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재 / 성신여대 한문학과 교수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서 묻자,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정치란 바로잡는 것이니 그대가 바르게 이끈다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겠는가?”(季康子問政於孔子한대 孔子對曰 政者는 正也니 子帥以正이면 孰敢不正이리오. 「顔淵」17)
‘정치하다’라고 말할 때 ‘정(政)’이라는 글자의 본래 뜻은 ‘바르게 하다’는 뜻이다. 우리가 흔히 “저 사람은 다분히 정치적이다”라고 말할 때, 정치적인 인간은 어떤 사람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마도 정치적 인간이라 말할 때, 그 행간에 숨어 있는 의미는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사람, 즉 겉과 속이 같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본인이 싫어하는 상대방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이익을 얻어내기 위하여 겉으로 친애하는 체 하는 사람이 바로 정치적 인간의 대표격이다.
이 경문은 노나라 대부였던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공자가 대답한 내용에 해당된다. 당시 노나라는 정치가 노나라 군주가 아닌, 그 아래의 대부였던 맹손씨, 숙손씨, 계손씨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형국이었다. 당연히 공자는 이들을 쓰레기와 같은 인물로 폄하(貶下)했고, 계강자가 이러한 악습을 폐퇴시키고자 노력했으나 그 역시 이욕(利慾)에 눈이 멀어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자, 공자는 이를 안타깝게 여기는 장면이다.
정치는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정치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정치는 아무에게나 시킬 수 없는 중차대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자에게 있어 ‘정치’라는 것은 분명, 백성보다 위계가 높은 위정자들의 몫으로 정의하되, ‘자신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행해지고, 자신이 바르지 못하면 비록 명령해도 따르지 않는다(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는 평범한 진리를 전제로 삼았다. 솔선수범(率先垂範)은 위정자에게 있어 선택이 아닌 필수로서의 자격요건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공자는 ‘주이불비(周而不比)’를 강조하며, 끼리끼리 편당짓는 정치패거리들을 늘상 비판했었다. 정치꾼들은 자신의 이욕을 추종하는 자들의 당파(黨派)여서는 안 된다. 자신들을 알아봐준 백성[국민]에게 보은(報恩)하는 순간의 자리에 불과하다.
사마천은 사기 「열전」편 두 번째 순서에 「관안열전」을 배치하였다. 관중과 안영에 관한 이야기가 중요하였음을 보여준 일면이다. ‘안영’은 춘추시대 제나라 경공의 재상이었으며, 제나라를 춘추오패(春秋五霸)로 만든 견인차 역할의 인물이었다. 훗날 안자(晏子)라 불리며 안자춘추(晏子春秋)까지 저술한 인물이기도 한데, 백성과 있었던 귀중한 일화가 있다.
제나라에 ‘북곽소’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냥과 짚신을 짜서 모친을 봉양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안영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안영이 북과소에게 돈과 곡식을 주니, 망설이지 않고 받아갔다. 훗날 안영이 제경공으로부터 의심을 받아 피신하던 차에, 북과소의 집을 찾아가 자신의 절박한 상황을 이야기하며 도움을 요청했는데, 뜻밖에도 북과소는 “알아서 처리하십시오”라며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안영을 문전박대했다. 안영은 그 옛날 자신이 도와준 북과소가 맞는지 의심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으며, 상심한 표정으로 다시 피난길을 떠났다. 그런데 안영이 떠난 직후, 북과소는 친구를 찾아가 “나는 일찍이 안영에게 노모를 봉양코자 일용할 양식을 구했는데, 안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에게 곡식을 주었네. 나는 안영의 인자함과 의로움에 감복했고, 내 노모를 봉양하는데 도와주신 은인이니, 나는 그를 위하여 내 목숨을 걸고 도와드리고자 하네”라 말하고, 친구에게 대[竹]광주리와 검(劍)을 들게 하고, 궁궐로 찾아가 신하가 보는 앞에서 “안영의 억울함을 살펴주십시오. 이런 안영과 같은 인재를 잃으면 제나라로서는 크나큰 손실입니다. 저의 목숨을 걸고 증명하겠나이다”라 말하고선 자신의 머리를 베어 친구의 대광주리에 담고서, 어서 대왕을 찾아가 진언해달라고 간청하였다. 이 말을 들은 친구는 다시 궁을 찾아가 대광주리 안에 있는 북과소의 머리를 보이며 “내 친구는 제나라를 위하여 안영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목숨을 바쳐 증명해냈고, 나는 북과소의 친구로서 북과소의 진언을 위하여 내 스스로 자결하겠나이다”라며 자신의 목을 베었다. 이에 제경공은 직접 나아가 안영을 찾아왔고, 그간의 사정을 들은 안영은 “내가 훌륭한 정치인이 못되고 도망다니는 신세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로다!” 하며 통곡했다고 한다.
‘정치’란 사람이 사람을 위하는 일이고, 믿음과 신념으로써 보은의 ‘봉사(奉仕)’를 실천하는 곳이며, 백성에게 베푼만큼 백성을 꼭 그 대가를 보여주는 삶의 현장이라 정의내릴 수 있을 것이다.
도로의 네거리에서, 또는 정류장과 지하철역 입구에서 입간판을 들고 선전용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춰대고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하는 것을 보면, 늘 이때는 ‘선거철이 되었구나!’를 실감한다. 요즘 시대에 선거가 민주주의 꽃이라지만, 그 선거일만 지나면 당선된 위정자는 다시 그들만의 리그 속으로 숨어버린다. 변소에 들어갈 때와 변소에서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다고 한들, 이렇게까지 달라지는 곳이 우리네 정치판이랴! 공자의 가르침이 절실한 곳이 바로 우리 대한민국 ‘국회’와 그 휘황찬란(輝煌燦爛)한 ‘금(金)딱지’를 달고 있는 ‘국회의원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