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경영

삼성전자 성과급 명문화 요구, 김육(金堉)의 자리에 서 있는가? [유교경영리포트]

분배의 명문화는 신뢰 누적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1608년 광해군 즉위년에 경기도에서 시작된 대동법(大同法)이 1708년 숙종 34년 황해도까지 확대되며 100년에 걸쳐 자리잡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2026년 5월 삼성전자 노사가 두 번째 총파업의 분수령에서 직면한 핵심도 이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조합원 약 7만 50

김정기 기자 2026. 5. 13.

 

분배의 명문화는 신뢰 누적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1608년 광해군 즉위년에 경기도에서 시작된 대동법(大同法)이 1708년 숙종 34년 황해도까지 확대되며 100년에 걸쳐 자리잡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2026년 5월 삼성전자 노사가 두 번째 총파업의 분수령에서 직면한 핵심도 이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조합원 약 7만 5000명은 영업이익 15% 성과급 재원 명문화와 상한 폐지 제도화를 요구하며 5월 21일부터 6월 7일까지 총파업을 예고했다. 사측은 일회성 특별 보너스로 경쟁사 이상 보상은 가능하나 제도화는 어렵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양측 모두 명문화(明文化)의 문턱에서 멈춰 있다. 다만 그 문턱 아래 깔려야 할 신뢰의 토대는 사실상 비어 있다.

 

□ 김육의 자리...100년을 견딘 한 점진주의자

 

대동법은 한 번에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다. 1569년 선조 2년 율곡 이이(李珥)가 수미법(收米法)을 처음 제안했으나 실패했다. 1608년 한백겸(韓百謙)의 제안과 이원익(李元翼)의 건의로 비로소 경기도에서 시작됐다. 그 후 강원도(1624), 충청도(1651), 전라도(1658·1662), 함경도(1666), 경상도(1678), 황해도(1708)까지 확대되는 데 정확히 100년이 걸렸다.

 

이 100년을 짊어진 인물이 잠곡(潛谷) 김육이다. 김육은 효종 2년인 1651년 영의정으로서 호서대동법(충청 대동법) 시행을 관철했다. 효종실록에 따르면 그는 "신이 살아 있을 동안 한 도(道)라도 더 시행되기를 원합니다"라는 취지로 거듭 청을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1658년 그가 졸하기 직전까지 상소를 멈추지 않았다.

 

김육이 한꺼번에 전국 명문화를 밀어붙이지 않은 까닭은 분명하다. 매 단계마다 "이 제도가 약속을 지킨다"는 사실을 백성과 사대부 양쪽에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 도(道)에서 효과가 입증된 뒤에야 다음 도로 확대됐다. 신뢰가 한 칸씩 누적된 자리에서만 명문화가 다음 칸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 명문화 요구의 자리...그러나 누적이 없다

 

삼성전자 노조 측이 명문화를 요구하는 배경에는 누적된 불신이 있다. 노조 관계자는 "회사는 성과가 잘 나왔을 때 축적해 뒀다가 적자 시 보전해 주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입장을 전한 바 있다. "회사의 명문화란 말을 사실 믿지 못하겠다"는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사측이 명문화를 거부하는 배경에도 또 다른 불신이 자리한다. 반도체 산업의 변동 사이클을 고려할 때 영업이익 일부를 고정 배분할 경우 업황 둔화 시 설비 투자 재원이 제약될 수 있다는 우려다. 미래 투자 여력과 사업부 간 균형이 흔들릴 가능성도 사측이 제도화를 거부하는 명분이다.

 

두 입장 모두 명분이 있다. 다만 어느 쪽도 김육의 자리에 서 있지 않다. 노조 측은 한 번의 폭발적 요구로 100년 걸린 명문화의 결승선에 닿으려 한다. 사측 측은 일회성 보너스로 매년 협상을 회피하려 한다. 점진적 신뢰 누적의 자리, 한 칸씩 약속을 증명하는 자리는 비어 있다.

 

□ 57년과 6년...누적의 시간이 짧다

 

삼성그룹은 1938년 삼성상회 창업 이래 약 80년, 삼성전자는 1969년 창사 이래 약 50년간 무노조 경영을 견지했다. 이재용 회장이 2020년 5월 6일 대국민 사과를 통해 무노조 경영 폐기를 선언한 시점부터 헤아리면 노사관계의 누적 시간은 단 6년이다. 2021년 첫 단체협약 체결 이후로는 5년이다. 그 짧은 누적 위에서 양측은 곧장 명문화의 문턱에 도달했다.

