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시론

특별기고 - 600여 년의 전통을 가진 연산향교 전교에 취임하며

이덕래 / 연산향교 전교, 전북대 명예교수 나는 지난 1월17일 오전 10시 연산향교 대성전에서 전교(典校) 고유(告由)를 마치고, 11시 유림회관에서 황명선 논산시장, 홍성목 논산시 부시장, 이충렬 논산시의회 부의장, 성기문 충남향교재단 이사장, 전낙운 도의원, 김만중 논산시의원, 송순이 논산시 문화예술과장, 이정휘 연산면장, 이성순 양촌면장, 친지, 가

편집부 2018. 2. 20.

이덕래 / 연산향교 전교, 전북대 명예교수

 

나는 지난 1월17일 오전 10시 연산향교 대성전에서 전교(典校) 고유(告由)를 마치고, 11시 유림회관에서 황명선 논산시장, 홍성목 논산시 부시장, 이충렬 논산시의회 부의장, 성기문 충남향교재단 이사장, 전낙운 도의원, 김만중 논산시의원, 송순이 논산시 문화예술과장, 이정휘 연산면장, 이성순 양촌면장, 친지, 가족, 유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임기 3년의 전교에 취임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향교란 단어가 최초로 언급된 기록은 태조 1년(1392년) 7월28일에 발표된 즉위 교서에서 찾을 수 있다. “중앙에는 국학(國學)과 지방에는 향교(鄕校)에 생도(生徒)를 더 두고 강학(講學)을 힘쓰게 하여 인재를 양육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태종 6년(1306년) 6월27일에는 향교의 입학정원과 제전(祭田)도 고을의 크기에 따라 차등으로 정했다. 유수관(留守官)에 있는 향교는 50명, 대도호부(大都護府)와 목(牧)에 있는 향교는 40명, 제전(祭田)은 각각 6결(結; 1결은 1헥터), 도호부(都護府)에 있는 향교는 40명, 제전은 4결, 현령(縣令)과 감무(監務)가 있는 향교는 15명, 제전은 2결로 되어 있다. 또한 태종 13년(1413년) 11월11일에는 향교소속 노비(鄕校奴婢)의 수(數)를 정하였다. 유수관(留守官)에 있는 향교는 20호(戶), 대도호부(大都護府) 목관(牧官)은 15호, 지관(知官)은 7호, 현령(縣令), 현감(縣監)이 있는 향교는 5호로 했다가 태종 17년 5월에는 노비 정원을 다음과 같이 증가시켰다. 유수관(留守官)은 30구(口), 대도호부(大都護府) 목관(牧官)은 25구, 단부관(單府官)은 20구, 지관(知官)은 15구, 현령(縣令), 현감(縣監)은 10구를 정속(定屬)시켰다.

연산향교의 창건에 관련된 문헌은 1530년(중종 25년)에 이행(李荇), 홍언필(洪彦弼)에 의해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제18권 충청도편에 있다. 다음은 『신증동국여지승람』충청도편 중에서 연산향교에 관련된 내용의 일부다.

정이오(鄭以吾;최종 직책은 판우군도총제부사)의 기문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박곤[朴坤;최후 직책은 평안도 순문사(平安道巡問使)]이 연산 현감으로 부임한 이듬해에, 고을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학교는 왕정(王政)의 근본이다. 옛날에는 그 정치의 성쇠를 학교의 흥폐로서 관찰하였던 것이니, 이른바 나라에는 학이 있고, 향(鄕)에는 서(序)가 있으며, 당(黨)에는 상(庠)이 있고, 집에는 숙(塾)이 있었다고 한 것은, 삼대(三代)의 융성하던 시대의 제도였다. 이제 성명(聖明)이 위에 계시어, 유학이 쓰여서 안으로는 성균관과 밖으로는 주군(州郡)에 학교가 없는 곳이 없다. 이 고을로 말하자면 전조(前朝)의 태조와 우리 태상왕(太上王 태조)께서 모두 도읍을 정하려던 곳이다. 산천의 웅장ㆍ수려함을 보건대, 인재가 일어날 것을 알 수 있거늘, 유독 학교가 없다면 되겠는가’ 하고, 현의 북쪽 1리에 향교를 세워 유학의 교육에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업무가 끝나 여가시간에는 자제들과 함께 향교에 와서 강론(講論)을 하곤 하였다.”

태상왕이란 단어가 있는 것으로 보아 태종 초기라 생각된다.

연산향교 건물은 전학후묘(前學後廟)로 배치되어 있다. 600여년 세월 동안 계유정란을 비롯한 12사화와 각종 사건과 병자임진란 등에서 죽어간 영혼을 묵묵히 지켜본 정면 3칸, 측면 3칸, 겹처마 맞배지붕의 대성전, 정면 3칸, 측면 3칸이라고는 하나 측면이 정면의 반정도인 명륜당에서 책 읽는 소리는 ‘황산성’까지 메아리쳤고, 명륜당 좌우에는 전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의 동서재가 있고, 담장 밖에는 국궁을 하고 등줄기 땀을 식혔던 정면 2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의 충남 유일의 문묘정(文廟亭)이 보수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나는 충남 논산시 연산면에서 태어나 충남대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편포의 신장 특성에 관한 연구」란 논문으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섬유공학을 전공하고 1975년 전북대 공과대학 섬유공학과 전임교수가 되어 외길 한평생 섬유학문 연구와 후진양성에 매진하다가 2009년 8월31일 정년퇴임을 했다.

