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四字論語> ‘好勇疾貧’ 용맹함을 좋아하고 가난함을 싫어한다

김용재 / 성신여대 한문교육과 교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용맹을 좋아하면서 (자신의) 가난한 처지를 싫어하는 자들이 혼란을 일으키고, 사람이 어질지 못한 것을 너무 심히 미워해도 혼란을 일으킨다.”(子曰 好勇疾貧이 亂也요 人而不仁을 疾之已甚이 亂也니라. 「泰伯」10) ‘가난한 것은 창피한 것이 아니라 조금 불편할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말 이를 받아들

김용재 2018. 7. 25.

김용재 / 성신여대 한문교육과 교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용맹을 좋아하면서 (자신의) 가난한 처지를 싫어하는 자들이 혼란을 일으키고, 사람이 어질지 못한 것을 너무 심히 미워해도 혼란을 일으킨다.”(子曰 好勇疾貧이 亂也요 人而不仁을 疾之已甚이 亂也니라. 「泰伯」10)

‘가난한 것은 창피한 것이 아니라 조금 불편할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말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자꾸 안회의 이야기가 뇌리를 스쳐 지나가기만 한다. 안회는 가난 속에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道)를 즐길 줄 아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제자였다. 자신의 처지가 가난하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 마련이다. 그리고 은근히 세상이 바뀌어지길 바라며 혼란과 혁명을 꿈꾸기도 하며, 비관적 삶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공자는 아마도 이러한 자들을 경계하고자, 위와 같은 말씀을 하신 걸로 보인다. 그러나 또 이 말씀의 이면에는 그토록 가난과 고난 속에 처한 사람을 돌봐주어야만 함을 역설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는 위정자들이 가난에 처한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궁핍한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지배계층의 위정자들은 좀 더 위민의식(爲民意識)을 갖고 정사에 임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즉 군주와 위정자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격의 경고라 하겠다.

그러나 필자는 좀 더 다른 각도에서 이 문장을 바라보고 싶다. 공자가 천하를 주유(周遊)하며 제후들에게 ‘인’과 ‘예’를 설명하며 덕치주의(德治主義)를 설파(說破)하고 다니던 시절을 상기해보자. 수많은 기록에 나와 있듯이, 이 때 공자와 그의 제자들은 무척 빈곤하고 가난하였다. 심지어 공자가 제자들에게 설교하는 도중에도 제자 자로의 뱃속에서는 ‘꼬르륵’이 진동할 정도로 배고픔을 드러냈고, 좌중의 사람들을 민망하게 만들 정도였다. 자로는 공자에게 “지금 이 순간 스승님의 숭고한 말씀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주린 배를 채우는 것이 가장 급선무입니다”라고 스승에게 반론아닌 반론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사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공자 자신이 감정 이입되어 나타난 문장일 수도 있다. ‘용맹함을 좋아하면서 가난을 싫어하는 자들은 반드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자신의 용맹함만을 믿고 반란과 혁명을 일삼을 수 있겠지만, 나 공자는 절대로 그러한 비열한 짓은 하지 않겠다’는 다짐의 표현이라는 의미다. 또한 자신의 설득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제후들이 어질지 못하다(不仁)고 하여 그들을 너무 심하게 증오하고 휘몰아친다면, 그들은 반란과 전쟁을 일으켜 백성을 더욱더 도탄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에, 나 공자는 불인(不仁)한 자들이라고 하여 심하게 증오하거나 멀리하지는 않겠다는 것을 확언하는 구문으로도 볼 수 있다.

‘안빈낙도!’ 말은 쉽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란 실로 어려운 경지일 것이다. 다행히 요즘 경기(景氣)가 불황이라 ‘적게 벌면서도 큰 즐거움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꼭 경기가 호황이어야 즐거움도 커지는 정비례의 관계는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가난함과 행복지수는 서로를 비교할 수 있는 가치 대상이 아닌 것 같다. 삶은 좀 부족하고 여유롭지 못하며 고달프지만,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고 사는 방글라데시 국민들과 같은 사람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행복’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곱씹어 보게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