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찬길 성균관청년유도회 전남도본부 교육부회장
2025년, 광복 8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은 격동의 근현대사를 관통한 위대한 선각자들을 다시 떠올려야 할 시점에 서 있다.
그중에서도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선생은 민족의 자주(自主)와 정의(正義), 교육(敎育)과 도덕(道德)의 가치를 목숨으로 실천한 유림(儒林)의 지도자이자 독립운동가, 그리고 교육자였다. 그는 단순히 항일운동(抗日運動)에 참여한 인물에 그치지 않고, 일제(日帝)의 폭압과 해방 이후 혼란기 속에서도 유학자(儒學者)로서의 본분을 지키며 한국 근현대사에 길이 남을 정신적 유산을 남겼다. 지금 시점에서 심산 선생의 삶과 사상을 다시 조명하는 것은 단지 과거를 기억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어떤 삶의 방향을 택해야 할지를 묻는 일이기도 하다.
1879년 경상도 성주목 사천방 사월곡(현재의 '대가면 칠봉리 사도실마을')에서 태어난 김창숙 선생은 조선 유학 명문가 의성김씨 가문에서, 조선 중엽 명현인 동강 김우옹 선생의 13대손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성리학(性理學)을 배우며 전통 경전(經典)을 익혔고, 대과(大科)를 꿈꾸며 학문에 정진했다.
그러나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과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을 거치며 국권(國權)이 점차 무너지는 현실을 목도하자 학문을 위한 학문이 아닌, 백성을 위한 실천의 길로 나아갈 것을 결심한다. 유학이 단지 이상(理想)을 읊는 글이 아니라, 백성을 위한 윤리이며 시대를 바로 세우는 근간임을 깨달은 그는 스스로 행동하는 유학자 되기를 선택한다.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그는 "조약은 무효"라며 1인 시위를 감행하고, 일제의 앞잡이들에게 항의서(抗議書)를 보내며 목숨을 건 투쟁을 시작했으며,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후에는 통분한 심정을 이기지 못하여 음주와 양광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모친의 설득으로 독서와 유학에 다시 정진하였다.
그러나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상해임시정부의 활동에 깊이 관여하였으며, 3.1운동 이후에는 파리강화회의(巴里講和會議)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선언문을 전달하였다. 그는 단지 선언에 머무르지 않고, 무장투쟁과 외교 활동, 국내외 지하조직 지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민족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이러한 실천은 곧 유학의 정신, 곧 '의(義)를 위한 죽음'을 몸소 실현한 행위였다.
1920~30년대 그는 일본의 요시찰 인물로 지목되어 수 차례 투옥(投獄)과 고문(拷問)을 당했다. 감옥 안에서도 그는 "나의 죄는 조국을 사랑한 죄요, 나의 잘못은 정의를 믿은 잘못"이라며 끝내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선생은 말년에 이르기까지 일본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해방 이후에도 친일 잔재 청산을 주장하며 정권과 대립하는 용기를 보였다. 그의 행보는 단순한 항일투쟁이 아니라, 한 유학자가 실천한 '정의의 철학'이었다.
해방 후 심산은 전국 유림의 총의를 모아 성균관대학교(成均館大學校)를 설립하고, 초대 총장으로 취임하며 유학 정신을 현대 교육과 접목하여 민족정신의 복원을 꿈꿨다. 단순히 학문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인성(人性)과 도덕(道德), 공동체 정신을 기르는 데 교육의 중심을 두었다. “국가는 학문으로 흥하고, 덕으로 바로 선다(國以學興 以德立)”는 그의 교육 철학은 오늘날까지 성균관대 정신의 뿌리가 되었다.
심산의 사상은 유학의 7대 덕목인 충(忠)‧효(孝)‧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을 토대로 시대적 실천을 강조하는 데 있다. 그는 말로만 유학을 말하는 '서당의 선비들(書堂之儒)'을 비판하며, 행동하는 양심(良心)이 되어야 진정한 유림이라 했다. 그는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약자를 사랑하고 불의를 배척하며, 예의를 갖추고 진리를 탐구하며,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야말로 유학자의 참모습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의(義)'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보았다. “의가 없다면 인간이 아니요, 국가는 짐승의 무리가 된다”고 경고하였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으나, 도덕적 해이(道德的 解弛)와 공동체 해체의 위기에 놓여 있다. 정치적 분열과 이기주의, 공공의 이익보다 개인의 욕망이 앞서는 시대 속에서 심산 선생의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는 단순한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유림은 단지 전통을 보존하는 존재가 아니라, 시대의 도덕을 세우고 미래의 가치 기준을 제시하는 지식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유림회원들은 다음과 같은 덕목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자기 수양(修己), 공동체 봉사(爲民), 정의 실천(行義), 지식의 나눔(敎化) 등이 그것이다.
광복 80주년은 단지 기념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정신으로 자유를 얻었고, 또 어떤 정신으로 그 자유를 유지해야 하는지를 되새기는 계기다.
심산 김창숙 선생은 몸과 마음(身心), 글과 행동(言行)으로 이를 보여주었다. 그는 지금도 "도덕 없는 자유는 방종(放縱)이고, 정의 없는 번영은 허상(虛像)"이라 경고하는 듯하다.
오늘의 유림이여, 심산의 길을 따르자. 가슴에 유학의 정신을 품고, 실천으로 시대를 밝히는 작은 등불이 되자. 그 길이 곧, 우리가 미래 세대에게 남겨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유산(遺産)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