현직에 있을 때 외국학술지(SCI)에 31편의 논문을 게재했고, 『섬유역학』 등 5권의 전공서적과 교양서적으로 『기초풍수지리학』, 『산넘고 물건너 명당찾아 삼만리』, 『산따라 물따라 테마여행』을 출간했고, 퇴직 후 전주이씨 익안대군 영당지인 『원훈각지』를 출판했다. 그리고 전주이씨 교양잡지인 『이화(李花)』에 「태조고황제 황산대첩비」(2014/7,8월호) 등 11편을 게재했으며, 유교신문 기자 글 모음집 『문필봉 기슭에 추노지향을 꿈꾸며』에도 「삼시세끼」 등 3편의 글을 실었다.

퇴직을 5년 앞둔 2004년 여름 어느 날 오후 나는 퇴직을 하고 남은 여생을 무엇으로 소일할까 하고 생각한 것이 서예였다. “붓글씨는 인간이 신(神)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예술(藝術)이다”라는 말과 같이 묵향에 취하여 무아지경에 도달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퇴직까지 남은 5년 동안 각종 서예공모전에 출품하여 40점 이상의 입상을 목표로 연구실에서, 집에서 연습에 연습을 하여 퇴직 당시에는 입상작품이 45점에 달했다. 연구실에서 새벽 2시까지 묵향에 심취되곤 한 때도 있었다.

정년퇴임 기념집인 『섬유와 더불어 50년 묵향 속에서 5년』은 정년을 아쉬워하는 동료교수, 친구, 제자들과 가족들이 남긴 글 모음과 5년 동안 각종 서예공모전에서 입상한 작품 45점(특선 이상 23점)과 신작 25점으로 구성하였다. 2009년 8월 28일부터 9월 3일까지 전북예술회관 전시장 3실과 4실을 대여하여 3실에는 입상작 45점을 전시했고, 4실에는 신작 25점을 전시하여 제1회 개인전을 했다.

붓을 잡게 된 동기가 여가선용이나 취미로 시작한 것이 아닌 40여 년의 교수생활을 여미고 자유인이 되었을 때 또 다른 인생의 희망을 교단에서 분필을 잡듯이 묵향에 취해 붓을 잡아보고자 시작한 지 어언 15여년의 세월이 흘러 현재는 한국 서예 4단체 중 하나인 한국서도협회 초대작가가 되었다.

퇴직 후 고향 연산으로 돌아와 죽마고우이며 연산향교 전교를 엮임하고 현재 논산시 유림협의회장인 국봉중 회장의 권유로 유림에 입문하여, 유교신문 기자, 연산향교 유도회장, 논산 가야곡 조정서원장을 거쳐 2018년 1월1일부로 연산향교 전교에 취임을 했다.

연산 지역은 사계 김장생, 신독재 김집, 우암 송시열, 동춘당 송준길 등으로 이어진 기호학파의 근원지라 생각된다. 특히 사계 선생님과 신독재 선생님은 연산향교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가르치셨다. 논산지역에는 기호학파의 근원지답게 3곳의 향교(연산, 은진, 노성)가 있으며, 돈암서원 등 10곳의 서원이 있다. 서원에는 우리나라 현인 58분이 배향되고 있다. 또 공자와 주자가 배향된 노성궐리사를 비롯하여 신충사와 충헌사가 있다. 돈암서원과 노강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도 충청도에서는 유일하게 훼철되지 않은 서원이다.(사우 제외)

논산 지역에는 위에서와 같이 3곳의 향교가 있어 각 향교 소속 장의로 구성된 논산시 유림협의회(현회장 국봉중)가 2001년부터 운영되고 있으며, 봄과 가을 유림지도자 교육연수와 선진지 견학을 실시하고 있다. 필자는 유림에 입문한 후 유림지도자 연수교육에서 2015년 전반기 ‘조선왕조실록/논산시 편’, 2015년 후반기 ‘논산시 관내 서원 주벽의 이력(왕조실록을 중심으로)’, 2016년 후반기 ‘조선조 제16대 인조대왕이 5박 6일 주필했던 공산성을 가다’ 등의 제목으로 교육을 한 바 있다.

유림협의회에서는 선진지 견학으로 2013년 소수서원 봉심과 부석사 탐방(국보 5점, 보물 4점, 2014년 전반기 병산서원 봉심과 화회마을 관광, 하반기 경주향교 봉심과 불국사 탐방(국보 13점과 보물 20점), 2016년 무성서원 봉심과 정읍 김동수 99칸 한옥 관람, 전주 경기전에서 조선 태조 이성계 영정(국보 제 317호) 참배, 2017년 남계서원 봉심과 일두(一蠹)선생 생가지 탐방, 2018년 도동서원을 봉심한 바 있다.

