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철(대유학당 대표)
믿음있게 도와야 허물이 없을 것이다. 믿음이 순박해서 질그릇에 가득차면, 끝에 가서 다른 길함을 오게 하리라. 상에 말하기를 비괘의 초육은 다른 길함이 있다.[比卦 初六]
인천에서 태어난 병와 이형상(1653-1733)은 48세 때 영천시 성내동으로 이사를 간다. 당쟁으로 점철된 숙종 말기의 정계에 염증이 나서 멀찌감치 떠난 것이다. 영천은 산수가 아름답고 포은 정몽주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30여 년을 학문연구, 그리고 『악학편고』『악학습령』등 16종의 국악서 등 총 2백 25책의 1천 8백여 권이라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그가 9세 때 지었다는 「홍문연(鴻門宴)」은 동학들의 찬탄을 넘어섰다. 홍문은 초패왕 항우가 한고조 유방을 죽이기 위해서 잔치를 베풀었다가 항우가 주저하는 바람에 유방을 놓친 곳이다. 이런 고사를 담아서 “호랑이가 산동지방에서 포효함에 바람이 만리나 뻗쳤으니/ 달리던 사슴(황제자리)이 이미 홍문연 잔치의 안주가 되었구나.(虎嘯山東風萬里 走鹿已肴鴻門酒)” 라고 썼다. 항우가 홍문연에서 패왕이 되었다고 한 것이다. 혹은 유방이 도망가는 바람소리에 천하가 결정되었다고 썼는지도 모른다.
임금 자리를 놓고 다투는 것을 축록전(逐鹿戰)이라고 한다. 이사를 죽인 조고가 사슴을 2세 황제에게 바치며 “말입니다.”라 하니, 2세황제가 웃으면서 “승상이 틀렸다.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가?”라고 했다. 조고가 주변 신하들에게 물으니, 혹은 아무 소리도 안하고 혹은 말이라고 하였다. 조고가 사슴이라고 말한 사람의 뒷조사를 해서 모두 죽이니, 남은 신하들이 조고를 두려워했다.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이 사슴이야기는 지난 ‘역으로 본 세상 42’에서 괵철이 “진나라가 사슴을 잃자 천하가 모두 그 사슴을 쫓았는데, 재주가 높고 발 빠른 자가 먼저 얻게 되는 것입니다.”로 이어진다. 진나라가 권세를 잃은 것이 2세황제가 사슴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형상이 경주부윤으로 있을 때 운주산의 산적을 잡으라는 특명을 받았다. 산적을 잡으러 가지는 않고, 목패의 한쪽에는 검문검색을 철저히 하라는 뜻으로 ‘기찰(譏察)’ 이라 쓰고 또 한쪽에는 빠짐없이 잡으라는 뜻으로 ‘사압(使押)’이라 써서 장대 끝에 매달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돌게 했다. 한 달 뒤 토포사가 내려와서는 “공은 도둑 잡으라는 명을 받았는데, 그래 목패로 도둑을 얼마나 잡았소?” 하고 따졌다. 그러자 “목패는 도둑을 잡으려는 것이 아니고 해산시키려는 목적에서 한 것이오. 내가 오기 전에는 하루 4~5건의 도난이 발생했지만 지금은 한건도 없소. 저들은 배고픔을 못 참아 잠깐 잘못된 생각을 했을 뿐이고, 생업으로 돌아가면 모두 양민이 되는데 잡아 죽여야 할 까닭이 어디 있소?”하고 말했다. 호랑이 포효로 패권을 잡듯이 목패 하나로 도적을 해산시킨 것이다. 잘못은 악정에 있지 도적질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양민이 잘 살 수 있는 선정을 베풀겠다. 그렇지만 도적질 하는 사람은 끝까지 잡겠다.” 이 간단한 내용을 확실하게 믿게 한 것이다. 그래서 역에서는 “믿음이 순박해서 질그릇에 가득차면 끝에 가서 다른 길함을 오게 하리라.”고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