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시론

<李玄崗의 泮中雜詠> 부적 만들어 파는 게 민중유교?

공자께서는 “은벽한 것을 찾고 괴이한 일을 행함을 후세에 칭술하는 것이 있는데 나는 이러한 짓을 하지 않는다(子曰 素[索]隱行怪 後世 有述焉 吾弗爲之矣 <中庸>)”라고 하셨다. 모든 진리는 합리적, 보편적 논리 위에 설정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최근 성균관에서는 유교의 근간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해괴한 일들이 연일 벌어지고 있어 파문이 크게

편집부 2014. 7. 4.

공자께서는 “은벽한 것을 찾고 괴이한 일을 행함을 후세에 칭술하는 것이 있는데 나는 이러한 짓을 하지 않는다(子曰 素[索]隱行怪 後世 有述焉 吾弗爲之矣 <中庸>)”라고 하셨다. 모든 진리는 합리적, 보편적 논리 위에 설정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최근 성균관에서는 유교의 근간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해괴한 일들이 연일 벌어지고 있어 파문이 크게 일고 있다.

서정기 관장이 취임 후 유교 종단의 수장에 어울리지 않는 언행을 일삼더니, 급기야는 문묘 대성전 경내에서 영가무도를 함으로써 성현을 모독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광복 후 생겨나 물의를 일으킨 ‘신흥종교’들의 특징과 서 관장의 언행을 비교해 무엇이 문제인지 살펴본다.

첫째, 기성 종교의 정체성을 부정한다.

유교는 공자를 시조로 하는 교학이자 종교이고, 사서오경을 기본 경전으로 한다. 유림이란 사마천의 <사기> ‘유림열전’에서 비롯된 말로서 이 유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서 관장은 유교인의 숫자가 줄어든 것은 사서오경을 외고 점잖은 풍채를 지키고 이 학문과 지조를 갖춘 것이 유림이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하면서, 제사를 지내고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는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모두 유교인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했다.

둘째, 기성 종교에 없는 새로운 교리를 주장한다.

서 관장은 자신이 세계 최초로 말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五靈書와 五靈說을 주창했다. 서 관장 말대로 이 해괴한 오령서와 오령설은 지금까지 유교에는 없던 것으로 서 관장 자신이 만든 것이다.

그러면서 서 관장은 유교의 성현들과 자신을 같은 위치에 놓았다. 서 관장이 작사했다는 ‘네 가지 값’이라는 악보에는 “공자의 정명사상, 맹자의 천형사상, 주자의 학문실천, 훈로선생의 역사정신”이라고 적고 있다. 훈로선생은 서 관장을 가리킨다.

셋째, 후천개벽을 말한다.

신흥종교는 천국을 말하는 대신 후천개벽을 말한다. 후천개벽이란 현재까지의 시대를 선천시대로, 현재 이후의 시대를 후천시대로 구분하여 전면적인 변혁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서 관장은 “오령이 나오는 새 시대를 열자!”고 했다. 후천개벽을 변형한 것이다. 지난 시대는 오령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 세상이 어둡고 다스려지지 않은 것이라고 하면서, 하늘에는 皇天上帝가 더욱 빛나고 땅에는 龍鳳鸞麟龜 오령이 다시 깃들어 사람에게는 오륜이 거듭 펼쳐지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넷째, 부적을 이용한다.

서 관장은 자신이 쓴 일명 오령서를 100만원씩 받고 부적으로 팔고 있다. 성균관장이 부적이나 파는 일개 무속인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 오령서를 소장하게 되면 집안이 화평하고 행복한 생활을 해나갈 수 있다고 하고, 심지어 성균관 직원으로 하여금 이 부적을 가지고 기업체를 찾아가 팔라고 해 망신을 자초하기도 했다.

다섯째, 교주숭배다.

서 관장과 그 추종자들은 “오경오서를 완역한 서정기 선생의 학문과 철학이 새 시대 이끌어갈 핵심정신”이라고 했다.

서 관장 취임 후 이들이 한 일이라고는 성균관을 이용해 서 관장을 선전한 것밖에 없다.

공자와 성현들의 말씀이 아니라 서 관장이 세계 최초로 설파했다는 오령설이 새 시대를 이끌어갈 핵심정신이라는 말은 유교 종단에서 결코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얘기다.

여섯째, 영가무도다.

일부 신흥종교에서는 소리 내면서 춤추고 노래 부르는 영가무도를 수련법의 하나로 제창했다. 소리를 내면서 춤추고 노래하면 하늘과 합일하고 몸의 신체 기능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서 관장은 이 영가무도를 흉내 내 일명 북악오령가, 훈로오령십가, 찬송가 등을 만들고 노래 부르게 했다.

급기야는 성균관 문묘 대성전 경내에서까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춰 전국 유림을 경악케 했다.

일곱째, 역사를 아전인수로 왜곡시킨다.

서 관장은 서양의 고대 민주주의가 유교의 민본주의를 수입하여 프랑스 대혁명을 완성하고 현대민주주의로 발전했다거나,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동양의 유기론과 다름이 없다는 등 학계의 공의나 일반 상식에 반하는 발언을 연일 일삼고 있다.

심지어 서 관장은 자신이 유교대전을 펴낸 이유로 잘못 알려진 양반문화를 바로잡기 위해서였다고 하면서, “조선 후기의 양반은 아버지와 임금에게 모든 사상과 충성으로 봉사한다는 의미다. 벼슬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일제가 와서 기걸찬 양반사상을 말살시키고 식민지 노예로 만들기 위해 고려의 양반으로 둔갑시켜 놨다”고 했다.

여덟째, 폐쇄적이고 배타적이다.

서 관장은 원임 관장들을 끊임없이 비방 매도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유도회, (재)성균관, (주)유교신문사 등 관내 다른 조직 구성원들에 대해 모두 정화해야 할 자신의 적이라고 말했다.

공자께서는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자기가 남을 알아보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子曰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論語> 學而篇)”고 하셨고, “군자는 두루 사랑하고 편당을 짓지 않으며, 소인은 편당을 짓고 두루 사랑하지 않는다(子曰 君子 周而不比 小人 比而不周, <論語> 爲政篇)”고 하셨다.

서 관장은 ‘오령교’ 같은 색은행괴나 자기 선전보다는 유교 종단의 수장으로서 유림 사회를 아우르고, 이 사회의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였어야 했다.

공자의 기본 가르침조차 부정하는 서 관장은 이미 성균관장으로서 자격이 없다. 색은행괴는 사교를 만들어 혹세무민하는 자들이나 하는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