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철 (대유학당 대표)
구사는 좋아도 도피하는 것이니, 군자는 길하고 소인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상에 말하기를 군자는 좋아도 도피하고, 소인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遯卦 九四]
한나라 무제시대에 정승을 지낸 전분은 황제보다도 더 부귀를 누린 것으로 유명하다. 경제의 황후인 왕황후의 동복 동생으로 무제의 외삼촌이 된다. 무제에겐 성씨 다른 외삼촌이 셋(왕신, 전분, 전승)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전분은 언변이 뛰어나고 사람을 모으는 재주가 있었으므로 무제의 전적인 신임을 받았다.
전분은 외조카인 무제에 의해 무안후로 봉해지고 승상이 되었다. 전분은 왕태후와 무제의 전적 신임이라는 배경을 믿고 교만하게 행동하였다. 또 사치를 좋아해서 장안에서 제일 훌륭한 저택을 짓고, 전원을 설치하여 제일 비옥한 것을 자랑하며, 지방의 특산품과 보물을 사들이는 행렬이 길을 가득 메워서 쉬는 날이 없었다고 한다. 더구나 그 권세에 아부하는 뇌물의 수레가 사방에서 몰려들어서, 집안 가득한 황금과 보배, 그리고 아름다운 여인과 특이한 짐승, 흥을 돋우는 소리꾼과 악사가 항상 흥청였다.
항상 조회에 참석할 때마다 무제를 독점하며 그의 유창한 언변으로 할말을 다했고, 사람을 천거하면 그가 누구라도 곧바로 이천석의 고관으로 임명해 주니, 사람들이 모두 그를 두려워하고 또 그를 통해서 벼슬을 하고자 해서 권세가 무제보다도 더 커졌다. 뇌물을 받아서 관리를 임명하기를 매일의 일과로 삼았는데, 황제에게 청탁하는 것보다 전분에게 청탁하는 것이 더 확실하다는 소문이 돌았다. 결국 황제가 “그대는 관리 임명이 끝났는가? 아직 안 끝났는가? 나도 그 틈을 내서 관리를 임명하고자 한다.”고 말할 정도가 되었다.
전분의 위세가 점점 커지면서 국가의 관청 알기를 자신의 집 개만도 여기지 않게 되었다. 장안에서 제일 크고 좋은 저택을 지었지만 워낙에 많이 밀려드는 뇌물을 저장할 창고가 모자라게 되었다. 창고를 늘리자니 주변이 모두 관공서라서 늘클 수가 없었다. 생각다 못한 그가 황제를 찾아가서 “관청 중에 기계를 만드는 고공이 쓸데 없이 넓으니, 이를 줄여서 소신의 창고를 만들고자 합니다.”고 아뢰자, 그의 부탁을 한번도 거절하지 않던 무제가 대노하면서 “그대는 어찌하여 아예 무기고를 취하지 않는가?”라고 하였다. 아에 황제가 되어서 맘대로 하라는 말이다. 그 말엔 하늘 높은줄 모르고 설쳐대던 전분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때 전분이 자신의 분수를 확실히 뉘우쳤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전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무제에게 후손이 없으니 다음은 회남왕의 차례라고 유혹하며 회남왕으로부터 뇌물을 받았고, 젊은시절 부모처럼 모시던 위기후를 모욕을 주다가 죽음으로 몰아넣기도 하였다. 결국 위기후가 꿈에 나타나 원망을 하는 바람에 병이 나서 죽고 말았는데, 나중에 무제 역시 무안후가 회남왕으로부터 황제자리를 놓고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만약 전분이 살아있었다면 구족을 멸하는 형벌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易에서는 ‘한창 좋다고 생각할 때 분수를 알아서 절제하며 물러나는 것이 좋다.’고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