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四字論語> ‘鞠躬如也’ 몸을 굽히듯 하다

김용재 / 성신여대 한문교육과 교수 “공문에 들어가실 적에는, 몸을 굽히시어 용납하지 못하는 듯이 하셨다. 서 있을 때에는 문 가운데에 서지 않으시고, 다니실 때에는 문의 한계를 밟지 않으셨다. <임금이 계시던> 자리를 지나실 적에는 낯빛을 변하시고, 발걸음을 조심하시며, 말씀을 부족한 듯이 하셨다. 옷자락을 잡고 당에 오르실 적에 몸을 굽히시며

김용재 2018. 12. 14.

김용재 / 성신여대 한문교육과 교수

 

“공문에 들어가실 적에는, 몸을 굽히시어 용납하지 못하는 듯이 하셨다. 서 있을 때에는 문 가운데에 서지 않으시고, 다니실 때에는 문의 한계를 밟지 않으셨다. <임금이 계시던> 자리를 지나실 적에는 낯빛을 변하시고, 발걸음을 조심하시며, 말씀을 부족한 듯이 하셨다. 옷자락을 잡고 당에 오르실 적에 몸을 굽히시며, 숨을 죽이시어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하셨다. 나오시어 한 층계를 내려서서는 낯빛을 펴서 화평하게 하시며, 층계를 다 내려와서는 빨리 걸으시되 새가 나래를 편 듯이 하시며, 자기 자리에 돌아와서는 축적(踧踖)하셨다.”(入公門하실새 鞠躬如也하사 如不容이러시다 立不中門하시며 行不履閾러시다 過位하실새 色勃如也하시며 足如也하시며 其言이 似不足者러시다 攝齊升堂하실새 鞠躬如也하시며 屛氣하사 似不息者러시다 出降一等하사는 逞顔色하사 怡怡如也하시며 沒階하사는 趨翼如也하시며 復其位하사는 踧踖如也러시다. 「鄕黨」04)

‘국궁’은 윗사람 혹은 위패(位牌) 앞에서 몸을 구부려 존경의 뜻을 표하는 자세이다. 이 󰡔논어󰡕의 경문은 고대 궁정 또는 궁궐의 엄숙한 모습을 주시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본래 「향당」편은 ‘예(禮)’ 의식(儀式)과 관련한 구문이 많기 때문에 예학자(禮學者)들에게는 소중한 자산의 문장들이 많다고 볼 수 있다.

이 경문에서의 ‘국궁여야’는 공자가 신하나 혹은 사신의 입장이 되어 궁궐 문에 들어가실 때 몸을 숙이고 마치 비좁은 곳을 들어가듯 경건한 몸가짐을 갖추어 자신을 최대한 낮추었다는 의미이다. 그럼 공자가 궁궐 내에서 행하셨던 모습들을 하나씩 알아보자.

첫째, 공자는 사람이 들락날락 하는 가운데 문에 서 계시지 않았고, 둘째, 절대로 문지방을 밟지 않으셨으며, 셋째, 얼굴빛을 근엄하고 상냥하게 하였으며, 넷째, 발걸음은 잰걸음으로 종종 걸음을 하셨고, 다섯째, 말씀도 가급적 삼갔으며, 여섯째, 계단을 올라갈 때에는 손으로 옷을 감아올리시어 옷을 밟아 넘어짐을 대비하였으며, 일곱째, 숨소리 또한 최대한 들리지 않게끔 낮은 소리를 내쉬었으며, 여덟째, 궁궐 내에서 용무를 마치고 계단을 내려올 때에는 얼굴빛을 밝고 환하게 하여 좌중으로 하여금 편안하도록 유도하였으며, 아홉째, 계단을 내려와서는 새가 날개를 펴듯 활갯짓을 하시며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셨다고 한다.

자신이 몸을 구부리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맹목적 복종과 존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도 이러한 타자의 모습을 보고 최소한의 예의로써 서로를 존중해 주기 바라는 뜻이었다.

공자가 타국의 신하가 되어 예를 갖추어 손님을 대접하는 빈례(賓禮)가 실로 이러하였으니,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고대 궁정 내에서의 예법은 정말로 엄숙하고 경건한 모습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