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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대성전의 儒學者 차인들③ - 고려시대 鄭夢周편

고려말기의 정치가이며 유학자인 정몽주(鄭夢周, 1336~1392)의 자는 달가이며, 호는 포은, 시호는 문충이다. 정몽주는 영일정씨 정운관과 영천이씨의 아들로 영일현(현재 포항시)에서 출생해 청림동으로 이주하여 소년기를 보냈고, 외가가 있는 영천으로 이사하였다고 전해진다. 그의 초명은 몽란이었으나 부친이 주공을 만난 꿈을 꾼 연유로 후일 성인이 되자 다시

편집부 2014. 12. 31.

고려말기의 정치가이며 유학자인 정몽주(鄭夢周, 1336~1392)의 자는 달가이며, 호는 포은, 시호는 문충이다. 정몽주는 영일정씨 정운관과 영천이씨의 아들로 영일현(현재 포항시)에서 출생해 청림동으로 이주하여 소년기를 보냈고, 외가가 있는 영천으로 이사하였다고 전해진다. 그의 초명은 몽란이었으나 부친이 주공을 만난 꿈을 꾼 연유로 후일 성인이 되자 다시 몽주라고 개명하게 되었다.

정몽주는 어려서 아버지에게서 한학을 배웠고, 당대 최고 유학자인 목은 이색이 부친과의 친분관계에 있어서 그의 문하생이 되었다. 정몽주는 1360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고, 성균관대사성, 예의판서, 예문관제학, 수원군 등 여러 벼슬을 지냈으며, 1372년에는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당시 고려는 선종이 발달하던 시기로서 차는 선승들의 수행에서 졸음의 예방과 심직 안정에 도움을 주는 필수음료로 성행했다. 국가에서는 다례를 주관하던 집례관청인 다방을 두고 거국적인 행사 때마다 다례가 거행되었다.

호곡불교의식인 음력정월 또는 2월·4월 등의 연등회나 음력 10월 토속신에게 제사 지내던 팔관회를 비롯하여 북조의 사신을 맞는 외교의식에는 모두 다례가 중심이 되었고, 중국황제의 사은품으로 용봉단차가 하사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중국차와 함께 토산차는 60세 이상의 원로신하들에게는 약과 함께 다시 하사되었다. 특히 왕실의 경사행사인 왕비책봉의식, 원자탄생, 왕태자책봉, 공주 결혼 등의 축하연회에는 다례가 중심이 되었다.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처음 들여온 초명이 안유인 안향은 1289년(충렬왕 15)에 왕과 공주를 호종하여 원나라에 들어갔다가 이듬해 3월 귀국길에 연경에서 『주자전서』를 필사하여 돌아와 주자학을 전래하였다. 이후 성리학이 본격적으로 연구되면서 초기 크게 일가를 이룬 인물은 백이정과 이제현으로 볼 수 있다. 백이정은 1298년 연경에서 10년 간 머물면서 차를 다반사로 음용하였고, 귀국할 때 정주의 성리서적과 주자의 『가례』를 가지고 돌아왔다. 『가례』 에는 차를 올리는 다례가 포함되어 조선조 초기까지 지켜졌고 임진왜란 이후 점점 축소되었다.

백의정에게 성리학을 배운 이제현은 ‘봄에 불쬐어 말린 작설차도 자주 나누어 주었다네’ 등의 다시를 남겼고, 그의 제자인 이곡과 그의 아들인 이색, 이종학까지 3대에 걸찬 이색의 가족은 모두 성리학자인 동시에 차를 즐긴 차인가족이다.

이색의 부친 이곡이 쓴 『동유기』에는 화랑이 쓰던 돌부뚜막, 돌못, 돌우물의 다구가 나오며, 아들 이색은 100여 편의 차에 대한 문장을 남긴 차인이다. 이색의 제자인 정몽주는 자연스럽게 차를 즐겼고, 정몽주도 많은 차시를 남겼다.

이러한 정몽주가 즐겨 차를 달이던 돌솥에 대한 ‘독역’의 싯구에는 음양이치가 나온다.

돌솥의 더운물이 처음 끓고/ 풍로의 불은 빨갛네/ 감리괘는 하늘과 땅의 쓰임이네/ 이 뜻이 무궁하도다

이상의 시에서 찻물을 끓이는데 필요한 水, 火를 읊고 있다. 즉 감(坎)과 리(離)괘는 천지의 용(用)이니 이 속에 무궁한 이치가 담겨 있다는 역리를 노래하고 있다. 또한 정몽주는 ‘독역’에서 풍로 위에 끓고 있는 돌솥을 바라보며 오행의 물과 불의 조화에서 음양오행의 천지 이치를 바라보고, 삼라만상의 정기를 한 잔의 차속에 녹여서 마시던 그의 차생활도 엿볼 수 있었다.

고려시대 궁중의 연회에서 차를 다려 올리던 진다부서인 다방관청에는 고려의 초임관리들이 이 다방으로 배치되었다. 초임자들을 비하해 아개치라고도 불렀는데, 초임관리가 다방으로 배치된 것은 이들에게 차를 약용 또는 건강음료로 다리는 방법을 전수하는 이외에 음양오행 사상과 우주만물의 조회와 이치를 깨닫게 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이혜자 <성균관 여성유도회 중앙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