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위기에 놓여 있을 때 정말 중요한 것은 명분일까, 실리일까? 병자호란은 싸울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조선에게 재앙이었다. 청군은 얼어붙은 압록강을 넘어 단숨에 서울로 내달렸고, 놀라 달아난 임금과 조정은 남한산성에 고립되었다. 산성 밖에서는 날마다 백성이 죽어 나갔다. 화친 말고는 살길이 없는데 죽어도 오랑캐에게 무릎 꿇을 수 없다는 척화파들 속에서 최명길은 홀로 화친의 무게를 짊어져야 했다.
하지만 그 결정이 나라를 구했고 백성을 살렸다.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최명길은 끝내 화친의 문을 연다. 그리고 모두가 그 문을 통해 살아남았다. 최명길은 과연 누구며,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닫혀 버리기 직전 역사의 문을 열었을까?
화친으로 나라를 구한 조선의 정치가 최명길. 그 삶을 오롯이 평전으로 엮었다. 최명길은 병자호란 때 청과 화친을 주장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모두가 오랑캐에게 항복할 수 없다고 외칠 때 홀로 화친을 이끌어 나라를 구했지만, 그 때문에 척화파 김상헌과 내내 비교되면서 혹독한 비난을 받았다.
나라를 팔아먹은 자, 진회보다 더한 간신, 삼한을 오랑캐로 만든 자, 소인, 매국노……. 이 책은 그런 통념 너머 진짜 최명길의 모습을 되살린다. 이제껏 알지 못했던 뛰어난 정치가요, 개혁가요, 외교관인 최명길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모두가 죽음을 외칠 때 찢겨진 삶을 묵묵히 주워 맞추는 올곧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하지만 꼭 알아야 할 한 사람, 또는 한 시대의 이야기, 『최명길 평전』.
전작 『역사평설 병자호란』에서 병자호란이라는 참혹한 전쟁의 역사를 깊이 있게 풀어 낸 저자 한명기가 7년 만에 그 질곡의 세월을 살았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동안 저자는 최명길과 관련된 숱한 사료와 논저, 중국과 일본 자료들까지 훑으며 방대한 자료들 속에서 한 인간의 이야기를 길어 냈다. 최명길 집안에 내려오는 문헌들을 구해 읽고, 직접 최명길의 후손을 만나 선대의 이야기를 듣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바탕 위에서 저자는 최명길의 어린 시절부터, 영향을 받았던 스승과 벗, 유연한 사상의 바탕이 된 양명학과의 인연, 인조반정의 공신이 되어 개혁 의지를 다지던 시절을 거쳐,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전쟁 앞에서 꿋꿋하게 나라와 백성을 지켰던 한 사람의 삶과 고뇌를 간결하고도 힘 있는 문체로 적어 나간다.
이제껏 우리가 알았던 최명길은 버려라. 그 모습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단순한 주화파를 넘어서 용기와 유연함, 희생정신과 책임감을 지녔던 최명길은 가장 전략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던 정치가이자, 헛된 명분보다는 나라와 백성을 먼저 생각한 외교관이며,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최선의 대안을 찾던 경세가였다.
냉철한 현실주의자이자 올바른 이상주의자였던 문제적 인물, 최명길. 그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저자 한명기는 17세기 초중반을 살았던 최명길이, 지금도 “역사로부터 수시로 호출되고는 한다”며 그 까닭으로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조건을 들었다. 동북아에서 강대국끼리 ‘힘의 교체’가 일어날 때마다 그 사이에 ‘끼어 있는’ 한반도가 싸움의 희생물이 되어 왔다는 것이다. 병자호란은 “그 가운데서도 기존 패권국(명)과 신흥 강국(청) 사이의 갈등과 대결이 조선에 미치는 비극적 파장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고 있지 않던가. 2017년 사드 문제를 비롯하여 2018년, 2019년을 지나며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더욱 가속화되었고, 수출 규제를 강화하며 대한민국을 적대국처럼 대하는 일본에, 독도에 전폭기를 보내 존재감을 과시하는 러시아도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미일과 중러, 강대국들의 힘겨루기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최명길은 바로 비슷한 혼돈의 시기에 “망국의 위기로 내몰렸던 조선을 극적으로 살려낸 지도자”였다. 그가 보여 준 용기와 유연함, 책임감과 실천력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더 나아가 새로운 해법을 우리에게 던져 준다. 다시 돌아오는 역사 속, 이 위기의 시대에 최명길을 읽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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