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四字論語> ‘子路問津’ 자로가 나루터를 묻다

진성수 / 전북대 철학과 교수 장저와 걸닉이 짝을 지어 밭을 가는데 공자께서 지나시다가 자로를 시켜 나루터를 묻게 하시었다. 장저가 말하기를 “수레 고삐를 잡고 있는 분이 누구인가?”라고 하자, 자로가 “공구이십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가 노나라의 공구인가?”라고 다시 묻자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니, “그 분은 나루터를 알 것이다”라고 하였다. 걸닉에게

진성수 2021. 3. 10.

 

진성수 / 전북대 철학과 교수

 


 

장저와 걸닉이 짝을 지어 밭을 가는데 공자께서 지나시다가 자로를 시켜 나루터를 묻게 하시었다. 장저가 말하기를 “수레 고삐를 잡고 있는 분이 누구인가?”라고 하자, 자로가 “공구이십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가 노나라의 공구인가?”라고 다시 묻자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니, “그 분은 나루터를 알 것이다”라고 하였다. 걸닉에게 물으니, 걸닉이 말하기를 “당신은 누구인가?”라고 하자 자로는 “중유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가 “그대가 바로 노나라 공구의 무리인가?”라고 묻자,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도도하게 흐르는 것은 천하가 모두 그러한데, 누구와 더불어 바꾸겠는가? 또 그대는 사람을 피하는 선비를 따르는 것보다는 세상을 피하는 선비를 따르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라고 하고는 씨앗 덮는 일을 그치지 않았다. 자로가 돌아와서 말씀드리니, 공자께서 한동안 겸연쩍은 듯이 계시다가 말씀하셨다. “조수와 더불어 무리 지어 살 수는 없으니, 내가 이 사람의 무리와 더불어 살지 않고 누구와 더불어 살겠는가? 천하에 도가 있었다면 내가 더불어 바꾸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長沮桀溺이 耦而耕이어늘 孔子過之하실새 使子路로 問津焉하신대 長沮曰 夫執輿者爲誰오 子路曰 爲孔丘시니라 曰是魯孔丘與아 曰是也시니라 曰是知津矣니라 問於桀溺한대 桀溺이 曰子爲誰오 曰爲仲由로라 曰是魯孔丘之徒與아 對曰然하다 曰滔滔者 天下皆是也니 而誰以易之리오 且而與其從辟人之士也론 豈若從辟世之士哉리오하고 耰而不輟하더라 子路行하야 以告한대 夫子憮然曰 鳥獸는 不可與同群이니 吾非斯人之徒를 與오 而誰與리오 天下가 有道면 丘不與易也니라. 「微子」6)

 

공자가 도덕정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천하를 유세(遊說)했던 지역은 대체로 하남성(河南省)을 중심으로 한 대륙의 중앙부였다. 이 지역은 넓은 평원이라는 뜻으로 중원(中原)이라고 말한다. 육지의 바다라고 할 만한 중원을 방랑하던 공자 일행은 결국 한 명의 훌륭한 제후도 만나지 못했다. 당시 공자와 제자들은 10여 년의 방랑길에 몹시 지쳐 있었다. 이때 공자 일행은 앞을 가로지르는 강을 만났다. 그런데 나루터가 보이지 않았다. 마침 두 농부가 밭을 갈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공자는 자로를 보내 나루터를 묻게 하고는 자신이 대신 말고삐를 잡고 있었다.

 

두 농부의 이름은 장저(長沮)와 걸닉(桀溺)이었다. 자로는 먼저 장저에게 물었다. 그런데 장저는 말고삐를 잡고 있는 사람이 공자인지 묻고, 공자가 알고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자로는 걸닉에게도 물었다. 걸닉은 “세상은 도도하게 흐르는 물결 같은데, 그 흐름을 어떻게 바꿀 수 있겠는가? 그대는 사람을 가려서 만나는 스승을 따르지 말고 우리처럼 세상을 등지며 살지 않겠는가?”라고 말하고, 결국 나루터는 알려주지 않았다. 자로가 돌아와 있었던 일을 공자에게 전했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고 어떻게 세상을 등지고 산속에 숨어 살겠는가? 천하에 도(道)가 있었다면 나도 바꾸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장저와 걸닉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공자가 초(楚)나라 소왕(昭王)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남쪽으로 가기 얼마 전 패망한 채(蔡)나라의 유민(遺民) 혹은 숨어 사는 은자(隱者)라고 추측할 뿐이다. 이 때문에 장저란 이름은 ‘키가 크고 진흙에 젖어 있는 모습’을 보고 붙인 것이며, 걸닉 역시 ‘훌륭한 사람이 흙투성이가 되어 있는 모습’을 형용한 말이라고도 한다.

 

이밖에 『논어』에는 공자가 은자를 두 번 더 만난 일이 기록되어 있다. 첫 번째가 초(楚)나라의 미친 사람 접여(接輿)이다. 접여는 ‘공자의 수레에 접했다’는 것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접여는 “봉황이여! 봉황이여! 그만두시오! 그만두시오! 오늘날 정치에 종사하는 자들은 위험하오!(「微子」5)”라고 말한 뒤 사라진다. 두 번째는 뒤쳐져 가던 자로가 늙은 농부를 만나 앞서간 공자 일행에 대해 물었다. 늙은 농부는 “부지런히 일하지 않고 오곡(五穀)도 분별하지 못하는 공자가 선생의 자격이 있는가?(「微子」7)”라고 말하며, 들고 있던 지팡이를 꽂아놓고 김을 매었다. 자로가 옆에 공손하게 서 있자, 늙은 농부는 자로를 자기 집에서 하룻밤 묵게 하고 닭과 기장밥을 대접하며 두 아들을 인사시켰다. 이튿날 자로는 공자를 만나 전 날의 일을 말했다. 공자가 ‘그는 은자이다’라고 말하고 자로에게 다시 만나보라고 했으나, 도착해 보니 떠난 후였다.

 

장저와 걸닉, 접여와 늙은 농부가 은둔한 것은 천하에 도(道)가 없기 때문이었다. 공자 역시 천하에 도가 없어서 10여 년의 유세를 했다. 천하에 도가 펼쳐지지 않아 세상을 버린 사람이 은자라면, 천하에 도가 없기 때문에 천하주유를 한 사람이 공자라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은자들은 자신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 ‘세상을 도피하는’ 삶을 선택했다. 그러나 공자는 천하에 도를 실천하기 위해 ‘세상에 뛰어 들어 가혹한 운명에 맞섰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 공자의 위대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