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재 / 성신여대 한문학과 교수
자하가 거보(莒父)라는 읍의 재상이 되어 정사에 대해서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빨리 하려고 하지 말고, 작은 이익을 보지 말아야 한다. 빨리 하려고 하면 통달하지 못하고, 작은 이익을 보면 큰 일을 이루지 못한다.”( 子夏爲莒父宰라 問政한대 子曰 無欲速하며 無見小利니 欲速則不達하고 見小利則大事不成이니라.「子路」17)
자하가 거보 땅의 읍장이 되었을 때, 공자에게 가서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을 때, 공자의 대답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공자의 대답은 늘 친근하고 쉬워 보이는 비근한 말씀이었다. 그런데도 이천오백여년이 지난 우리에게 심금을 울리는 무게감은 결코 떨쳐버리기 쉽지 않다. 공자는 “서두르지 말고, 작은 이익을 돌보지 말라”고 대답해주신다.
제자 ‘자하’는 누구인가? 성씨는 ‘복(卜)’이고 이름이 ‘상(商)’이며, ‘자하(子夏)’는 그의 장(字)이다. 동양의 문화도 서양과 비슷하여 ‘성씨’를 보면 그 가문의 직업을 알 수가 있다. 동서양의 문화에는 모두 성씨에 전통적 직업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서양의 경우, ‘스미스’는 대장간의 장인을, ‘테일러’는 재단사를, ‘베이컨’은 빵 굽는 직업을 상징하는 성씨이다. 그렇다면 ‘복’은 ‘점칠 복’이고 ‘상’은 ‘상인 상’이니, 자하는 점치는 무속인의 자제였고, 매복(賣卜)하며 생을 영위하는 자였음을 알 수 있다. 공자는 일찍이 “자불어괴력난신(子不語怪力亂神)”이라 하였으니, 매복과 같은 미신 행위에 대하여 엄격히 부정적 입장을 취했던 인물이다.
그런데 그 ‘점치는 무속인’의 자제가 자신의 제자로 들어왔으니, 한편으로는 감동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염려가 되었으리라. 그런데 자하는 예상보다 학업에 뛰어남을 보였고, 급기야 지방 ‘거보’라는 지역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니, 스승 공자는 그러한 자하가 실로 대견스러웠다. 그런 자하에게 정치에 관한 팁을 주셨으니, 그것은 성급히 대하지 말고, 눈앞의 작은 이익보다 멀리 내다보라는 충고였다. 어쩌면 역설적으로 볼 때, 자하는 작은 이익에도 세심했고 늘 서두르다 낭패 보기 일쑤였음을 짐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하에게 있었던 단점, ‘서두름’은 오늘날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를 연상시키곤 한다. 일제강점기와 민족전쟁을 경험한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경제건설을 이뤄야만 했고, 나에게는 미래가 없지만 자식에게 있을 미래를 위하여 자식 교육열에 박차를 가했다. 밥을 먹는 시간도 아까웠고, 다른 회사보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성과를 도출시켜야만 했으며, 그래서 새벽부터 건설현장으로 출근하여 아파트를 짓고 다리를 세웠다. 그러한 서두름의 문화가 겉보기에 뭔가를 이뤄낸 것처럼 보였으나, 한강의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며 소소한 재해에도 주택들이 무너지는 형국으로 치닫게 되었음을 우리는 분명히 보았다. ‘서두름’은 우리들에게 당장 눈앞의 이익을 가져다줄 수는 있겠지만, 그 ‘부실함’의 결과는 피해갈 수가 없다. 그 부실함은 결국 ‘손실’을 가져오게 되니, 거시적으로 보자면 결코 큰 이익을 얻을 수 없게 된다. 서두름과 작은 이익은 서로 독립된 개체가 아니다. 서두름은 곧 작은 이익만을 쫒는 어리석은 자의 모습이다.
조선시대 때, 퇴계와 율곡을 동시에 신하로 거느렸던 군주가 있었으니 바로 선조대왕이다. 선조는 즉위하자마자 여러 가지 폐단과 악습을 한꺼번에 고치고 싶었다. 이때 ‘고봉 기대승’이 “어느 시골의 백성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집을 고치려고 한다면, 반드시 훌륭한 재목(材木)부터 구하고, 그 다음에 훌륭한 기술을 가진 목수(木手)도 찾아내야 하며, 장마철이 아닌 좋은 시기를 기다려서 차근차근 고쳐나가야 할 것입니다”라고 비유하여 진언(進言)하였다.
선조대왕도 그러하다고 하지만, 요즘 정치인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저마다 처음부터 이루지도 못할 큰 뜻을 펴내며 호언장담해댄다. 그러나 결국 유종지미(有終之美)를 거두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늦어도 황소걸음이라는 옛말이 있듯이 꾸역꾸역 본인의 임무를 완수하여 목적지에 도달하는 꾸준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