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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역 문화재를 소개합니다]행림서원 -만죽헌 서익, 도애 이소 선생 학덕과 선정 추모-

행림서원 충남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에 소재한 행림서원은 1867년(고종 4년)에 만죽헌(萬竹軒) 서익(徐益, 1542~1587) 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서원이다. 본래 서익 선생은 논산시 가야곡면 산로리의 갈산사우(葛山祠宇)에 배향되었다가 현 행림서원에 분향(分享)됐다. 1868년(고종 5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없어졌다가 1926년 정면

이기채 기자 2014. 7. 22.

 

행림서원

 


 

충남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에 소재한 행림서원은 1867년(고종 4년)에 만죽헌(萬竹軒) 서익(徐益, 1542~1587) 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서원이다.

 

본래 서익 선생은 논산시 가야곡면 산로리의 갈산사우(葛山祠宇)에 배향되었다가 현 행림서원에 분향(分享)됐다.

 

1868년(고종 5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없어졌다가 1926년 정면 3간 측면 2간의 맞배식 건물로 사우를 다시 건립했다.

 

그 후 1976년 도애(桃崖) 이소(李韶, 1564~1646) 선생을 추배하고 매년 음력 3월30일과 9월30일에 향사를 올리고 있다.

 

서원 앞에는 서익선생의 묘정비가 서있고 아름드리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다. 이로 인하여 행림서원이라 한다.

 

서익 선생은 조선 때의 문신으로 자는 군수(君受), 호는 만죽헌, 본관은 부여(扶餘)이다.

 

1569년(선조 2년)에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 급제하였으며 1583년(선조16년)에 비변사당상(備邊司堂上) 이준민(李俊民)의 추천으로 군수가 되었고 이해에 다시 종부사첨정(宗簿寺僉正)으로 순문관(巡問官)이 되어 북방(北方)에 파견됐다.

 

1585년에 의주목사(義州牧使)가 되었으나 탄핵을 받은 이이(李珥)를 변호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파직되었다.

 

1587년 1월14일에 세상을 떠나니 향년 46세였다. 저서로는 만죽헌집(萬竹軒集)이 있다.

 

이소 선생은 자는 광구(光九), 호는 도애,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효령대군(孝寧大君)의 후손이다.

 

주계군(朱溪君)과 이소재(履素齋)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천성이 강직하고 결백하였고 학문을 깊이 연구하여 도덕군자라 일컬었으며 우계(牛溪) 성혼(成渾)과 도의지교(道義之交)였다.

 

선조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사옹원주부(司饔院主簿)에 이르렀는데 광해조(光海朝) 때에 정치가 문란함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관직에서 물러난 후 장차 화가 미칠까 염려하여 그의 저서를 모두 불살라 버렸다.

 

인조반정(仁祖反正) 후에 그의 충직이 알려져 이조참의(吏曹參議)와 이조판서(吏曹判書)등의 벼슬을 주어 불렀으나 3차에 걸쳐 모두 사양하고 취임하지 않았다가 급기야는 은진현감(恩津縣監)으로 취임하였다.

 

은진현감으로 봉임한 지 얼마 안돼서 고을 인심이 순화되고 치적이 현저하였으며 덕으로 행하는 현정(縣政)을 펼쳐 읍민들이 선정비(善政碑 : 논산시 가야곡면 종연리)를 세워 그의 업적을 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