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육이는 감싸고 받드는 것이다. 소인은 길하고, 대인은 비색하게 하지만 도에는 형통하다. 상에 말하기를 ‘대인은 비색하게 해서 형통함’은 어지러운 무리에 섞이지 않는 것이다.[否卦 六二]
삼국을 통일한 진나라였지만, 촉한의 후예라고 자칭하는 후한에 의해서 강남으로 쫓겨 갔고, 네 번째 임금인 민제는 후한에 포로로 잡혀가서 갖은 수모를 겪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사마예가 5대 황제(중종)로 등극하여서 평소 자신을 도와 군사력을 강화시킨 왕돈과 조정안에서 인재를 발탁하고 관리하며 보좌한 왕도 등 왕씨들을 중용했는데, 왕씨의 세력이 커지자 사람들이 “사마씨와 왕씨가 천하를 공유하였다.”라며 한탄할 정도가 되었다.
사마예가 유외와 조협 등에게 힘을 실어주며 왕씨들을 견제하게 하였더니, 변방의 정벌을 총괄하던 왕돈이 반발하면서 “간신 유외와 조협을 조정에서 몰아내야 나라가 평안해진다.”는 명분을 가지고 도성을 향해 쳐들어왔다. 도성 안에 있던 왕씨들이 그 자리에 앉아서 죽임을 당할 처지가 되자, 왕도가 일가친척 20여 명을 이끌고 궁궐의 문 앞에 꿇어앉아 죄 줄 것을 자청하였다. 그때 마침 평소 서로의 도덕과 능력을 깊이 신뢰하며 아끼던 주의가 임금의 부름을 받아 대궐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왕도가 주의를 부르며 “백인(伯仁ː주의의 字)아! 우리 식구 100명의 목숨으로 신세를 지자.”하고 외쳤다.
그런데도 주의는 왕도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쌩하며 곧바로 궁궐로 들어갔다. 하지만 임금을 뵙고는 “충성스럽기로 왕도를 따를 사람이 없습니다. 왕도를 믿지 않고 누구를 믿겠습니까?”하면서 매우 간곡하게 왕도의 목숨을 구하였다. 임금이 왕도와 주의의 의리와 충정을 기뻐하면서 술을 권해서 취하게 되었다. 주의가 대궐에서 나오는 것을 본 왕도가 또 주의를 부르며 사정을 했는데, 임금에게 하던 태도와는 다르게 쌀쌀맞은 표정을 지으면서 “금년에 도적놈들을 모두 죽여서 큰 상을 받을 것이다.”하며 사라졌다. 그리곤 집으로 돌아가서는 다시 표를 올려 “왕도는 충성스럽고 죄가 없다.”는 뜻을 매우 간절하고 지극하게 밝혔다. 하지만 주의가 그렇게 한 것을 모르는 왕도는 매우 원망스러워하였다.
왕돈의 무력을 두려워한 임금이 왕돈을 승상으로 삼아 국정을 총괄하게 하였다. 왕돈이 사촌동생 왕도에게 “주의 등 명성이 높은 사람을 제거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했는데, 왕도가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지 않자 주의를 죽였다. 나중에 왕돈이 조정의 문서를 살피다 주의가 자기를 구원한 상소문을 보고 “내가 비록 백인을 직접 죽이지는 않았으나 백인이 나 때문에 죽었으니,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좋은 친구를 등졌구나!”하며 애통해했다.
이완구 총리의 총리인준 청문회 때 직접 도와주지 못했다고 하면서 야당 원내대표와 공식석상에서 서로 눈물을 흘렸다고 설왕설래 말이 많다. 아마도 속마음을 밝히지 않으면 왕도와 주의처럼 오해를 살까봐 그랬나 보다. 혹은 둘만 있는 자리에서 밝히면 밀실정치라고 오해를 할까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易에서는 ‘꽉 막힌 세상을 풀 때, 소인은 자신의 길함을 먼저 생각하고 대인은 당장은 괴롭더라도 먼 앞날을 위해 행동한다.’고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