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四字論語> ‘焉能事鬼’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는가

김용재 / 성신여대 한문학과 교수 계로가 귀신 섬김을 묻자, 공자께서 “사람을 잘 섬기지 못한다면 어떻게 귀신을 섬기겠는가” 하셨다. “감히 죽음을 묻겠습니다” 하자, 공자께서 “삶을 모른다면 어떻게 죽음을 알겠는가” 하셨다.(季路問事鬼神한대 子曰 未能事人이면 焉能事鬼리오 敢問死하노이다 曰 未知生이면 焉知死리오.「先秦」11) 우리가 흔히 공맹(孔孟)의 사상

김용재 2019. 2. 13.

 

김용재 / 성신여대 한문학과 교수

 


 

계로가 귀신 섬김을 묻자, 공자께서 “사람을 잘 섬기지 못한다면 어떻게 귀신을 섬기겠는가” 하셨다. “감히 죽음을 묻겠습니다” 하자, 공자께서 “삶을 모른다면 어떻게 죽음을 알겠는가” 하셨다.(季路問事鬼神한대 子曰 未能事人이면 焉能事鬼리오 敢問死하노이다 曰 未知生이면 焉知死리오.「先秦」11)

 

우리가 흔히 공맹(孔孟)의 사상을 ‘유학(儒學)’ ‘유가(儒家)’ ‘유교(儒敎)’라고 운운할 때, 그 차이점은 어디에 있을까? 개념어의 성격에 따라 의미하는 범주가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에, 이러한 용어에 대한 정의는 한 번쯤 짚고 넘어갈 필요성도 있겠다. 역시 이 용어들을 구분함에 있어 가장 큰 경계는 ‘종교성’에 있지 않을까 한다. 따라서 종교성의 유무를 판가름 하는 데에는 ‘사후세계’에 대한 정의와 ‘우상숭배’가 관건일 것이다. 그렇다면 공자는 사후세계에 대하여 어떻게 평하였을까?

 

이 경문에서의 ‘계로’는 자(字)가 ‘자로(子路)’이며 이름이 유(由)인 공자의 애제자 ‘자로’를 뜻한다. 자로는 변(卞) 땅에서 싸움 잘하기로 소문났으며 키가 2m에 가까운 상당한 덩치를 가진 거인과 같은 존재였다. 수탉의 깃털을 머리에 꼽고, 수퇘지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다니는 몰골사나운 사내였으며, 공자보다 9살 연하의 제자이기도 하다. 어떤 주석에 의하면, 자로는 너무나도 싸움을 많이 하여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고비도 많았던지라, 무식함을 숨기지 않은 채 공자에게 이거저거 가리지 않고 마구 질문해대는 천진난만한 공자의 제자였다고도 서술되어 있다.

 

공자는 이러한 순박한 자로가 죽음에 관해서 몰두하다 보면 오히려 현실세계를 져버리지 않을까를 염려하여 “살아있는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거늘 죽은 귀신을 어떻게 섬길 수 있단 말이냐?” “아직 삶에 대해서도 모르거늘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고 반문해 준다. 그러나 이 공자의 말씀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죽음과 삶이 꼭 단절되어 있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유가에서 귀신은 제사를 모시는 대상이기도 하며, 사후세계의 존재를 일정 정도 인정하는 카테고리이기 때문이다.

 

다만 서양의 종교관에 의하면 이 현실세계가 어둠의 세계이고 하늘나라가 빛의 세계임에 반하여, 유교의 종교관에 의하면 이 현실세계야말로 내가 주체가 되어 꾸려 나가야할 빛과 영광의 시간이고 하늘나라를 어둠의 세계로 인지하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삶과 죽음의 세계를 불이문(不二門)이라 했던 것이 아닐까?

 

아마도 필자가 보기에 ‘유학’은 어느 일면에서 보자면 지극히 ‘종교성이 강한 철학’이며, 동시에 철리적(哲理的) 내용이 강한 학문사상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