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재 / 성신여대 한문교육과 교수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독실하게 믿으면서도 학문을 좋아하며, 죽음으로써 지키면서도 도(道)를 잘해야 한다.”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않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살지 않으며, 천하(天下)에 도(道)가 있으면 나타나 벼슬하고, 도(道)가 없으면 숨어야 한다. 나라에 도(道)가 있을 때에 가난하고 천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며, 나라에 도(道)가 없을 때에 부하고 귀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子曰 篤信好學하며 守死善道니라 危邦不入하고 亂邦不居하며 天下有道則見하고 無道則隱이니라 邦有道에 貧且賤焉이 恥也며 邦無道에 富且貴焉이 恥也니라. 「泰伯」10)
『논어』 전편을 읽다 보면 공자의 ‘인(仁)’이라든지 혹은 ‘예(禮)’라든지, 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유가(儒家)의 핵심사상으로서의 덕목과 사상을 나타내는 개념어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예컨대 『논어』 머리편이라 할 수 있는 「학이」편 수장(首章)은 ‘배움[學]’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서막을 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學)’ 이외의 소재들이 즐비하게 거론되고 있다.
『논어』가 스승 공자의 언행에 관한 기록을 그의 제자들이 집록(集錄)해 놓은 것이라면, 왜 공문(孔門)의 제자들은 소위 오상(五常)이라 불리는 ‘인~의~예~지~신’에 관한 이야기를 제일 먼저 서술하지 않고 ‘배움’을 책의 맨 앞부분에 기술하여 놓았을까?
그것은 공자 사후(死後), 제자들의 뇌리 속에 뼛속 깊이 스며들어 있는 가장 큰 가르침이 곧 ‘배움’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자가 어떤 사람을 관조(觀照)하거나 평가할 때, 가장 기본적인 관점은 이론적인 지식의 습득을 강조하는 주지주의(主知主義) 사고방식에 찌들어 있는 지식인보다, 지식은 조금 뒤처진다 하더라도 효제충신(孝悌忠信)의 실천력이 뛰어난 사람을 제일(第一)이라 힘주어 높였다는 사실이다.
즉, 어진 사람을 가까이 하여 그에게서 자극을 받아 자신을 돌이켜 반성할 줄 아는(反求諸身) 사람을 최고의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바라보았다.
결국 이러한 사람들은 비록 주변으로부터 미천한 자로 홀대받을지라도, 공자는 서슴지 않고 이런 사람을 곧 ‘배운 사람’이라고 자신있게 발표한다.
역시 동서고금 모두, 인간이라는 존재는 ‘요람에서 무덤에 이르기까지’ 평생교육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로 파악하고 있다.
공부하는 인간(Homo Academicus), 그러나 공자는 배우기만을 좋아하는 ‘호학(好學)’에 앞서 독실한 믿음도 강조한다. 그것이 곧 ‘독신호학’이다.
그렇다면 공자는 무엇을 독실하게 믿으라는 것이었을까? 그것은 공자가 천하를 주유(周遊)하면서 몸소 체득한 실증적 경지를 의미하는 것이리라.
선현이 만들어 놓은 훌륭한 제도나 문물일 수도 있다. 인간세계가 쌓아놓은 찬란한 업적과 지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나 다 보편타당한 진리로 인정하고 수긍할 수 있는 실증적 가치를 가진 것이어야만 한다.
그래서 사실 ‘독신호학’의 뒷부분에 공자는 대구(對句)되는 말로 ‘수사선도(守死善道)’를 첨언하고 있다. “(자신이 독실하게 믿고 그것을 배우기를 좋아하였다면) 당연히 죽음을 각오하고 그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배우기를 좋아하는 ‘호모 아카데미쿠스’형의 인간도 좋지만, 자신이 믿고 따랐던 것을 끝까지 사수하며 지켜나갈 줄 아는 ‘의리’와 ‘집념’의 인간 또한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글귀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