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신간소개> 사서 –이치를 담은 네 권의 책-

세상에는 다양한 고전이 존재하고, 고전을 원전으로 하는 다양한 창작물이 존재한다. 고전의 첫 발성이라 할 수 있는 원전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음미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가 남긴 명언이지만, 원전을 읽은 사람은 “너 자신을 알고 너 자신을 탐구하라”는 대로 생각을 잇는다. 공자는 ‘널리 글 배울 것’이라는 뜻의 박

오현주 기자 2018. 12. 14.

 

세상에는 다양한 고전이 존재하고, 고전을 원전으로 하는 다양한 창작물이 존재한다. 고전의 첫 발성이라 할 수 있는 원전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음미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가 남긴 명언이지만, 원전을 읽은 사람은 “너 자신을 알고 너 자신을 탐구하라”는 대로 생각을 잇는다. 공자는 ‘널리 글 배울 것’이라는 뜻의 박학어문(博學於文)을 강조했다. 원전을 읽은 사람은 공부의 목적인 ‘약지이례(約之以禮)’, 즉 “예로써 몸단속한다”는 말, 앎보다 중요한 실천 방법론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동양고전이 한글세대에게 유독 어려운 이유는 한문이라는 언어적 장벽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한문을 한문투로 옮기거나 직역만이 역자의 태도라 믿는 정직성과 수용자의 전통에 대한 완고함이 동시에 작동한다. 우리는 서양 문화의 원류라 할 수 있는 그리스로마 신화나 고전을 접할 때 라틴어에 구애받지 않고 즐기면서 동양고전에 대해서는 한자 원문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글 창제 이전에 우리 조상들이 한문을 문자로 사용하고 소통한 추체험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도 한문 원문과 독음을 실었지만 <이 책의 특징 및 활용법>에서 밝힌 것처럼 한자를 그림처럼 보고 독음은 음악처럼 맛보라고 안내한다. 평소 동양고전의 한글 사유를 강조한 저자의 장기를 발휘하여 한글 원문으로도 충분히 ‘사서’의 진가를 맛볼 수 있게 구성했다. 다만 우리가 관용적으로 쓰는 말이나 단어에서 한자의 흔적을 무시할 수 없기에 한문 원문과 독음을 실었다. 또한 단락이 끝날 때마다 핵심 내용을 정돈하여 사자성어식 ‘핵심어’ 와 ‘(핵심어)해설’ 을 실었고, 해설을 대신하는 한 줄 명언으로 원문의 의미를 ‘요약’했다.

독자들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원전의 용어나 개념을 현대적 용어로 풀어썼다. 예를 들면 천자나 성인은 최고지도자로, 군자는 지성인, 인격자, 지도자, 사람다운 사람 등으로 바꾸었다. ‘인’이나 ‘의’와 같은 용어도 ‘사람을 사랑하는 열린 마음’이나 ‘올바른 사람의 도리’ 등으로 풀어썼다.

왕정시대에 주자의 ‘사서’가 지배계층의 통치 철학서로 작동했다면, 엮은이는 민주주의 시대 개인이 곧 ‘군주’라는 개념을 적극 도입했다. 독자들은 한글 완결판 ‘사서’를 개인의 성숙된 리더십 바이블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제1권 어른 공부의 시작, 대학

 

‘사서’의 첫 권을 차지하는『대학』은 리더(통치자)가 되한 공부의 내용을 담고 있다. 대학은 조선 왕의 교과서로 자리했는데 세종대왕은 진덕수(1178~1235)가 쓴 『대학』의 해설서인『대학연의』를 100번이나 탐독했다고 할 정도로 제왕학의 교본으로 받아들여진다. 『대학』에서 발췌한 부분을 보자. “임금은 삼가고 또 조심해야 한다.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나라가 혼란스럽게 될 뿐만 아니라, 사람들 또한 그를 가만두지 않고 죽일 수도 있다. ” -『대학』「전문」2-10-2(일부)

『소학』이 유치원에서부터 초,중등학교에서 다루는 수준의 내용을 담고 있다면 ‘큰 배움’인 대학은 어른을 대상으로 한다. ‘어른’이라 함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똑똑한 사람들이 배우는 인생철학을 담고 있다. 이때 어른과 똑똑한 사람이란 다름 아닌 지도자급 인사를 일컫는다. 그만큼『대학』은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들, 방법들을 짧은 문장 가운데 치밀하게 서술하고 있다.

