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易으로 보는 세상 145작위적인 인정을 경계해야 한다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육삼은 애꾸가 능히 보며 절름발이가 능히 밟음이라. 호랑이 꼬리를 밟아서 사람을 무니 흉하고, 무인(武人)이 임금(大君)이 되도다. [리괘 육삼] 소순(蘇洵)은 북송의 대학자이다. 28세 때 과거에 낙제하자, 사천성 미산현의 고향에서 두문불출하며 독서에 전념했다. 유가의 경전은 물론이고 제자백가에 이르기까지 두루 통달하게 되었으며,

편집부 2018. 5. 15.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육삼은 애꾸가 능히 보며 절름발이가 능히 밟음이라. 호랑이 꼬리를 밟아서 사람을 무니 흉하고, 무인(武人)이 임금(大君)이 되도다. [리괘 육삼]

소순(蘇洵)은 북송의 대학자이다. 28세 때 과거에 낙제하자, 사천성 미산현의 고향에서 두문불출하며 독서에 전념했다. 유가의 경전은 물론이고 제자백가에 이르기까지 두루 통달하게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그의 글은 광대하고 심오한 내용이 담기게 되었다. 인종(仁宗) 말기에 아들(소식·소철)을 데리고 상경하여 당시 한림학사 구양수(歐陽修)를 찾아가 22편의 글을 보여주고 서로를 인정하는 사이가 되었고, 구양수의 집에 머물며 학자들과 교제하며 그의 두 아들도 동시에 과거에 합격하는 등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당시 장안에는 왕안석(王安石)의 인품과 학식에 반해서 그와 사귀고자 하는 사람이 줄을 서고 있었다. 구양수가 소순에게 왕안석을 만나 사귀기를 권하였고, 왕안석 역시 새로이 떠오르는 소순의 명성을 듣고 사귀기를 원하였다.

하지만 소순은 왕안석이 나라를 어지럽힐 사람이라고 하며 사귀기를 거부하며 만나지 않았다. 왕안석의 모친이 죽었을 때 그 명성과 권세를 생각하여 모두가 문상을 갔지만, 오히려 「변간론辨姦論」을 지어 경계하였다.

그 글에서 "모든 일에는 참으로 그렇게 되는 이치가 담겨 있다. 다만 고요히 침잠할 수 있는 사람만이 그 미미한 조짐에서 크게 드러나는 사건을 알 수 있다. 달무리가 지면 바람이 불고, 주춧돌에 윤기가 돌면 비가 온다는 것은 사람마다 다 알 수 있다. 하지만 현명한 사람도 지나치며 모를 때가 있는데, 좋아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마음속을 어지럽히고 이로움과 해로움을 따지는 마음이 눈과 귀의 총명을 빼앗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어서 "얼굴에 먼지가 묻으면 씻을 것을 생각하고, 옷이 더러우면 세탁할 것을 생각하는 것이 사람의 통상적인 인정이다. 하지만 거칠고 싼 모시옷을 입으며, 개와 돼지가 먹는 비루한 먹이를 자신의 음식으로 먹으며 검소하다고 하고, 죄수처럼 머리를 감지 않고 상주처럼 얼굴을 씻지 않은 몸을 해서 경전을 논하는 것은 사람의 통상적인 인정이 아니다. 인정에서 멀어진 행동을 하는 사람이 등용되면 나라를 망치게 된다. 그런데도 지금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안자나 맹자가 다시 태어난 것이라고 존경하며 등용되어 쓰이기를 원하니, 내가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 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하며 왕안석의 작위적인 언행을 경계한 것이다.

모두 고개를 갸우뚱하며 왕안석이 그럴 리가 없다고 했는데, 그로부터 10년 뒤에 왕안석이 중용되어 신법을 펼치게 되었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부국강병을 주장하며 기득권층으로부터 권력과 재물을 빼앗아 신진사대부와 백성에게 나눠주려 한 신법이 옳다고 하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의 인정(人情)을 고려하지 않은 급진적인 개혁으로 인해 국론이 분열되었고, 그의 개혁을 강하게 지지해주던 임금(신종)이 죽자 왕안석 자신도 반대파에 밀려서 신법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죽게 되었다. 그래서 역에서는 "능력과 환경을 생각하지 않은 채 뜻만 강하게 주장하면 흉하게 된다"고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