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육이는 그 수염을 꾸미도다(겉만 꾸민다). 상에 말하기를 ‘그 수염을 꾸밈’은 윗사람을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다(수염은 자신이 붙어 있는 턱이 움직이는 대로 움직일 뿐, 자주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비괘 육이)
잠깐만 보아도 장수하게 된다는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은 추분 때부터 이듬해 춘분 때까지 볼 수 있다. 쉽게 말해서 겨울에 보이는 별이다. 지금은 저녁 8시에 남중한다. 남극노인성을 줄여서 노인성이라 하고, 또 오래 살게 하는 별이라 해서 수성(壽星)이라고도 한다.
‘남극’이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제주도 서귀포 남단에서나 관찰되는 보기 어려운 남쪽별이지만, 백두산이나 설악산 등 높은 산에 올라가면 볼 수 있다. 물론 높은 산일수록 날씨가 변화막측해서 맑을 때가 별로 없고, 또 겨울에 높은 산에 올라가 관측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노인성을 보기만 해도 장수한다는 설이 널리 유행되어서, 일반인은 물론이고 특히 할 일이 많은 임금님이나 부귀를 더 누리고 싶은 임금님은 노인성 보기를 소원하였다. 세종대왕도 노인성에 관심이 많았다.
세종 7년(1424년) 5월 7일 밤에 임금이 친히 첨성대에 가서 규관(窺管)을 들여다 보면서 “노인성이 어디에 있는가?” 하니, 윤사웅 등이 남쪽 하늘을 가리키며 “남극 노인성이 저기에 있사온데 시력이 모자라 보이지 않습니다. 제주도 한라산의 남단 높은 곳이나 서북쪽의 백두산・설한점(雪漢岾) 상봉에 올라가면 보인다 하오나, 살펴볼 길이 없습니다.” 하였다. “신하가 임금을 위해 대신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러니 대신 가서 보고 오너라.”하며, 그 이튿날로 윤사웅을 제주도로 가게 하고, 이무림과 최천구는 백두산과 설한점으로 나누어 보내면서, 금년 추분부터 내년 춘분까지 남극 노인성을 보고오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들 일관 셋은 날씨가 좋지 않아 보지 못하였다고 하며 이듬해 5월에 모두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4년 후 정월에 이들 세 사람에게 다시 보고 보라고 하였다. 열달 쯤 관찰하다가 두 사람은 일기가 불순해서 못 보았다고 하였지만, 윤사웅은 12월까지 기다렸더니 날씨가 좋은 날이 있어서 노인성을 보았다고 하면서, 노인성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그려서 서울로 돌아왔다. 세종이 기뻐한 것은 물론이었다. 노인성 그림을 보고 또 보면서, 윤사웅이 근무하는 첨성대까지 직접 가서 묻고 또 묻기를 여러번 한 뒤에 곧바로 승진을 시켜주었다.
남극노인성을 보았다고 신이 났던 세종대왕도, 그로부터 20년 후에 53세의 나이로 승하한 것을 보면, 윤사웅이 세종의 마음이나 편하게 하고자 거짓 보고를 했는지도 모른다. 혹은 승하하기 3개월 전에 혜성이 뜬 것을 불길해 하다가 마음의 병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역에서는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비위를 맞추기 마련이니, 윗사람이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다.
남극노인성을 다스리는 노인성 할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