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수 / 전북대 철학과 교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익한 것이 세 가지 좋아함이고, 손해되는 것이 세 가지 좋아함이니, 예악의 절차를 분별하기 좋아하며, 사람의 선함을 말하기 좋아하며, 어진 벗이 많은 것을 좋아하면 유익하고, 교만과 방자함을 좋아하며, 편안히 노는 것을 좋아하며, 향락에 빠지는 것을 좋아하면 손해된다.”(孔子曰 益者三樂이요 損者三樂니 樂節禮樂하며 樂道人之善하며 樂多賢友면 益矣오 樂驕樂하며 樂佚遊하며 樂宴樂이면 損矣니라.「季氏」5)
공자는 군자에 대해 “도(道)에 뜻을 두며, 덕(德)에 근거하며, 인(仁)에 의하며, 예(藝)에 노닌다(「술이」6)”라고 말한다. 이것은 군자의 학문과정을 설명하는 구절이다. 군자는 우주의 진리를 터득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을 ‘도(道)에 뜻을 둔다’고 말한다. 진리 터득한 후에는 자연스럽게 인간의 선한 본성을 깨닫고 ‘본성을 발휘’한다. 이것을 덕(德)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선한 본성을 발휘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내 몸처럼 사랑’하게 된다. 이것을 인(仁)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사랑을 갖춘 사람은 예악사어서수(禮樂射御書數: 예절, 음악, 활쏘기, 말타기, 글쓰기, 셈하기)를 비롯하여 모든 것을 즐길 줄 아는데, 이것을 예(藝)라고 말한다.
한편, 공자는 “시(詩)에서 흥기되며, 예(禮)에서 서며, 악(樂)에서 완성된다(「태백」8)”라고 말한다. 이것은 학문의 보편적인 과정을 설명하는 구절이다. 학문에 뜻을 둔 사람은 애초에 순수한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의 순수한 감정은 시(詩)에 들어 있다. 따라서 학문의 초기에 시를 배우면서 인간의 감정을 순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학문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예(禮)를 익혀야 한다. 예란, 일상생활의 모든 행동규범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예를 익힌다는 것은 예에 근거한 생활을 한다는 뜻이다. 인간의 순수한 감정과 사회적 규범을 갖춘 후에는 이것을 하나로 만드는 음악을 배워야 한다. 음악은 음계의 높고 낮음, 템포의 빠르고 느림, 소리의 크고 작음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조화를 통해 다양한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여유가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악(樂)을 통해 완성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있다. 그러나 공자는 좋아하는 것에도 유익한 것과 해로운 것이 있다고 말한다. 과연 좋아하는 것이 유익한 경우란 무엇일까?
첫째, ‘예악(禮樂)을 분별하며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기본적으로 학문을 즐기는 사람이다. 따라서 학문을 통해 무궁한 발전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유익할 수밖에 없다. 증자가 “군자는 글로써 벗을 모으고, 벗으로써 인(仁)을 돕는다(「안연」24)”고 말한 것도 이 점을 강조한 것이다.
둘째, ‘다른 사람의 선함을 말하기 좋아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타인의 장점은 드러내주고 단점은 감추어 주는 사람이다. 따라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을 수밖에 없다. 공자가 “군자는 남의 아름다운 점을 이루어 주고, 남의 나쁜 점을 이루어 주지 않지만, 소인은 이와 반대이다(「안연」16)”고 말한 것도 이러한 유형의 사람을 설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셋째, ‘배울 점이 많은 친구를 사귀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친구는 나의 부족함을 일깨워주고, 덮어주며, 평생 내게 힘을 주는 존재이다. 따라서 내가 가지지 못한 훌륭한 인격이나 재능을 가진 친구를 많이 사귄다는 것은 내 인생의 큰 자산을 미리 확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특히 좋은 충고를 통해 항상 나를 일깨워주는 친구가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반면 손해가 되는 세 가지 좋아함이란 과연 무엇인가? 첫째, ‘교만과 방자함을 좋아하는 것’이다. 매사에 거만하고 제 마음대로 행동하면 주위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따라서 항상 분쟁과 다툼에 휘말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유익할 리가 없다. 둘째, ‘편안히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편히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게을러지고 거칠어지기 십상이다. 이런 사람이 성공한 예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셋째, ‘향락에 빠지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향락이란 이기적인 마음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자신만의 즐거움을 쫓는 것은 공동의 이익을 저해할 가능성이 많다. 그러므로 개인에게 유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도 손해를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 이 세 가지는 절대 좋아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