 

대동법이 100년 걸린 까닭, 김육이 한 도씩 시행한 까닭은 분명하다. 신뢰는 단번에 명문(明文)이 될 수 없다. 매 단계의 약속이 지켜졌다는 증거가 누적된 뒤에야 다음 단계의 명문화가 가능해진다. 57년의 침묵 뒤 6년의 단체협약 위에서 영업이익 15%의 명문화를 단번에 관철하려는 요구는, 김육이 100년에 걸쳐 만든 길을 6년 만에 가겠다는 시도와 다르지 않다. 사측이 일회성 보너스로 매년 협상을 미루려는 태도 역시 누적의 자리에서 도망치는 또 다른 형태다.

 

□ 견리사의(見利思義)와 정도경영

 

논어 헌문(憲問)편의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은 이익을 보면 의(義)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는 가르침이다. 김육의 100년은 이익의 분배가 아니라 의의 회복이 우선이었다는 자리의 기록이다. 양반층 부담이 늘어남에도 그가 끈질기게 호서대동법을 청한 까닭은 백성과 사대부 사이의 신뢰가 무너지면 분배 제도 자체가 설 자리를 잃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의 본질은 성과급 비율이 아니라 신뢰의 토대"라고 전했다. 노조 측이 명문화를 요구하기 전에 사측의 약속 이행 기록을 한 칸씩 누적시킬 절차가, 사측 측이 명문화를 거부하기 전에 매년의 보너스 결정에 노조 측이 참여할 통로를 한 칸씩 열어 줄 절차가 비어 있다. 정도경영(正道經營)은 명문(明文)의 문제이기 이전에 도(道)의 문제이며, 도는 매일의 약속 이행이 누적된 자리에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신뢰 없는 명문화는 사상누각(沙上樓閣)이다. 1651년 김육이 효종에게 청한 자리는 그 사상누각을 피하려는 100년의 첫 칸이었다. 2026년 5월 삼성전자 노사가 마주한 자리는 그 첫 칸조차 다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 결승선을 요구하는 자리다. 


□ 2026년 삼성전자 총파업 경과

 

반도체 슈퍼사이클 진입과 함께 영업이익 전망치가 사상 최고 수준을 향하는 가운데, 노조 측은 성과급 산정 기준의 불투명성과 분배 확대를 핵심 의제로 제기해 왔다. 2024년 여름 창사 이래 첫 파업이 두 달여 만에 가시적 성과 없이 종료된 뒤, 노조 측은 조직 정비를 거쳐 2026년 4월 30일 정부로부터 과반노조 지위를 정식 인정받았다.

 

노사는 2025년 12월 16일 본격 임금교섭에 들어갔다. 다만 2026년 2월 19일 노조 공동교섭단이 결렬을 공식 선언했고, 2월 20일 중앙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을 신청했다. 3월 4일 중노위 조정에서도 합의가 불발됐다. 3월 9~18일 쟁의행위 찬반 투표에서 찬성률 93.1%로 가결됐고, 4월 16일 사측은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을 법원에 신청했다. 4월 23일 노조 측은 평택사업장 앞에서 약 4만 명 규모 결의대회를 열고 5월 총파업을 예고했다. 한편 5월 11~12일 정부세종청사 중노위에서 2차에 걸친 사후조정이 진행됐으나, 13일 새벽 최종 결렬됐다. 노조 측은 예정대로 5월 21일부터 6월 7일까지 18일간 총파업을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노조 측 요구안은 ①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명문화, ② 초과이익성과급(OPI) 상한(현 연봉 50%) 폐지 제도화, ③ 성과급 산정 기준 투명화, ④ OPI주식보상제도 확대 등 네 갈래다.

 

사측 측은 영업이익이 아닌 경제적 부가가치(EVA) 기준 유지, 국내 1위 성과 달성 시 특별 보너스 형태로 경쟁사 이상 보상이라는 방침을 견지하고 있다. 다만 제도화는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반도체 산업의 변동 사이클을 고려할 때 영업이익 일부 고정 배분이 미래 투자 여력과 사업부 간 균형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근거다.

 

삼성전자 노사관계의 향방을 결정지을 법원의 가처분 판결은 5월 13~20일 중 내려질 전망이다.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의 인용 여부와 함께,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 노사 추가 협상 재개 여부가 핵심 변수로 꼽힌다. 한편 글로벌 투자은행 측은 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삼성전자 손실 규모가 최대 43조 원에 이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