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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지역 문화재를 소개합니다〕간성향교 기적비(紀蹟碑)

간성향교 기적비 간성향교에 있는 기적비는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해상 2리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 건너편에 서 있는 세 그루의 노송 사이 비각 내에 위치하며 조선시대 석조물 기념비에 속한다. 비각은 정면 측면 각 1칸 (305cm×276cm)이며 맞배지붕이고 약 70cm 높이의 초석 위에 기둥을 세웠다. 내부에 기적비를 두고 홍살을 둘렀다. 비대좌와 개석은

류경렬 기자 2014. 9. 12.


 

간성향교 기적비

 


 

간성향교에 있는 기적비는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해상 2리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 건너편에 서 있는 세 그루의 노송 사이 비각 내에 위치하며 조선시대 석조물 기념비에 속한다. 비각은 정면 측면 각 1칸 (305cm×276cm)이며 맞배지붕이고 약 70cm 높이의 초석 위에 기둥을 세웠다. 내부에 기적비를 두고 홍살을 둘렀다.

 

비대좌와 개석은 화강암 재질로 개석의 앞뒤로는 당초문과 꽃봉우리가 조식되어 있다.

 

섬록화강암 재질의 비신은 142cm×60cm×22cm 크기이며 주칠이 되어 있는 비문은 영의정 이병모가 찬(撰)하고 형조판서 서영보의 서(書)와 유한지의 전(篆)으로 되어 있다.

 

기적비의 비문 내용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왜구가 육해로 침략하여 팔도강산을 제멋대로 휩쓸어 간성에 와서는 부자묘에 있으면서 강당을 마구간으로 개축하는 등 행패가 심하였으므로 수직하던 사람도 도망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이에 향교의 재임이었던 김자발과 박응열이 통곡하면서 왜구의 행패가 공자의 성묘를 이같이 모욕하니 우리는 의를 위하여 죽자고 그 아우 자용과 용훈이 함께 왜구의 총검을 두려워하지 않고 교궁에 뛰어들어 “네 놈들이 아무리 교활하고 포악한 도적이라 할지라도 여기가 공부자의 묘인 것을 모르느냐. 여기가 어디라고 피를 뿌려 성역을 더럽히느냐”하고 호통 치며 나서니 왜구도 감히 대항치 못하였다.

 

1805년 건립된 간성향교 기적비는 임진왜란 당시 간성향교를 점거한 왜군에 맞서 향교의 재임이었던 김자발과 박응열이 목숨을 걸고 성인의 위패를 거두어 정결한 곳에 봉안하였고 왜군에 의해 전소된 향교를 이 두 사람의 발의에 의하여 1592년 10월에 성묘 중건에 착공하고 같은 해 2월에 낙성하여 제생들과 제례를 봉행하였다. 그 후 관찰사 정술의 상주로 포상이 내려지게 되었으며 1805년 간성향교 유림의 공의로 김지발과 박응열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기적비를 건립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