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四字論語> ‘欲居九夷’ 아홉 오랑캐의 땅에서 살고자 한다

김용재 / 성신여대 한문교육과 교수 공자께서 ‘구이’에서 살려고 하시니, 혹자가 말하기를 “그곳은 누추하니, 어떻게 하시렵니까?” 하였다. 이에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군자가 거주한다면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子欲居九夷러시니 或曰 陋어니 如之何잇고 子曰 君子居之면 何陋之有리오. 「子罕」 13) 공자는 한때 ‘구이의 땅에서 살고 싶다’고 하셨다. 그 말씀

김용재 2018. 9. 27.

김용재 / 성신여대 한문교육과 교수


공자께서 ‘구이’에서 살려고 하시니, 혹자가 말하기를 “그곳은 누추하니, 어떻게 하시렵니까?” 하였다. 이에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군자가 거주한다면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子欲居九夷러시니 或曰 陋어니 如之何잇고 子曰 君子居之면 何陋之有리오. 「子罕」 13)

공자는 한때 ‘구이의 땅에서 살고 싶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따온 것이 ‘욕거구이’다. ‘구이’는 후대의 학자들에 의하여 ‘9개의 오랑캐의 땅’ 또는 영역이라고 풀이되었다. ‘현도’ ‘낙랑’ ‘고려’ ‘만절’ ‘부유’ ‘색가’ ‘동도’ ‘왜인’ ‘천비’ 등 아홉 곳이 ‘구이’라고 한다.

그런데 ‘현도’와 ‘낙랑’은 한나라 무제 때 우리나라(고구려 영토)에도 설치되었던 한사군(漢四郡)의 지명이니, 공자와 한(漢)나라 시대를 어림잡아도 전혀 근거 없는 지명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국수주의적 경전 주석가들은 공자가 말씀하신 이 ‘구이(九夷)’에서 ‘이(夷)’가 쓰여진 것을 가지고 마치 동이족(東夷族)이 거주하는 한반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논리 비약적인 주장에 지나지 않을 듯하다.

자고이래로 고대인들에게 있어 자신을 설명할 때, ‘가운데 중(中)’을 표기한 것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심부에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기 위함이었다. 옛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네모 모양이라 여겼기 때문에, 네모 모양을 그려놓고서, 그 한가운데 중앙이 자신들의 영역이라고 표시해 두었던 것이다.

그래서 영어의 ‘China’ 국명(國名)을 한자어로 표기할 때 가차식 표현을 쓰지 않고 ‘중국(中國)’이라 쓰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물론 대한민국과 일본 역시 나름대로 그 국명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 있다. 대한민국은 ‘한민족이 세운 큰 나라’이며, ‘일본’은 ‘해가 처음 뜨는 나라’로서의 의미 그 자체일 뿐이다.

이렇게 한 중원(中原)을 차지한 중국인들은 중국 이외의 여집합(餘集合) 영역을 모두 오랑캐[夷]라 지칭하면서 자연스럽게 ‘구이’라는 명칭이 발생한 것이다.

공자는 중원의 영역을 뿌리치고 혼란과 미지의 세계에 가서 자신이 꿈꾸는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주나라 말기와 춘추시대는 그야말로 인간이 갖고 있는 욕망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잔학무도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혼탁과 저주스런 세계로 치닫고 있었던 공자가 승부부해(乘桴浮海)하여 사해(四海)를 떠돌아다니고 싶었던 심정은 그야말로 세상을 버리고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살고픈 도가적(道家的) 향유(享有)를 꿈꾸는 한 단면이었다. 물론 실행으로 옮기지 못한 것은 그가 가지고 있었던 사회적 책무와 선비로서의 의무를 자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락의 끝으로 떨어지고 있는 중원의 세계에서 구차하게 삶을 유지하기보다는, 비록 혼돈과 미지의 영역이지만 자신의 이상향을 건설하고픈 모험심과, 마지막으로라도 본인이 꿈꾸는 정의로움을 실현하겠다는 공자의 강렬한 의지가 오버랩되는 경문이라 할 것이다.

공자가 ‘구이’의 땅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였을 때, 혹자의 반문이 이를 더욱 더 반증해 주고 있다. “그렇게 누추한 곳에서 어떻게 살아가시려고 그러십니까?” 공자의 대답은 그야말로 주저하지 않고 내뱉는 단언(斷言)이셨고, 딱 잘라 판단내리는 단정(斷定)의 언사(言辭)였다. “군자가 가서 살면 점차 군자의 문화가 배어날 것이니, 누추함이 무슨 상관이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