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한문단편집』이 현대적 문체와 장정으로 새롭게 선을 보인다. 이 책은 학계는 물론이고 그간 여러 역사소설과 시대극에 자양분을 제공하며 널리 각광을 받아온 저작이다. 이를 다시 펴내기 위해 편역자는 장장 5년의 기간 동안 제자들과 함께 독회의 과정을 밟으며 젊은 언어 감각을 더하고, 최신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해 전 4권의 대작을 완성했다.
이 책에는 우리 문학사의 ‘소설시대’ 18~19세기 한문단편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 187편(연암 소설 11편 포함)이 수록되었다. 이들 작품이 생산된 시기는 경제구조의 변화로 상업자본이 형성되고 화폐경제가 발전했으며, 도시가 형성되고 농촌에서는 종래의 지주‑소작관계가 해체되어, 빌린 땅을 경작하여 수익성을 높여 치부하는 이른바 ‘경영형 부농’이 출현하던 무렵이었다.
전통적인 양반 사대부가 몰락하고 중인·서리층이 득세하며, 상인·수공업자·농민 가운데에서 신흥 부자들이 출현하여 사회 세력관계의 판도가 바뀌는 격변기였던 것이다. 이 변화하는 사회가 뿜어내는 활력은 거리의 이야기꾼들에게 풍부한 소재를 제공하여 문화의 활력으로 이어지면서 다양한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여기 실린 작품들에는 양반 사대부에서 역관과 상인 등의 신흥부자, 기생·명창 등의 예인, 도둑·거지·사기꾼에 이르는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하여 흥미로운 생활의 단면과 신기하고 기막힌 인생유전을 들려준다.
더욱이 이들 작품은 문인 선비들이 창작한 패사소품(稗史小品)이 아니라 거리와 민가의 사랑방에서 이야기꾼들이 입으로 재현한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 것이어서, 소박하고 실감 나는 표현으로 생생한 감동을 전한다. 아울러 저잣거리의 이야기에 작가의식이 가미되면서 우리가 아는 근대적 소설의 경지로 나아가는 현장을 목격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책을 구성하는 6개 부의 제목은 그대로 당시의 시대상을 집약하고 각계각층 사람들의 생활을 압축한 키워드들이다. 경제형태의 변화는 제1부 ‘부’에, 윤리관의 변화는 제2부 ‘성과 정’에, 사회제도의 변화는 제3부 ‘세태 I: 신분 동향’에, 그리고 당시 조선 서민들의 다양한 생활상은 제4부 ‘세태 II: 시정 주변’에 실린 작품들이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회변화 속에서 새로운 시대를 향한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들은 제5부 ‘민중 기질 I: 저항과 좌절’에, 그리고 새 시대를 담당할 세력의 활력을 보여주는 작품들은 제6부 ‘민중 기질 II: 풍자와 골계’에 수록되었다.
이번에 선보이는 『이조한문단편집』은 또 한번의 사제간 협동작업의 산물이다. 동아시아적 학지(學知)로서 한국학·한문학의 가치를 재정립한 거두 임형택 선생이 제자들과 5년간의 독회를 거쳐 재번역한 이 책은 젊은 언어감각을 더하고 45년간의 연구 성과를 충실히 반영하였다.
초판에서 대개 작자가 밝혀져 있지 않던 작품들을 이번에 거의 다 확인하고 출처를 새로 고증하여 한문단편 연구에 한 매듭을 지었다. 이것이 3권 끝에 ‘출전 해제’와 ‘수록 작품의 작자 일람’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또한 각주를 대폭 보완하여 한문 어휘를 풀이하고 문장을 다듬어 현대 독자가 전래 이야기의 재미를 최대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1~3권이 우리 이야기를 찾는 일반 독자들을 위한 현대적 번역문이라면, 전문 연구자들을 위해 4권에 원문을 별도로 모아 정리했다.
이 책은 수십년에 걸친 학문적 탐색과 실증적 한문학에 대한 열정이 우리 문학과 문화의 뿌리를 밝혀 다양성과 풍요로움을 더하는 바로 그 현장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동안 잊고 있던 옛날이야기의 재미와 한문 고전의 품격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재미난 이야기책이다.
울고 웃고 사랑하고 욕망하는 사람들, 속이고 훔치고 싸우고 저항하고 슬퍼하며 살던 사람들의 몸짓과 표정이 생생하다. 이 책이 처음 나와 현대문학의 걸작 『장길산』과 『객주』를 비롯한 여러 현대소설의 자양분이 되었듯이 새로 태어난 지금 이제까지 없던 어떤 꽃을 피울지 기대가 무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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