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에서 영친왕을 좌인도하는 예의사
논어 학이편 제2절에 ‘有子曰, 其爲人也孝弟 而好犯上者鮮矣 不好犯上 而好作亂者 未之有也. 君子 務本 本立而道生 孝悌也者 其爲仁之本與’라는 말이 있다. 한글로 풀면 유자가 말하기를 “그 사람됨이 효성스럽고 공손한데 그런 사람이 윗사람에게 대들기를 좋아하는 경우는 드물다. 윗사람에게 대들기를 좋아하지 않는데 그런 사람이 난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경우는 없다. 군자는 본래 근본에 힘쓰니, 근본이 확립되면 도가 생기는 법이다. 그래서 효성과 공경은 아마도 인을 행하는 근본이 된다”라는 뜻이다. 논어에서 첫머리에 공자 다음으로 유자의 말을 인용한 것은 그만큼 유자의 인물됨이 공자에 버금가는 수준이어서 이다. 자하, 자장, 자유가 공자를 섬기는 예로서 유자를 섬기고자 증자에게 건의를 하였을 때 증자가 불가하다라고까지 할 정도의 인물이다.
유자의 이름은 유약으로 공자의 제자였다. 그가 죽었을 때 노나라의 도공(悼公)이 조상을 가니, 자유(子游)가 그의 왼쪽에 서서 인도하였다. ‘有若之喪 悼公 弔焉 子游 儐 由左’이라고 예기 단궁편에 적혀져 있다. 여기에서 [儐由左]는 인도하는 사람이 왼쪽에 서서 인도하였다는 뜻이 되며 오른쪽은 높은 곳이므로 인빈하는 사람이 객의 왼쪽에 선다는 것이다, [引儐]은 인도할 빈으로 손님을 인도하는 것이다. 상변통고 상례 초종편의 상례에서 [有若之喪]을 인용하였는데, 그 주에, “빈(儐)은 상례를 돕는 자(즉 상례를 말함)이다”라고 했고, 설문에는 “導也, 从人賓聲, 導者 導引也”라 하여 “이끌다, 사람을 쫓아 빈에게 소리를 내다”, “導引은 끌어서 이끈다는 뜻이다”라고 했다.
상변통고에서 또 정현이 이르기를 “서 있는 자는 오른쪽을 높인다”라고 했다. “자기가 군주의 조사를 전할 때는 조사가 높으니 오른쪽에 처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했고, 상사(喪事)에는 빈이 오른쪽에 처하게 하고 자신은 왼쪽에 처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예가 무너졌기 때문에 상례도 군주의 조사를 전하듯이 하여 자기가 오른쪽에 처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자유는 예를 알았으므로 “빈이 오른쪽에 처하게 하고 자신은 왼쪽에 처했다”라고 했던것이다.
예기의 소의편에 ‘빈객이 임금에게 폐백을 바칠 때 행하는 동작으로 임금 대신 예를 돕는 자가 이를 왼쪽에서 받는다. 또 임금을 대신하여 명령이나 분부를 전하는 자는 임금의 오른쪽에서 한다’라고 했다. 다시 말하자면 임금을 인도하는 좌통례는 임금의 왼쪽에서 인도하거나 아뢰거나 임무를 담당하고, 우통례는 오른쪽에서 임금의 명령을 밖으로 전달하는 임무를 담당한다. 무릇 인도하는 자의 임무가 일시적으로 끝나면 물러나서 임금의 한걸음 왼쪽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 서 있거나 부복한다.
이에 견주어 알자나 찬인은 헌관 및 축관과 집사자를 인도할 때 한걸음 왼쪽에서 한걸음 앞으로 하여 인도하되 시선은 늘 헌관의 발끝을 주시하면서 인도하여야 한다. 또한 방향을 바꾸거나 계단을 승강하거나 문지방을 넘을 때는 항상 읍하여야 한다. <繼續>
석전대제 이수자 이대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