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易으로 보는 세상 63 어려울 때 조금이라도 모이게 함이 큰 미덕이다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육사는 흩어지는 때에 모이게 함이라. 크게 착하고 길하니, 흩어지는 때에 조그만 모임이라도 있게 함은 보통사람으로서는 어려운 일이다. (渙卦 六四) 지난호에서 초나라 문왕의 왕비가 된 식부인의 성씨는 규이다. 식후에게 시집갔으므로 식규라고 알려졌다. 당시에는 남편의 시호를 앞에 붙이고 자신의 성씨를 뒤에 붙이는 것이 여성 시호의 관습

편집부 2014. 12. 31.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육사는 흩어지는 때에 모이게 함이라. 크게 착하고 길하니, 흩어지는 때에 조그만 모임이라도 있게 함은 보통사람으로서는 어려운 일이다. (渙卦 六四)

 

지난호에서 초나라 문왕의 왕비가 된 식부인의 성씨는 규이다. 식후에게 시집갔으므로 식규라고 알려졌다. 당시에는 남편의 시호를 앞에 붙이고 자신의 성씨를 뒤에 붙이는 것이 여성 시호의 관습이었다. 강씨 여자가 문공에게 시집가면 ‘문강’이라 하고, 목공에게 시집가면 ‘목강’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제 문왕의 왕비가 되었으므로 더 이상 식규라고 부를 수 없었다. 사람들은 식규의 얼굴이 복숭아꽃처럼 예쁘고 두 볼이 연지를 찍은 듯이 붉다고 해서 그녀를 도화부인이라고 불렀다.

문왕은 허리가 가느다란 미인을 좋아해서 궁궐 가득 세요미인을 두었지만 도화부인을 얻고는 오로지 도화부인만을 총애했다. 그러나 도화부인은 도통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아들 둘을 낳으면서 3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말을 하지 않자 그녀가 말하지 않는 까닭을 따져 묻게 되었다.

그저 눈물만 흘리던 식부인이 입을 열어 대답하기를 “신첩이 한번 시집간 몸으로서 일부종사를 못하고 두 지아비를 섬겼으니 수절하지 못한 죄를 지고 죽어야 마땅합니다. 무슨 면목으로 대왕을 마주해서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말을 마치고는 또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한양부 성밖에 있는 도화부인묘는 식규를 제사지냈던 사당이다. 당나라 시인 두목이 그곳에서 시를 지었다. 「식부인묘」 또는 「도화부인묘」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진 시이다.

“미인들 틈 속에서 도화부인 돋보이는데/ 가슴 저려 입 다물고 보낸 봄 몇 번인가/ 필경 마음속에 식나라 망한 사연 간직했음이니/ 가련하다, 금곡원 누각에서 자살한 녹주여!”

녹주는 진나라의 거부였던 석숭의 애첩이다. 손수가 그녀를 탐해서 석숭을 망하게 하고 정조를 유린하려 하자, 누각에 올라가서 떨어져 죽음으로써 자신을 지켰다. 그러나 도화부인은 처음에는 남편을 살리려고 죽지 못했고, 나중에는 두 자식을 기르느라 죽지 못했다. 죽음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죽을 곳에서 처신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역시 당나라의 시인 호증이 「식성」이라는 시를 지어서 그 사연을 읊었다.

“식나라는 망하고 몸은 초나라 왕비가 되었는데/ 돌아보니 봄바람에 꽃처럼 아름다운 얼굴일세/ 옛 정을 못 잊어 말없이 눈물만 흘리나/ 한을 푼다면 예쁜 얼굴이 나올 것이네.”

문왕이 죽고 도화부인의 큰 아들이 왕이 되고, 또 3년 뒤에 둘째아들 이 왕(성왕)이 되었을 때도 그 미색이 여전했나 보다. 군부를 장악해서 정권을 쥐고 있던 문왕의 동생 웅선이 도화부인과 정을 통하고 나라를 찬탈하고 싶어서 온갖 압력과 유혹을 다했지만, 현숙하고 지혜로운 언행으로 이를 물리쳐서 아들의 왕위를 지키고 자신의 절개를 지켰다. 그래서 역에서는 ‘제 한 몸 지키기도 어려운 환경을 이기고 주변의 힘이 되어주는 것이 크게 착하고 장한 일이라’고 칭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