향교 업무를 크게 분류해 보면 제향(祭享)과 교화(敎化)라 본다. 석전(釋奠)을 상정제(上丁祭) 또는 정제(丁祭)라고도 하는데 이는 제향을 2월과 8월 상정일(上丁日;첫번째 丁일)에 행했기 때문이다.

제향일에 대한 문제다. 석전제향을 향교에 따라 2월과 8월 초정(初丁)에 모시는 곳도 있고, 공자가 사망한 5월 11일과 탄생한 9월 28일에 모시는 곳도 있다. 연산향교는 후자를 택하고 있다. 모두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28초정으로 하든가! 아니면 공자께서 태어나고 사망하신 날로 하든가! 성균관이 중심이 되어 통일을 기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된다. 탄생하신 날에 제향을 모신다는 것은 좀 우습지 아니한가? 그리고 유교신문 2월1일자 방동민 사무국장의 기제사에 대한 논고에서 ‘우수진유(右首進月臾 )’ 즉 생선의 머리는 우측, 꼬리는 동쪽이라고 했다. 그러나 시판매되고 있는 제례에 관련된 많은 서적에는 ‘두동미서(頭東尾西)’로 되어 있다. 즉 우수진유와 정반대다. 참고로 성균관에서 2002년 2월27일에 발행한 우리의 생활예절 p.335에도 두동미서로 되어 있다. 혼란이 초래된다. 논산 지역 3곳의 향교와 10곳의 서원, 3곳의 사우에서는 제향 때 어해(魚醢;소금에 절인 조기)와 포를 진설할 때 두동미서로 하고 있다.

연산향교는 제향업무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장의를 대상으로 2016년과 2017년에 각각 12주로 해서 ‘유교아카데미 교육’을 실시했다. 아카데미 전문교육 강좌로는 문묘배향 선현, 한국유학 사상, 공자의 학문관, 맹자의 성선설 등을 설강하였고, 일반강좌로 생활예절, 석전의례, 향교석전, 논산지역 문화유적, 음양오행, 관내 정려 등을 설강하였다. 그리고 춘추석전제향 때는 매년 연산초등학생 5, 6학년 50여명을 초청하여 제향과정을 참관하게 하고 있다. 앞으로도 아카데미교육을 계속하고자 한다. 또 도덕선양의 활동으로 매년 석전을 행사하면서 동시에 지역민의 권선(勸善)과 도의(道義) 진작을 위하여 효행(孝行)과 열행(烈行)을 발굴하여 표창하고 있다.

다음으로 교화업무를 살펴보자. 유림들이 존성모현(尊聖慕賢)의 마음을 가지고 선을 권장하고 기리는 권선포양(勸善褒揚)하는 사업을 실행하기 위하여 1981년부터 ‘존성동우회’를 설립하여 매년 정월 이십일 유림과 면민의 단합과 친목을 위하여 ‘척사대회’를 하고 있다. 또 관내 유림 자손 중 재능이 뛰어나고 향학열에 불타면서도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하게 장학금을 지급하기 위하여 ‘야촌장학회’가 2001년에 발족되어 관내 초중고등학생에게 800여만원의 장학금을 59명에게 5만원부터 50만까지 차등 지급했다.(초등 5만, 중등 10만, 고등 30~50만원). 2017년에는 건양고등학교 신입생 1인에게 장학금 50만원을 지급했다.

사회교육활동으로 1997년부터 2014년까지 ‘충효교실’을 운영하여 초등, 중등, 고등학생들에게 충효, 도예, 궁국, 승마, 서예교실을 운영했고, 2016년과 2017년는 매년 관내 5개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성인례’를 시행하였다. 또 일반인과 장의들의 교육을 위하여 2001년부터 현재까지 ‘청금학당’을 운영하고 있다. 강독내용은 사서삼경을 비롯하여, 주역, 장자, 노자에 이어 현재는 『성학집요(聖學輯要)』를 설강하고 있다. 훈장으로는 문묘전교를 역임한 박성기 연산향교 고문님이 18년째 수고를 하고 계신다.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장의님들의 견문지식을 높이기 위해 2013년에는 ‘자운서원 봉심과 방촌기념관 견학’, 2015년에는 ‘옥산서원 봉심과 경주 양동마을 탐방, 보현산 천문대 탐방’ 등을 실시하였다. 필자가 입문하기 전에는 도산서원, 필암서원도 탐방했다 한다. 2019년에는 세종대왕 영릉과 신륵사 탐방을 계획하고 있다.

1914년 행정개혁 전에는 연산향교의 관할지역이 9개면이었으나 현재는 연산면, 벌곡면, 양촌면, 부적면 등 4개면으로 각 면의 생활여건이 매우 열약하다. 열약한 생활여건 아래서도 매월 삭망분향(朔望焚香)에는 15~20분의 장의님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삭일분향에 더 많은 분이 참여한다. 정유년 마지막 망일분향(2018년 1월17일)에는 16분이 참여를 했다. 나는 임기 동안 연산향교를 한층 업그레이드하는데 전교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찾아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자 한다. 즉, ‘誠無不成’과 ‘愼獨’의 정신으로 전교 임무를 수행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