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철(대유학당 대표)
구삼은 그 덕이 항구하지 않기 때문에 혹 부끄러움으로 이어질 것이다. 고집하면 인색하리라. 상에 말하기를 그 덕을 항구하게 못하니 용납될 수가 없다.(항괘 구삼효)
“위열왕이 즉위한 지 23년(B.C.403)이다. 처음으로 진(晉)나라의 대부 위사(魏斯) 조적(趙籍) 한건(韓虔)을 임명해서 제후로 삼았다.” 송나라 사마광이 쓴 자치통감의 시작 글이다. ‘처음으로’라고 한 것은 유사 이래 없었던 좋지 않은 선례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당시 주나라는 이름만 왕이라고 높여 불렀을 뿐, 이미 제후들을 통제할 능력을 상실했다. 그런데도 제후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한 것은, 존왕양이라는 명분하에 제후들이 주나라를 받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후국인 진나라에서 쿠데타가 일어나고, 그것을 합법화해달라는 쿠데타 주역들의 뇌물과 회유를 받고 인정해 준 것이다. 위열왕이 다른 제후국들의 힘을 빌어서라도, 쿠데타를 일으킨 위사, 조적, 한건을 정벌해서 죄를 주어야 했는데, 스스로의 권리이자 의무를 저버린 것이다. 그 결과 춘추시대에서 누구라도 힘만 있으면 하극상이 합법화되는 전국시대로 바뀌게 된다.
쿠데타를 일으킨 세 사람 중의 하나가 위사인데, 위열왕에 의해 제후로 임명되어서 훗날 ‘문후’로 시호를 쓰게 된다. 문후가 공자의 제자인 복자하에게 경서를 공부하고, 저명한 학자인 전자방을 스승으로 모시니, 어진 선비들이 모여들면서 빠른 시일에 강대국이 되었다.
문후의 세자의 이름이 ‘격’이다. 그가 수레를 타고 가다가 전자방田子方을 만났다. 부왕이 스승으로 모시는 사람인지라, 수레에서 얼른 내려 절을 하였다. 그런데도 전자방은 수레에서 내리지 않고 그 인사를 받았다. 화가 난 격이 전자방에게 따졌다. “부유하고 귀한 사람이 남에게 교만합니까?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 남에게 교만합니까?” 그 말은 자신이 일국의 세자인데도 수레에서 내려 최상의 예를 갖추었는데, 가진 것도 없는 너 전자방이 그렇게 건방질 수가 있냐는 뜻이다.
그 말에 전자방이 여유를 부리며 대답하였다. “가난하고 천한 자가 남에게 교만을 부릴 수 있는 것이지, 부유하고 귀한 자가 어찌 남에게 교만하겠습니까? 임금이 남에게 교만하면 그 나라를 잃게 되고, 대부가 남에게 교만하면 그 가문을 잃게 됩니다. 나라를 소유한 임금이 나라를 잃으려고 교만을 부린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고, 가문을 소유한 자가 가문을 망하게 하려고 교만을 부린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저 같은 선비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입니다. 저의 충언이나 계책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저의 행동이 못마땅하다고 여겨지면 곧바로 신을 신고 떠날 뿐이지요. 어디를 가더라도 가난하고 천함이야 얻지 못하겠습니까?” 그말을 들은 세자가 화를 낸 것을 사과하였다.
이 사람이 문후의 뒤를 이은 무후이다. 임금이 되어서도, 전자방에게 예를 갖췄다가 곧바로 화를 낸 조급한 성격을 고치지 못했으므로 문후 때의 영광과 번영을 퇴색시켰다. 명장 오기를 등용해서 주변국의 땅을 많이 취했으나, 결국은 오기를 의심하고 시기해서 초나라로 망명가게 하였다. 또 한나라 조나라와 연합해서 자신이 주군으로 모셨던 진(晉)나라를 완전히 멸망시키고 땅을 나눠가졌다. 그 결과 진나라의 제사를 끊어지게 하여서 다른 제후국들의 인심을 잃었다. 큰 인물이 못되어서 큰 정치를 못한 것이다.
그래서 역에서는 “믿고 쓰는 것을 일정하게 하고 소신있게 하지 않으면 부끄러운 일을 당한다”고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