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육삼은 지고 또 탐이라. 도적 옴을 이루게 했으니 바르더라도 인색하리라. 상에 말하기를 ‘등에 지고 또 탐’이 추한 것이며, 자기로부터 도적을 이루게 했으니 누구를 탓하랴?(해괘 육삼)
조선은 여인의 정조를 미덕으로 생각하는 나라였다. 그런데 그것은 평상시의 바람이자 희망이고, 전쟁을 당한 여인들이 정조를 지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여인이 정조 지키기를 원한다면 전쟁이란 혹독한 환경이 발생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권력을 쥐고 있던 대감들은 강화도가 안전하다며 자신의 처첩과 딸을 인솔해서 강화도로 피난 갔지만,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한 강화도가 순식간에 점령당하였다. 여인들은 아비와 남편의 재촉 속에 목을 매거나 은장도로 목을 찔러 자결했다. 차마 죽지 못하는 여인들에게 남편들은 빨리 자결하라고 소리를 질렀고, 그것도 저것도 못한 여자들은 잡혀서 정조를 잃게 되었다. 심양까지 끌려간 여인들이 20만이 넘었다고 하니, 당시 조선의 인구가 1000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전국적으로 벌어진 재난이었다.정조를 뺏기고 싶어서 뺏긴 여인이 어디 있고, 편안하고 정들은 내 집을 두고 끌려가고 싶은 여인이 어디 있었겠는가? 난리는 정권을 잡은 사대부들이 불러왔는데, 고통은 백성과 여인들이 당한 것이다. 훗날 그래도 돈 있고 빽 있는 사람들은 환속금을 내고 귀국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난리는 돌아와서 더 크게 났다. 처음에는 자신의 어머니, 아내, 딸이라서 큰 재산을 처분해서 환속금을 내고 데려왔는데, 정조를 잃은 것이 너무 뻔하므로 주변에서 손가락질을 하는 것이다.
더구나 나라에서는 전쟁 중에 자결한 여인의 집안에 열녀문을 세워주었다. 열녀문이 세워지면 세금이 면제되고, 과거를 보지 않고도 벼슬하는 길이 열린다. ‘여인이 죽었다면 이런 특전이 돌아왔을 텐데, 환향녀가 되어 돌아옴으로써 가문의 수치가 되다니…’, 이런 생각을 한 사대부들은, 나라를 지키지 못한 죄는 잊은 채 귀환한 여인들이 훼절했다며 부인이자 며느리의 지위를 박탈하려고 했다.
보다 못한 최명길이 궁여지책을 진언했다. 날을 정해, 환향녀들이 각 고을마다 지정된 강에서 몸을 깨끗이 씻으면 회절(回節)한 것으로 보고, 각 집안에서 따뜻하게 맞이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인조는 그 말을 받아들여 시행하게 하고, 정조를 회복한 환향녀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국법으로 다스리겠다고 엄포를 내렸다.
그렇지만 이 말을 받아들일 사대부들이 아니었다. 더럽혀진 여인의 손으로 조상의 제사를 지낼 수 없고, 더럽혀진 여인에 의해 후손을 이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돌아왔던 환향녀 5만여 명 중에 1만여 명이 자살의 길을 택했고, 일부는 다시 또 심양으로 가거나 길거리 귀신이 되었다고 한다.
무능하고 멍청한 고집을 부리다가 자신의 임금에게 머리를 찧으며 항복하게 한 죄, 백성들을 적병의 손에 철저하게 유린되게 한 죄가 있는, 그래서 온갖 고생과 치욕을 다 겪게 한 나쁜 놈이 억울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았다. 잘 될 리가 있는가! 그래서 역에서는 ‘분수를 모르고 날뛰다가 도적을 불렀으니, 누구를 탓하겠는가?’라고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