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철(대유학당 대표)
구삼은 군자가 종일토록 굳건하고 성실하게 하다가 저녁이 되어서는 두려운 마음으로 반성하면, 위태로우나 허물은 없으리라.(건괘 구삼효)
주자께서 죽음을 앞에 두고 평소에 저술한 책을 살피시다가, 『대학』의 「성의장(誠意章)」 주석에서 “欲其一於善而無自欺也(한결같이 착하게 해서 스스로 속임이 없게 하고자 함)”을 “欲其必自慊而無自欺也(반드시 자기를 유쾌하고 만족하게 하고 자기를 속임이 없게 하려 함)”으로, 즉 ‘일어선’의 세 글자를 ‘필자겸’으로 고치고 3일 뒤에 돌아가셨다. 자신의 뜻을 성실하게 하고자 하는 사람이 ‘한결같이 선하게 행동하려는 마음’도 좋지만, ‘유쾌하고 만족한 마음으로 행동’하는 것이 더 좋다는 뜻이다. 더구나 ‘필자겸’은 ‘일어선’과는 달리 ‘무자기’와 좋은 대구가 된다.
사실 이 세 글자의 조합이 만든 뜻은 크게 다르지 않다. ‘몸과 마음을 한결같이 선하게’하면 그것이 바로 성의(誠意)이고 정심(正心)이며, 그런 경지가 되면 유쾌하고 만족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굳이 이 세 글자를 고친 이유는 무엇인가? 왜 죽는 순간까지 글을 고쳤는가? 학자는 죽는 순간까지 공부하다 죽는 것이고, 자신이 말한 생각, 자신이 낸 책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말한 생각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은 끊임없이 묻고 연구해서 완전한 철학을 만드는 것이고, ‘자신이 낸 책에 대해서 책임을 진다’는 것은 후학을 가르침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야 ‘한결같이 선하게 살려는 의지’를 넘어서,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의 경지, 즉 욕심대로 해도 선의 경계 안에 있게 되어서 항상 유쾌하고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결같이 선하게 행동하려는 마음’은 아직 도의 경지에 들어서지 못한 마음이다. ‘인위적으로, 억지로, 노력하는 자세로’라는 앙금이 남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마음으로부터 유쾌하고 만족하며 하는 일은 일과 자신이 하나가 되어 움직인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행동을 해도 모두 선인 것이다.
이번에 나의 스승이신 대산 김석진선생께서 20년 만에 주역강의의 수정본 『새로 쓴 대산주역강의』를 내셨다. 올해로 아흔 둘의 연세이시고, 또 올 초에는 안경이 부서지고 코뼈가 함몰되는 교통사고도 당했다. 그런데도 그동안 연구해서 깨친 것을 보충해 넣고, 또 좀 더 완성된 글로 정리해야겠다는 의지를 실천하신 것이다.
“ 『대산주역강의』는 출판된 지 20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동안 나의 주역에 대한 생각도 깨달은 바가 많다. 내가 아예 힘이 없다면 모르지만, 아직 밥을 먹고 움직일 만 하니, 새로이 깨달은 것도 넣고 또 변화한 세상에 맞게 강의내용을 보다 쉽게 정리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신 스승의 말씀이 귀에 선하다. 스승은 영원하다. 다만 스승의 뜻을 제대로 받들지 못한 못난 제자가 굴곡지게 할 뿐이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스승의 손발이 되어 제대로 수정하지 못한 마음이 부끄럽다.
그래서 역에서는 "성실하고 굳건하고 평생을 살고 나이 들어 두려운 마음으로 반성하면, 아무리 위태로운 인생이지만 허물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도를 반복하는 수양이다"라고 가르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