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재 / 성신여대 한문교육과 교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혜로운 자는 의혹하지 않고,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고, 용맹한 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子曰 知者不惑하고 仁者不憂하고 勇者不懼니라. 「子罕」28)
『논어』를 읽고 있노라면 무수한 제자들이 출현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인자(仁者)’ ‘지자(智者)’ ‘용자(勇者)’ ‘군자(君子)’ ‘소인(小人)’ 등, 다양한 인간상(人間像)을 자주 만나볼 수 있다. 이 경문을 접할 때 필자는 바로 여기에 착안하여, ‘인자’는 공자의 수제자 ‘안연’을, ‘지자’는 공자의 최측근 제자 ‘자공’을, ‘용자’는 공자의 벗으로서 용맹함을 자랑하는 ‘자로’를 뜻하는 것은 아니었을지 라고 반문하며 읽곤 한다. 사실 이 경문은 「헌문」편에 유사한 뉘앙스로 다시 선보이기 도 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의 도에는 세 가지가 있으나, 나는 여기에 능통한 것이 하나도 없네. 어진 사람은 근심이 없고,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고, 용맹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을 텐데.” 자공이 이에 말하였다. “우리 선생님께서 스스로를 낮추어 말씀하신 것이다.”
필자는 「헌문」편에서 공자의 말씀에 자공의 답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사제(師弟) 간의 격이 없는 정겨운 대화라고 상상해 보았다. 이유야 어떻든 여기에서 세 사람의 경지에 대한 이해가 관건이다. ‘용맹한 사람은 두려움이 없다’는 점에는 누구나 공감하고 납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진 자’와 ‘지혜로운 자’를 ‘근심이 없고’ ‘미혹되지 않는다’로 풀이한 점에는 다소 난해하지 않을 수 없다. 주자집주』에서는 이 경문을 성리학 용어인 ‘리(理)’와 ‘기(氣)’를 가지고 풀이해 놓았는데, 이 또한 하나의 해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참 난해하다.
그래서 필자는 이 경문을 「옹야」편의 ‘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 차원에서 접근하여 풀이해 보았다. 공자가 보기에 ‘지혜로운 사람’은 그 지혜가 주변 상황의 변화와 시세(時勢)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며 역동적으로 밝혀나갈 수 있기 때문에, 흐르는 ‘물’에 비유하셨다. 어진 사람은 그 마음이 인자하고 너그러워 자신의 제자리에서 가만히 앉아 있어도 주변사람들이 공사(公私)를 구분할 수 있으니 근심이 없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라고 비유하셨다. 그것은 곧 제자리에 정위치 하고 앉아 있는 ‘산’의 모습과 유사하기 때문에 ‘인자요산’이라 일컫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진 자는 산과 같이 정적(靜的)인 존재이며, 지혜로운 자는 물과 같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존재이다. 주관을 가지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판단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공자는 그 판단을 내리는 백척간두에 서게 되었을 때, 지자(智者)와 같이 의혹됨이 없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제 인류는 인공지능과 원치 않는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다. 수많은 알고리즘을 체화시킨 알파고[AI] 앞에 인간의 지식이란 그저 허무하고 나약한 구우일모(九牛一毛)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인간은 18세기 산업혁명으로부터 어느 정도 육체노동에서 해방되었는데 (기계가 인간이 해야 할 노동을 대신해 주었다는 것임) 이제 4차 산업혁명을 통하여 인간은 그나마 가지고 있었던 정신가치마저 기계에 내주는 꼴이 되었다. 어쩌면 ‘인간 동물원’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경쟁하고 포용해나갈 줄 아는 인간의 모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 때,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형상으로 다가올까? 알고리즘보다 인간적 정서와 인간냄새가 물씬 풍기는, 어떠한 미혹과 의혹에도 휩쓸리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인류가 추구하는 지자(智者)의 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