 

제2권 공자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논어』

 

추사 김정희의 명화 <세한도>의 발문은 ‘날이 차가워진 연후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나중에 시듦을 안다’는 구절로 시작하는데, 이는 『논어』(<자한> 편)에서 따왔고 ‘견리사의 견위수명’(<헌문> 편>)과 같은 선인들이 남긴 유묵들은『논어』의 구절을 인용한다. 『논어』는 유교의 최고 경전이다. 기독교에 바이블이 있듯이 유교에는 『논어』가 있다. 그만큼 『논어』가 끼친 영향은 오늘날에도 막대하다.

『논어』는 공자가 죽은 후 약 70여 년이 지난 뒤, 공자를 신봉하는 후손들이 공자와 그 제자들의 언행을 기록한 집단지성의 산물이다. 한 사람이 쓴 저작도 아니고 기억과 구전에 의존한 기록물이라 태생적으로 모호하고 불분명한 언표들을 포함하고 있다.

대화로 구성된 고전들이 그렇듯『논어』에 관한 해설서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출간되고 있다. 해설자에 견해에 따라 재해석이 요구된다. 거기가다 중국에서 왕조가 바뀔 때마다 공자는 불리어졌다. 한나라, 송나라, 명나라의 공자는 시대에 맞게 변주되었다. 조선시대 송나라 주자 성리학을 국가 통치 철학으로 받아들이면서 주자의 『논어집주』를 정본으로 받아들였지만, 현대인들이 그에 따라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공자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데 공자의 말처럼 굳어진 말은 또 얼마나 많은가! ‘공자의 처음말’을 만나보자.

 

제3권 공자는 짧게 말하고 맹자는 치밀하게 논증한다

 

유학을 흔히 ‘공맹’의 철학이라고 하는데 서양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처럼 공자와 짝을 이루는 철학자가 맹자이다.

맹자는 ‘성선설’ ‘호연지기’ ‘대장부’ ‘왕도’ ‘군자삼락’ 등 다양한 사상을 전개했다. 특히 ‘역성혁명’으로 상징되는 그의 혁명사상은 동양적 정의의 표준으로 자리매김 된다. 공자 학당의 최고 모범생으로 성인에 버금하는 지위인 ‘아성’이라는 평가를 받는 『맹자』를 ‘사서’의 독법으로 읽는다면, 공자의 말을 받아서 어떻게 자신만의 사상을 펼쳐나갔는지 비교해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자로> 편에 제자 번지가 공자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한다. 이에 공자는 “나는 늙은 농부만 못하다.”고 했다. 번지가 다시 채소밭 가꾸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자 “나는 늙은 채소장이만 못하다.”고 대답한다. 맹자는 이를 이어받아 <등문공> 편에서 ‘분업론’을 펼친다. 맹자는 노력자(노동자)와 노심자(지식인)의 역할 분담, 혹은 협력적 상생관계를 정치와 경제의 매우 중요한 원리로 내세운다. “지도자가 없으면 들판에서 일하는 민중을 다스를 수 없고, 들에서 생산하는 민중이 없으면 지도자를 먹여 살리 수 없다”는 논리다. 정치지도자는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하는 책무성을 지니고 있다. 이를 지배-피지재의 관계라기보다 어디까지나 상생, 협력의 관계로 사상을 전개한다는 점이 맹자 철학의 혁신성이라 할 수 있다.

 

제4권 ‘중용’은 마음 운용법, 참으로 어려운 경지

 

공자는 “‘중용’의 길을 참으로 행해지기 힘들다”고 했다. 중용을 취한다면 “어떤 일이건 힘들이지 않아도 척척 들어맞고, 생각하지 않아도 마음에 터득되며, 저절로 자기 길을 찾는다.”(『중용』제 20장)는 상태에 이른다. 사서 중 맨 마지막에 읽도록 배치한 『중용』은 인간의 삶과 공부 철학을 은미하고도 오묘하게 간직하고 있다.

특히 『중용』은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야 하는 장이다. 『중용』은 신을 대신한 자연이라는 존재를 상정한 동양의 인간이 자연스럽게, 성실하게 살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동양은 관념이나 심리분석으로 사상을 전개하지 않고 마음 쓰는 법(심법)을 학문과 삶을 관통하는 핵심 사상으로 삼았는데, 『중용』그 최초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책이다.

나무발전소 02-333-19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