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재 / 성신여대 한문학과 교수
번지(樊遲)가 무우 아래에서 따라 놀다가 말하였다. “감히 덕을 높이고, 마음속의 사특함을 다스려 없애고, 의혹을 분별하는 것에 대해서 묻고자 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좋구나! 질문이여! 일을 먼저 하고 얻을 것을 뒤로 하는 것이 바로 덕을 높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신의 악함을 다스리고 남의 악함을 다스리지 않는 것이 마음속의 사특함을 다스려 없애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루아침의 분노로 그 자신을 잊어버려 화가 어버이에게까지 미치는 것이 의혹이 아니겠는가?”(樊遲從遊於舞雩之下러니 曰 敢問崇德 脩慝 辨惑하노이다. 子曰 善哉라 問이여. 先事後得이 非崇德與아. 攻其惡이요 無攻人之惡이 非脩慝與아. 一朝之忿으로 忘其身하여 以及其親이 非惑與아. 「顔淵」21)
'선사후득(先事後得)'은 공자의 제자이자 공자가 늘 타고 다니던 수레의 운전기사 역할을 자임하고 있던 ‘번지’가 공자에게 세 가지 일에 대하여 질문하는 광경에서 유래된 성어이다. 번지는 첫째, '숭덕(崇德, 덕을 높이는 일)', 둘째, '수특(修慝, 사악한 마음을 다스리는 일)', 셋째, '변혹(辨惑, 미혹됨을 변별하는 일)' 등이 무엇이냐고 질의하자, 공자는 아이러니하게도 번지의 성품에 빗대어 설명해준다. 역시 공자의 상대주의적 교육방법이 여실히 드러나 있는 장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논어집주』 등 각종 고전의 기록에 따르면, 공자의 제자 '번지'는 성품이 거칠고[麤] 비루[鄙]하였으며 이익을 곧잘 챙기는[近利] 인물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공자는 번지의 좋지 못한 성격 세 가지를 비유하여 그의 잘못됨을 바로잡아 주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실제, 공자가 답하신 세 가지의 내용은 모두 번지가 가지고 있는 '거친 성품', '비루하고 천박한 성품', '돈만 챙기는 이욕' 등의 세 가지에 접근하며, 번지의 잘못된 품성을 명료하게 지적해주셨다는 점에서 신기할 정도로 일치한다.
그런데 번지가 물어본 '숭덕', '수특', '변혹' 이 세 가지는 모두 인간의 사사로운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에 대한 소소한 질문에 지나지 않은 것이며, 좀 더 세밀히 말하자면 번지는 '나 자신에 대한 감정조절'이 잘 안 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공자는 첫째, '숭덕'이란 어려운 일을 정의롭게 먼저 마치고 이욕을 나중에 챙기는 것이라 정의하였다. 이것은 번지의 근리(近利)한 성품을 기롱(譏弄)한 것이다. 둘째, '수특'이란 자신의 악함을 다스리는 것‘이라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번지의 비루한 성격을 질책하신 것이다. 셋째, '변혹'이란 하루아침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부모님에게까지 그 대가[화]를 치르게 하였다면 이는 미혹됨이 뭔지조차 구분 못하는 것이라고 힐난(詰難)하셨는데, 이것은 번지의 거친 성격을 비판한 것이다.
사람이기에 이성보다 감성이 앞설 수 있다. 공자와 맹자에서 늘 강조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인의(仁義)가 있는데 하필 이익[利]을 먼저 하느냐"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이기도 하다. 흔히 우리는 일상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나서도 "누구는 더 많이 가져갔느니, 누구는 덜 가져갔느니" 운운하며 칭얼대기 일쑤다. 공자는 「옹야」편에서도 '선난후획(先難後獲)'이라 단언한다. "어려운 일을 먼저하고 이익은 나중에 따지자"는 말이다. 어진 사람이라면 어려운 일을 앞장서서 먼저 행하고, 과실(果實)은 뒤로 제쳐놓자는 의미다.
또 사람의 사특한 마음이 어디에서 생겨나는지를 보자. '특(慝)'은 '사특하다', '사악하다', '간사하다', '나쁘다'는 뜻을 가진 한자이다. 그런데 이 '특'이라는 글자를 분철해 보면 '마음속[心]'에 '숨어 있다[匿]'는 글자가 합쳐져 만들어진 것임을 볼 때, 선천적으로 착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이 그 마음 이면에 숨어있는 또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불선(不善)함이고 사악(邪惡)한 방향으로 흐를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끝으로 자신의 혈기왕성한 때를 절제하지 못하고 감정 또한 분노조절을 못하여 그 재앙이 부모에게까지 끼치는 것은 논어에서 가장 본질적으로 강조해오던 효(孝)에 위배되는 일이니, 백행(百行)의 근본으로부터 멀어진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