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易으로 보는 세상 177측천무후의 권력욕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육오는 눈물이 물 흐르는 듯하며, 슬퍼서 탄식함이니, 길하리라. 상에 말하기를 ‘육오의 길함’은 왕공의 자리에 걸렸기 때문이다.(리괘 육오효) 당나라 태종이 죽었다. 임금이 죽으면 자식 없는 후궁은 비구니로 만들어 선황의 명복을 빌게 한 궁중 법도대로 재인 무조도 여승이 되었다. 그러다가 감업사에 태종의 재를 지내러 온 고종을 홀려서

윤상철 2019. 9. 29.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육오는 눈물이 물 흐르는 듯하며, 슬퍼서 탄식함이니, 길하리라. 상에 말하기를 ‘육오의 길함’은 왕공의 자리에 걸렸기 때문이다.(리괘 육오효)

 

당나라 태종이 죽었다. 임금이 죽으면 자식 없는 후궁은 비구니로 만들어 선황의 명복을 빌게 한 궁중 법도대로 재인 무조도 여승이 되었다. 그러다가 감업사에 태종의 재를 지내러 온 고종을 홀려서 1년여 만에 다시 궁중으로 돌아왔다.

 

이는 깜짝 놀랄 일이었다. 태종과 고종은 부자지간이다. 아버지의 후궁을 아들이 품은 것이다. 물론 태종이 융족출신이라 아버지의 후궁을 아내로 맞이하는 풍속을 따랐다 해도, 장소가 중국 황실 안인지라 큰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고종의 황후와 황비(소숙비)와의 암투를 사전에 포착하고 적절히 이용한 무조의 능력이 크게 작용했다. 황후는 고종과 애인관계인 무조를 이용해서 소숙비에 대항하고자 했다. 소숙비만 제거하면, 선황제의 후궁이었다는 약점이 있는 무조는 언제든지 내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황후의 뜻대로 고종이 소숙비를 멀리했고, 무조 역시 황후를 공손히 받들었으므로 황후의 세상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무조를 모르고 벌인 어림없는 일이었다. 무조는 특유의 친화력과 정치력으로 황궁 사람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소의(昭儀)로 품계가 올라갔다.

 

딸을 출산했다는 소식에 황후가 축하하러 무소의의 처소를 방문했다. 그때 방에는 아기만 있었으므로, 아기를 잠시 안아보고 돌아갔다. 이어서 고종이 찾아왔을 때, 무소의가 아기를 보여주려고 이불을 젖혔는데 아기가 죽어 있었다. 소의가 울부짖으며 방문했던 자가 있었는지 묻자, 시녀가 “황후께서 오셨다 돌아가셨습니다.”

 

무조의 첫 번째 가족 살인이라고 알려진 사건이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로 고종은 황후를 의심하게 되었고, 무소의는 황후가 자신을 저주하는 주술을 했다고 무고하여 황후를 더욱 깊은 곤경에 빠트렸다. 고종이 황후를 폐하고 무조를 세우고자 신하들에게 물었다. 끝까지 반대하던 저수량은 강등되어 지방으로 쫓겨 가고, 임금의 집안일이라고 하며 눙친 이적과 “농부도 10가마의 보리를 수확하게 되면 자기 부인을 바꾸려 하는데, 천자가 되어 황후 하나 못 바꾸는가?” 하며 찬성한 허경종은 중용되었다.

 

결국 무조(측천무후)는 황태자들을 연이어 폐위시켜 죽이고 자신이 황제가 되어 중국을 통치했다. 그녀는 황후와 조숙비를 술에 담가 죽이는 등 무수한 사람을 잔인하게 죽였고, 특히 딸과 두 아들을 비롯한 친족도 23명이나 죽였다. 그녀에게는 모든 것이 정치적 손익과 피아간의 득실문제였다. 목적에 도움이 된다면 부자간의 강상윤리도, 부모자식간의 천륜도, 군신간의 의리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녀가 다스리자 불안정했던 정국이 안정되고, 중국역사상 가장 번창한 시기를 누렸다. 그래서 역에서는 “급박하고 어려운 상태를 맞이했을 때, 능력 있는 사람을 초청해서 해결하면 피눈물이 철철 흐를 정도로 마음이 힘들더라도 결국 길하게 된다”고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