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재 / 성신여대 한문학과 교수
계씨가 주공보다 부유하였는데도 구가 그를 위해 부세를 걷어 재산을 더 늘려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구는 우리의 무리가 아니니, 얘들아! 북을 울려 죄를 성토함이 옳다.”(季氏富於周公이어늘 而求也爲之聚斂而附益之한대 子曰 非吾徒也로소니 小子아 鳴鼓而攻之可也니라. 「先秦」16)
『논어』 속에 비친 ‘염구’의 모습은 언제나 현실주의자였으며 정치술(政治術)이 능숙한 관료로 묘사되고 있다. 그래서 염구가 관료로 제수되었던 나라들의 일면을 보면 그 나라는 언제나 일정한 수준의 부(富)를 창출하곤 했다.
이러한 염구의 모습을 지켜 본 스승 공자는 그를 자랑스럽게 여기곤 하였다. 그러나 염구가 위아래도 못 알아보는 ‘계손씨’의 휘하에 들어가 그의 앞잡이 노릇하는 것을 본 후, 공자는 분노를 느끼며 격하게 울분을 토해 낸다.
계손씨는 노나라 3대 대부(맹손씨‧숙손씨‧계손씨) 중 하나로, 당시 실세 중의 실세였던 사람이다. 「팔일」편 첫 문장에서도 ‘계씨(계손씨)’에 대하여 공자가 일침(一針)하는 장면이 그려지고 있으며, 「계씨」편은 ‘계손씨’를 폄하하는 글로 서술되어 있는 것만 보아도, 계손씨의 무례함이 어느 정도였을지에 대해서는 상상이 간다.
그러한 계손씨에게 공자 자신이 믿고 의지하며 자랑스럽게 여겨왔던 제자 염구가 해대는 짓을 보시고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백성들의 세금을 쥐어 짜내어 계손씨의 재산을 부풀려 주고 있는 염구의 모습에서, 공자는 사제 간의 의리를 떠나 진리를 저버린 일개 졸부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공자는 마치 전쟁을 감행할 기세로서 ‘북을 울려가며 그(염구)를 공격하라’고까지 격한 어투를 내놓는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볼 수 있는 점은 계손씨를 공격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제자 염구를 치라는 부분이다.
그의 분노의 한계는 자신에게서 배운 염구가 다시는 그러한 못된 짓을 하지 못하게 철저한 응징과 교훈을 심어주고 싶었다는 데에 있다. 계손씨의 가신(家臣)이 되어 흉흉한 못된 짓을 해대는 염구를 책망함으로써, 두 번 다시 악한 무리와 함께 어울리지 못하게 하신 것이다.
이 경문에서 보면, 성인 당신은 제자와의 인연을 끊을 듯이 성토하셨지만, 그 이면에는 스승이 비록 엄해도 주변의 벗들은 친근하니 너희들이 그를 바로잡아 줄 것을 격려하시는 모습도 역력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