의 지지 세력에게는 통쾌함을 주고 굳건한 지지 기반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국민들에게는 정치 혐오감을 줄 뿐만 아니라 건전한 보수의 성장에도 걸림돌이 된다. 현재 국회의원 의석수 40%를 차지하는 제1 야당이 정당 지지율 20%를 넘기지 못하는 현실만 보아도 자명한 사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야당 대표의 막말 정치를 따라하던 같은 당의 여성 최고위원이 막말을 한다는 이유로 윤리위원회에서 제명(除名)하는 모습을 보면서 씁쓸한 웃음을 금할 수 없다. ‘나는 바담 풍〔風〕 해도 너는 바람 풍 해라.’는 말처럼 당대표의 막말은 용인할 수 있어도 당대표를 벤치마킹했다는 최고위원은 용납할 수 없다는 보수의 후안무치(厚顔無恥)를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일부 보수를 자처하는 세력들 중에는 공영방송에서 대통령에게 ‘문재인 씨’라고 지칭하며 국가 원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은 보수의 외연(外延) 확대에 걸림돌이 될 뿐만 아니라 보수와 진보의 합리적 정책 대결을 통해 건전한 국가 발전을 염원하는 국민들을 배신(背信)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 보수를 자처하는 세력들의 면면을 보며 우리 사회에도 극단적 극우(極右) 세력들이 점차 정치 세력화되어 간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유교는 기본적으로 요순(堯舜) 시대를 찬양하고 전통을 존중하는 보수주의와 궤를 같이 한다. 궁극적으로 요(堯)임금 시대에 “늙은이들이 배불리 먹고 배를 두드리며 격양가(擊壤歌)를 부르는〔有老人 含哺鼓腹 擊壤而歌〕” 세상이 유교가 꿈꾸는 세상이다. 그래서 새해에는 대화와 소통이 가능한 합리적 보수의 등장을 기대하며 진보와 보수 양 날개로 날아가는 대한민국을 기대해 본다. 말 그대로 송구영신(送舊迎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