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재 / 성신여대 한문학과 교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로가 비파가락을 어찌 내 문에서 연주하는가? 문인들이 (이 말을 듣고) 자로를 공경하지 않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는 당에는 올랐고 아직 방에 들어오지 못한 것이다.”(子曰 由之瑟을 奚爲於丘之門고 門人이 不敬子路한대 子曰 由也는 升堂矣요 未入於室也니라.「先秦」14)
『논어』에서 ‘자로’의 출현은 독자에게 언제나 즐거움과 궁금증을 동시에 자아내기에 이른다. 이 경문 역시 스승 공자가 자로에 대한 평가를 어느 정도에까지 올려줄 것인지, 고심에 가득 차 있는 듯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내용은 이렇다. 자로는 덩치가 매우 큰 제자이다. 그래서 악기를 고르는 데에도 ‘슬’을 선택했나 보니다. 왜냐하면 금과 슬은 약간 다른 악기이기 때문입니다. 부부지간에 사이가 좋으면 보통 금슬(琴瑟)이 좋다고 합니다. ‘금(琴)’과 ‘슬(瑟)’은 아악기로서 비슷한 음질을 내는 것이지만, 크기 면에 있어서는 ‘금’보다 ‘슬’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자전을 찾아보아도 ‘금’은 ‘거문고’로 나오며, ‘슬’은 ‘큰 거문고’라고 적시되어 있다. 사실 ‘슬’은 ‘큰 거문고’라는 악기명 외에, ‘장엄한 모양’이라는 훈(訓)도 있다. 그래서 자로는 자신의 몸집에 맞게 ‘슬’을 선택하여 연주하였을 것이라고 추정한 것이다. 그런데 자로가 '슬'을 연주하는 소리가 듣는 이로 하여금 매우 괴로울 정도로 ‘수준 이하’였나 보다. 기실 자로는 무인(武人)으로서 싸움의 기술에는 능했지만, 악기 연주와 같이 섬세한 부분이나 감성을 다스리는 분야에서는 문외한(門外漢)이었을 것이다.
공자는 자로가 ‘슬’을 타는 소리를 듣다듣다 참지 못하고서, 하필이면 왜 내 문 앞에서 ‘슬’을 연주하고 있냐고 질문을 던졌나보다. 잘하지도 못하는 연주를 굳이 내(공자) 집 앞에서 연주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공자의 이러한 놀림 반, 비아냥 반, 섞여 있는 말씀을 곁에 앉아있던 제자들이 들었다. 그리고 심지어 나이 어린 제자들마저 자기들보다 훨씬 연장자였던 자로를 공경하지 않고 놀려댔다. 이 모습을 목도한 공자가 다시 분위기를 전환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공자는 자로의 연주수준이 아직 ‘실’에는 들어오지 못했을 뿐이지, ‘당’에는 능히 오를 수 있는 경지라고 다시 칭찬해 주신다.
‘당’은 문자 그대로 ‘집’ 혹은 ‘대청마루’의 경지이며, ‘실’은 ‘안방’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은 외면적 수준을 나타내는 상징어이고, ‘실’은 집 안의 ‘방’과 같은 것으로서 수준 높은 경지의 치밀함을 상징하는 글자이다. 따라서 자로가 '슬'을 타는 수준이 심오한 내면적 연기까지는 아직 불급(不及)이나, 어느 정도의 수준에까지는 충분히 도달했다는 것을 뜻한다. 사실 ‘당’에 오를 수 있는 것도 상당히 수준 높은 경지임을 감안할 때, 공자가 자로의 기를 되살려 주는 사랑의 마음을 엿볼 수도 있다. 공자는 ‘승당’과 ‘입실’을 도(道)에 들어가는 단계라 여겼고, 자로의 학문됨이 정대고명(正大高明)한 경지에는 이르렀지만, 아직 정미하고 세밀한 내면적 경지에까지는 미치지 못했을 뿐이라고 여겼다.
『주자집주』에서는 『공자가어』의 말에 근거하여 자로의 ‘슬’ 연주가 마치 북방에서 불어오는 살벌한 바람과도 같은 기운이 돌았다고 하면서, 이에 공자가 자로를 심히 핀잔주고 폄하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으나, 이는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평가라고 생각라고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