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易으로 보는 세상 155헤어롤과 불가불가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상에 말하길 “산 위에 나무가 있음이 점괘니, 군자가 본받아서 어진 덕에 거처해서 풍속을 착하게 한다.” (점괘 대상전) 지난 토요일에 모임이 있어서 강남을 가다가, 지하철에서 머리에 헤어롤을 꽂고 있는 아가씨를 보았다. ‘외출을 하려고 머리를 매만지다가 정신없이 나오는 바람에 헤어롤 빼는 것을 잊었나 보다. 다른 사람이 알면 얼마나

윤상철 2018. 10. 14.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상에 말하길 “산 위에 나무가 있음이 점괘니, 군자가 본받아서 어진 덕에 거처해서 풍속을 착하게 한다.” (점괘 대상전)

 

지난 토요일에 모임이 있어서 강남을 가다가, 지하철에서 머리에 헤어롤을 꽂고 있는 아가씨를 보았다. ‘외출을 하려고 머리를 매만지다가 정신없이 나오는 바람에 헤어롤 빼는 것을 잊었나 보다. 다른 사람이 알면 얼마나 민망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서서 말하려다가 ‘낯선 남자가 말하는 것보다 같은 여자가 말하는 게 더 낫겠다’ 싶어서, 옆에 있는 안사람에게 “저 아가씨가 헤어롤 빼는 것을 잊고 나왔나봐. 당신이 살짝 말해줘.” 하였더니, 안사람이 “일부로 저렇게 하고 나온 걸 거예요. 요즘 저렇게 하고 다니는 것이 유행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하는 것이다.

 

“무슨 유행할 것이 없어서, 저렇게 팔불출패션을 유행으로 삼을까?” 하였더니, 지난번 박근혜 대통령 탄핵할 때 헌법재판소 주심을 맡은 이정미 재판관이 저렇게 헤어롤을 꽂은 채로 출근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출근하는 모습이 중계방송 되었는데, 그것을 보고 멋있다고 생각한 젊은 여자들이 가끔 저렇게 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헤어롤은 머리를 곱슬거리게 만들기 위해서 고정하는 도구이다. 머리를 곱슬거리게 만들었다면 더 이상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원래 있던 자리에 잘 두고 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것을 장식용으로 쓰고 싶다면 할 말이 없지만, 대개의 경우 헤어롤을 꽂고 다니면 소변을 보고 자크를 올리지 않고 다니는 것이고, 세수를 하고 수건으로 닦다가 수건을 목에 두른 채 길거리를 다니는 것이며, 양치질 하면서 출근하는 것이고, 구두헤라의 도움을 받아 구두를 신고는 구두헤라를 구두에 꽂은 채 돌아다니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구한말 한일합방을 의결할 때, 각 대신들이 ‘가’ 또는 ‘불가’를 써서 의결을 했다. 이때 이완용이 “불가불가”라고 써서 그 진의에 대해서 의논이 분분했다고 한다. “불가 불가”라고 해석하면 ‘불가하고도 불가하다’라는 이중부정이 되어서 절대로 안 된다는 뜻이 된다. 그렇지만 띄어쓰기를 달리해서 “불가불 가”로 읽으면, ‘어쩔 수 없이 찬성한다’라는 뜻이 된다. 나라를 팔아먹는 와중에서도 ‘절대로 안 된다’와 ‘어쩔 수 없이 찬성한다’라는 이중적인 표현을 씀으로써,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오명을 줄여보자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혹시 그 주심관도 그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하는 의심이 들었다. 헌법재판관씩이나 된 사람이 외출할 때 헤어롤을 빼고 나가야 된다는 것을 모를 리 없으니, 한편으로는 "나는 온 정신을 집중해서 판단해 보아도 탄핵이 맞다" 하는 결연한 의지를 보인 것일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나는 헤어롤 빼는 것도 잊을 정도로 당시 정신이 없었다"고 하는 변명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사회의 지도층에 있는 사람으로서 좋은 본을 보여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별 생각 없이 따라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에서는 "남보다 조금이라도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덕을 길러서 풍속을 아름답게 하여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