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시론

<특별기고> 추상(秋霜)같은 꾸짖음과 통렬한 반성의 필요성

김두호 성균관 전인, 성균관 윤리위원, 유교신문 전국주재기자협의회 수석부회장 국립국어원이 운영하는 「표준국어대사전」 홈페이지(https://stdict.korean.go.kr)에서도 검색되는 단어인 ‘알권리(right to know)’는 ‘국민 개개인이 정치적·사회적 현실이나 국가가 시행하고 관리하는 정책에 관한 정보 따위를 자유롭게 알 수 있는 권리’라고

오흥녕 2025. 4. 23.

 

 

 

김두호 성균관 전인, 성균관 윤리위원, 유교신문 전국주재기자협의회 수석부회장

 


 

국립국어원이 운영하는 「표준국어대사전」 홈페이지(https://stdict.korean.go.kr)에서도 검색되는 단어인 ‘알권리(right to know)’는 ‘국민 개개인이 정치적·사회적 현실이나 국가가 시행하고 관리하는 정책에 관한 정보 따위를 자유롭게 알 수 있는 권리’라고 정의되고 있다.

 

이것만 봐서는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국가를 상대하여 적용되는 개념인 것같지만 실제로는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일수록 역사적 경험을 통해 ‘공공의 이익에 부합되고, 도움이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거의 무제한에 가까울 정도로 인정되고, 특히 국민을 대신해 정부, 주요 기관 및 단체, 권력과 재력을 가진 이들의 부정과 불합리, 무능력을 찾고 정리하여 알리는 역할을 하는 언론의 ‘알권리를 위한 보도’는 근거가 전혀 없는 허위를 제외한 대부분의 경우에는 폭넓게 받아들여져 왔다.

 

알권리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사실 보도와 함께 불가피하게 비판이 수반되는데, 이를 접한 상대방은 불편하고 불쾌하다는 반응과 함께 시정과 사실 공개보다는 편향적 사고에 바탕한 저항을 드러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회뿐만 아니라 우리 유가(儒家)에서도 언제나 갈등은 존재해왔으며, 공부자(孔夫子)와 맹자의 뜻을 받들어 추노지향(鄒魯之鄕)을 지향하는 입장에서 공맹(孔孟)의 학문과 가르침에 바탕을 둔 정론직필(正論直筆)과 춘추필법(春秋筆法)은 유교가 국가 통치이념 및 사회 운영의 기본원리로 작용했던 조선시대에는 임금님 앞에서도 목숨을 걸고 직언을 고하는 지부상소(持斧上疏, 도끼를 들고 대궐 문밖에서 올리는 상소로 ‘내 말이 틀리다면 목을 쳐서 죽여 달라’는 뜻을 내포함)의 형태로 구현되었다.

 

유가의 기본 의례인 제례도 각설(各設)인 바른 예법이 있고, 인정(人情)인 합설(合設)이 있듯이 바름을 이끌고 알권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본질에 훼손되지 않는 진실을 이야기함이 있는 반면 진실 앞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거짓 세력은 자신들의 그릇됨을 감추기 위해 더 큰 목소리로 또 다른 거짓을 포장하며 결국은 악(惡)의 축(軸)이 되는 운명을 스스로 드러내곤 했다.

 

인류 역사에서도 확인되듯 진실은 결국은 반드시 이기지만 시간이 좀 오래 소요되므로 유유상종(類類相從)의 편향적 사고에 바탕을 둔 아류들의 함성이 보통은 크게 들리곤 하는데, 절제된 목소리를 통한 꾸짖음으로 깨달음과 가르침을 전해온 어른들의 존재감이 사라지며 한국 사회에서 유교가 가지던 무게감과 위상이 우리네 어린 시절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게 낮아졌다.

 

진실에 눈을 감고, 논쟁에서 일부러 멀어지며, 경전 속의 좋은 글귀만 골라서 선비정신과 유교 문화를 운운하는 일부의 모습이 마치 다수의 뜻인 것처럼 곡해(曲解, 사실과 어긋나게 잘못 이해함)되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1879-1962) 선생을 비롯한 선배 유림들이 가족과 재산, 심지어 목숨까지 내걸고 조국 광복과 자유로의 해방을 추구했던 기개(氣槪)를 되찾는 것이 광복 80주년을 맞이한 시점에서 우리 유림이 갖춰야 할 자세이다.

 

1905년 일제에 의해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자 74세의 노구(老軀)를 이끌고 의병을 일으켰다가 체포되어 일본 쓰시마섬(對馬島)에서 식음을 전폐하며 운명한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1833-1906) 선생은 유시(遺詩)에서 ‘만 번 죽어도 진나라의 부귀영화를 탐하지 않고, 한평생 노나라의 춘추를 길이 읽었다네(萬死不貪秦富貴 一生長讀魯春秋)’라고 하신 것처럼 춘추필법의 정신을 끝까지 놓치 않으셨고, 이러한 정신은 격동의 한국 현대사 속에서도 면면히 이어져 지금의 선진 한국을 만드는 밑바탕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 유가와 유림은 국가와 사회에 대해서는 물론 내부에 대해서도 귀와 입을 닫고, 무슨 일이 생기든 외면하려 하며, 조용하게 가만히 있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그래도 유림 어른들이 계시기에 우리 나라가, 사회가, 종단이 이 정도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겠느냐?”던 평가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고, 이런 점들이 유교의 사회적 영향력을 급속하게 퇴보시키는 밑바탕이 되었다.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고 한다(過而不改 是謂過矣)’라는 공부자의 말씀을 경전에서 배워온 우리에게는 더 늦기 전에 진실 앞에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하고, 반성은 부끄러움을 넘어서는 참다운 용기이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않고, 부작용이 생겼음에도 고치지 않는다면 스스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없고, 조직은 더욱 큰 갈등과 혼돈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하더라도 자존감과 이성적 사고는 우리의 믿음이다.

 

눈을 감아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고, 귀를 닫아 세상의 어진 소리를 듣지 못하며, 입을 닫아 꾸짖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가득한 사람이 가치 없는 글로 먼저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