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특별기고 – 기장유림의 활동을 찾아서⑤경주김씨 이현사

이현사 전경과 현판 맑은 날씨를 벗삼아 음력 4월 첫날을 맞이하여 문묘에 사월삭일분향의 예를 올린 후 기장의 유서깊은 명문가인 월성김씨(月城 : 慶州金氏)의 사당인 이현사(二賢祠)를 찾았다. 이현사는 기장군 정관읍 용수리 산막마을 안쪽 산기슭 양지바른 곳에 있다. 예전에는 마을에서 떨어져 있어 쉽게 보였으나 지금은 주위의 환경이 공단과 상업시설 등이 들어오

김두호 기자 2020. 6. 8.

 

 

 

 

 

이현사 전경과 현판

 


 

맑은 날씨를 벗삼아 음력 4월 첫날을 맞이하여 문묘에 사월삭일분향의 예를 올린 후 기장의 유서깊은 명문가인 월성김씨(月城 : 慶州金氏)의 사당인 이현사(二賢祠)를 찾았다.

 

 

이현사는 기장군 정관읍 용수리 산막마을 안쪽 산기슭 양지바른 곳에 있다. 예전에는 마을에서 떨어져 있어 쉽게 보였으나 지금은 주위의 환경이 공단과 상업시설 등이 들어오는 바람에 사당을 찾아야 될 정도로 금방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현사는 운서 김윤룡(雲瑞 金潤龍) 공(公)과 오정 김방한(鰲亭 金邦翰) 공 두 분의 신위를 모셔 제사(祭祀)하고 있다.

 

김윤룡 공의 자는 운서(雲瑞)이며 호는 도정(陶亭)이다. 본관(本貫)은 월성(月城=慶州)이고 신라 경순왕 27대손(新羅敬順王二十七代孫)이다. 임란 시 다대포 군절제사겸부산진관(多大浦軍節制使兼釜山鎭管)을 맡아 많은 공을 세우기도 했다.

 

임란 후 선무원종공신정이등(宣武原從功臣正二等)에 훈록되었으며 자헌대부병조판서겸지의금부사(資憲大夫兵曹判書兼知義禁府事)에 추증되었다. 김윤룡 공의 묘소는 정관면 병산리 박달산(朴達山)에 있다.

 

김방한 공의 자는 공점(公漸), 호는 오정(鰲亭)이다. 숙종 2년에 사마시(司馬試)에 입격(入格)하였으나 향리에 은거해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몰두했다. 공은 숙종14년 1675년 주역언해(周易諺解) 3권을 지어 나라에 올렸으며 이때 숙종 임금은 공에게 비답(批答)을 내렸다고 한다.

 


 

 

 

교지

 


 

한편 임란 후 기장현이 선조 32년에 폐지된 후 18년 만에 복현될 때 상북면, 중북면, 하북면 3면이 포함되지 않아 이를 안타까이 여겨 효종 4년(1653) 강유후(姜裕後) 기장현감이 상소문(上疏文)을 올렸는데 이때 이 상소문[乞下未面還屬疏]을 오정 공이 적고 강유후 현감이 올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상소문은 원문이 국립중앙도서관과 서울대학교규장각에 보존되어 있다. 김방한 공의 대단한 문장력과 문필가로서의 흔적을 알 수 있다.

 


 

 

김방한 공의 호패

 


 

해마다 우리 기장에는 차성문화제(車城文化祭)가 10월 상달에 행해지고 있으며 이 축제 기간 중 울산군에 복속된 기장의 땅을 찾기 위해 상소를 올렸던 360여 년 전 오정 공을 그리워하며 그 시대적 상황을 한 편의 단막극(單幕劇)으로 재현하고 있다. 그 상소문을 불초가 2회 동안 감히 오정 선생이 되어 상소를 올리는 영광도 누렸다.

 

 

1646년(병술년) 기장향교 향안(鄕案)에는 종한(宗翰), 지한(之翰), 동한(東翰, 방한(邦翰) 네 형제가 등재되어 있다. 이때 오정 공의 년(年)이 11세였다.

 

우리 기장에 이렇게 많은 훌륭한 선대들이 계신다는 게 참으로 자랑이 아닐 수 없음에 새삼 돈수재배(頓首再拜)의 예가 저절로 생겨남은 인지상정(人之常情) 아니겠는가?

 

이현사 경임록(二賢祠經任錄)에는 1980년 경신년에 김기오(金琦五) 유림이 단장으로 시작하여 1981년 신재화(辛在華) 단장. 고 안영표(安榮杓) 기장향교 원임 전교 등이 지금까지 대를 이어 향사(享祀)하며 선대를 모심에 정성을 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