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시대 말, 노(魯)나라 사람인 계강자는 어느 날 공자와 정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政]에 대해 물었다. ‘만약 (명령을 어기는) 무도한 사람은 죽여 버리고, (당신처럼 인격을 갖춘) 훌륭한 사람과 가깝게 지낸다면 어떻겠습니까?’ 공자가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당신은 정치를 하면서 어찌 사람 죽이는 방법을 쓰려고 합니까? 당신이 선한 것을 원하면 백성들이 선해질 것입니다.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입니다. 풀 위로 바람이 불면 (풀은 바람에 휩쓸려) 고개를 숙이며 (복종하게) 됩니다.’”(『논어』 「안연」)
계강자의 질문에 공자는 정치가라면 먼저 인(仁)의 덕을 갖추어야 한다고 답한다. 즉 백성들이 정의로워지기를 원한다면, 정치 지도자가 먼저 ‘정의의 덕’을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다. 유가에서는 정치 지도자의 역할로 사람들이 덕을 갖추게 만드는 것과 사회를 정의롭게 만드는 것을 들고 있다. 특히 경제적인 이익을 정의로운 방식으로 분배하는 것을 정치 지도자의 중요 역할로 지적한다. 이러한 유가의 입장은 바로 마이클 샌델이 말하는 ‘정의’와 그 궤를 같이한다.
『마이클 샌델, 중국을 만나다』는 동양 철학과 서양 철학 간의 여러 문제들을 탐구하고 논의한 결과물이다. 아홉 명의 중국 철학 연구자들은 존 롤스와 샌델의 ‘정의론’을 총체적으로 살피면서 샌델이 전작들에서 다루지 못했던 새로운 논점들을 제시한다. 중국 철학 연구자들은 유가와 도가 사상 등 동양 철학의 눈으로 세밀하게 검토하면서 샌델이 놓친 시사점들을 살펴본다. 특히 유가 사상의 핵심 개념인 ‘조화(調和)’와 롤스와 샌델의 ‘정의(justice)’의 비교․분석은 지금까지 시도된 적이 없는 독창적인 ‘정의론 다시 읽기’라고 말할 수 있다. 샌델은 자신을 향한 중국 철학 연구자들의 도전적인 관점들을 수용하면서 자신의 이론적 맥락에서 다시 비교․검토한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와 유가 사상의 '조화'
‘정의’는 롤스와 샌델의 정치철학의 핵심 개념으로 사회를 구성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다. 존 롤스의 ‘정의론’ 이후로 서구 사회에서 ‘정의’는 개인이 모여 공동체를 구성하는 데 있어 구심점 역할을 해 왔다. ‘정의’는 한 사회의 윤리적 기준의 척도이자 체제 구성의 기준이 되었고, 때문에 그 공동체의 성격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해 왔다. 물론 샌델의 ‘정의’는 롤스가 주장한 것에 비해 복잡한 특성을 지닌다. 각각의 공동체나 사회가 그 주어진 환경에 따라 ‘정의’의 윤리적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서양 철학의 ‘정의’를 대신할 개념으로 동양 철학의 ‘조화’를 들 수 있다, ‘조화’는 유가 사상에 핵심 개념으로 중국을 비롯해 유교 문화권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 요소다. 여러 악기가 합주에 참여하는 오케스트라 음악에 비유할 수 있는 조화는 각각의 요소들이 전체를 구성하면서도 스스로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는 상태이다. 즉 저마다 다른 것들과 함께 하나의 전체를 이루면서도 각자에게서 최선을 산출한다. 이는 단순한 동의나 일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이고 발전적이며 생산적인 과정으로서 균형을 추구하고, 창조성과 상호 변화를 통해 차이와 갈등에 균형을 주고 화해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때문에 조화는 사태의 종결이라기보다는 지속적인 생산적 과정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인종 국가인 싱가포르는 국민의 약 74퍼센트가 화교이며 말레이족이 13퍼센트, 그리고 나머지는 인도인, 유라시아인 및 기타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헌법위원회의 제안대로 모든 인종적 다수 집단이 대통령직에서 대표가 될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메커니즘은 조화를 근거로 정당화될 수 있다. 모든 인종집단이 국가의 최고위직으로 뽑혀서 국가를 대표하고 어떤 인종집단도 소외되었다고 느끼지 않을 때, 인종 평등은 강화된다. 인종차별이 없는 대통령 선출 시스템은 싱가포르의 사회적 조화에 이바지하는 것은 물론 강력한 국민 정체성을 형성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도가 사상의 '자연'과 '음양', 그리고 생명윤리의 문제
마이클 샌델은 자신의 저서인 『완벽에 대한 반론』에서 생명공학과 유전자 조작에 대해 철학적으로 비판한다. 그는 이러한 기술의 발전이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완벽한 인간’을 추구하는 프로메테우스적 충동을 규제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도가 사상의 핵심인 ‘자연(自然)’과 ‘지족(知足)’은 샌델의 주장과 그 궤를 같이한다. ‘자발성’ 혹은 ‘스스로 그러함’이라 할 수 있는 ‘자연’은 인간 존재의 한계성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물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순리를 따르며 살아갈 것을 강조한다. ‘지족’은 ‘만족할 줄 아는 것’, ‘만족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있는데, 이는 우리의 과도한 욕망과 탐닉을 경계하라고 주문한다.
도가 사상에서의 ‘음양(陰陽)’ 개념은 ‘성(性)’을 선택하기 위한 낙태나 젠더 차별에 대한 도덕적인 문제를 지적한 샌델의 주장과 방향성을 같이한다. 인간의 정체성을 성(性)을 기준으로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닌 ‘음’과 ‘양’으로 파악함으로써 인간의 다양성과 창조성이 발현될 가능성을 열어둔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음양의 개념을 양을 남성으로, 음을 여성으로 단순하게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 개인에게 남성이기를 허용하고 여성이기를 허용하고 둘 다이기를 허용하고 둘 다 아니기를 허용한다는 데 있다.
마이클 샌델과 도가 사상의 이론적 핵심이 서로 별개의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인간 존재를 해석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함에 있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샌델과 도가 사상의 상호보완적 검토를 통해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윤리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철학적 인식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마이클 샌델, 중국을 만나다』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문화가 중국의 철학적 전통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인상을 갖고 있다”는 샌델의 말처럼, 역사적으로 한국과 중국은 사회문화적인 관계를 맺어 왔다. 가장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우리 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유가 사상이다. 오늘날 유가 사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지나치게 권위적이고 엄격하며, 폐쇄적이고 고리타분하다고 여긴다. 특히 오늘날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남녀 차별의 문제, 직장 내 위계를 바탕으로 한 폭력과 성희롱, 직업에 대한 귀천(貴賤) 의식, 가족 내 역할 갈등 등의 문제가 우리 사회의 당연한 모습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갈등 문제는 유교 사회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 아니라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특정 계층에 의해 본질이 훼손되고 악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부조리함을 우리는 어느새 마땅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당연시되어 왔던 사회 인식을 뒤바꿈으로써 이 사회가 회복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스스로 되찾아야 한다.
와이즈베리 02-3475-38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