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숭고(崇高)함이 부귀(富貴)보다 더 큰 것이 없다.(계사전 상11장)
제나라 왕족인 맹상군은 사람을 잘 사귀고 대접했다. 제후와 빈객은 물론이고, 죄를 짓고 도망친 사람도 마다하지 않고 만났다. 그들 모두를 귀천의 구별없이 자신과 동등하게 먹고 마시게 했다. 손님과 앉아 이야기 할 때면 병풍 뒤에 사람을 두어 부모가 사는 곳을 기록하게 하고, 손님이 가면 사람을 시켜 그 부모를 방문하고 예물을 주었다. 그래서인지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자 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 소문을 듣고 진나라 왕이 맹상군을 초청해서 정승으로 삼고자 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맹상군은 제나라 왕족입니다. 그런 사람이 진나라 정승이 되면, 제나라에 이익되는 일을 먼저 하고 진나라의 일을 뒤에 할 것이니, 진나라가 위태해질 것입니다” 하고 이간질을 했다.
그말을 들은 진나라 왕이 맹상군을 감옥에 가두었다. 내편이 되지 않을 거라면, 차라리 죽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맹상군이 진나라 왕의 애첩에게 풀어줄 것을 청탁하니, 그 애첩이 맹상군의 호백구를 원한다고 하였다. 호백구는 여우의 겨드랑이 밑의 흰 털가죽으로 만든 옷이다. 특히 맹상군이 가지고 있던 호백구는 값이 1,000금이나 나가는 천하에 둘도 없는 보물이었다. 하지만 그 보물은 진나라 왕에게 예물로 바쳤기 때문에 줄 수가 없었다.
맹상군을 따라온 식객 중에서 도둑질을 잘하는 자가 있어서, 진나라 창고 속에 들어가 호백구를 훔쳤다. 그것을 애첩에게 주니, 애첩이 침실에서 진나라 왕을 설득해서 맹상군을 풀어주었다. 이튿날 잠에서 깬 왕이 후회하면서 다시 맹상군을 잡아오라고 하였다.
맹상군이 국경의 관문에 이르니 아직 동이 트기 전의 밤중이었다. 닭이 울어야 관문을 열어준다고 하였다. 아직 닭이 울기는 이른 새벽이었고 추격병들이 곧 닥칠 것 같았다. 그런데 식객 중에 어릿광대가 있어서 닭울음 소리를 흉내내며 우니, 진짜 닭들도 모두 함께 울어서 관문을 벗어나 제나라로 돌아오게 되었다.
호백구를 훔쳐온 좀도둑과 닭울음소리를 내어 함곡관을 빠져나올 수 있게 한 어릿광대를 빈객의 일원으로 삼았을 때, 다른 빈객들이 의아해하며 함께 일원이 된 것을 수치스러워 하였지만, 결국 이 두 사람에 의해 목숨을 건지게 된 것이다. 누구나 다 쓸모가 있고 쓰일 시기가 있다는 맹상군의 안목이 빛을 본 것이다.
이렇게 남녀노소 귀천을 가리지 않고 맹상군을 따르는 식객이 많았으나, 그가 제나라왕에게 내침을 당했을 때는 그렇게 충성을 맹세했던 많은 식객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 버렸다. 얼마 있다가 다시 제나라의 정승으로 복직되자 그 식객들이 다시 돌아왔다.
맹상군이 그 의리 없는 식객들을 비난하자, 풍환이 “그들의 행동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부유하고 귀하면 모여드는 사람이 많고, 가난하고 천하면 모여드는 사람이 적어집니다. 부귀한 사람에게는 얻을 것이 많고, 빈천한 사람에게는 얻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하면서 맹상군의 잘못을 깨우쳐준다.
사람이면 누구나 숭고하게 여기고 갖고 싶어 하는 것이 부귀이다. 맹상군처럼 부귀한 사람이 의리를 따져가며 공정하고 옳게 부귀를 베푸는 것이고, 좀도둑과 어릿광대 같이 빈천한 사람은 부귀의 한쪽 귀퉁이라도 얻어가지려고 자기의 재주와 열정을 다 바친 것 뿐이라는 것이다. 맹상군이 구심점이 아니라 부귀가 구심점이었다. 그래서 역에서는 ‘숭고한 것이 부귀보다 큰 것이 없다’고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