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易으로 보는 세상 217불로소득을 거부한 사람들

건원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초구는 본래 밟아나갈 것을 이행해 나가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상에 말하기를 ‘본래 밟아나갈 것을 이행해 나감’은 홀로 원하는 것을 행하는 것이다.(리괘 초구) 만경 노씨의 시조 노극청(盧克淸)이 일정한 직책이 없는 산관이었을 때의 일이다. 하급관리로서 직책이 주어지면 수입이 생겼지만, 직책이 없을 때는 수입이 없었으므로 가난하

윤상철 2021. 5. 13.

 

건원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초구는 본래 밟아나갈 것을 이행해 나가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상에 말하기를 ‘본래 밟아나갈 것을 이행해 나감’은 홀로 원하는 것을 행하는 것이다.(리괘 초구)

 

만경 노씨의 시조 노극청(盧克淸)이 일정한 직책이 없는 산관이었을 때의 일이다. 하급관리로서 직책이 주어지면 수입이 생겼지만, 직책이 없을 때는 수입이 없었으므로 가난하게 살았다. 오랫동안 직책을 맡지 못한데다 평소 청렴하게 살았으므로 경제사정이 말이 아니었다. 살던 집이라도 팔아서 가사에 보태고자 하였지만 여의치 않았다.

 

마침 지방에 일이 있어서 출장을 갔는데, 그동안 그의 아내가 현덕수(玄德守)라는 사람에게 집을 팔았다. 현덕수는 조위총의 난을 효율적으로 대처한 공으로 안남도호부 부사를 거쳐 상서부의 도관낭중으로 특채되었기에 서울에 집이 필요했다. 더구나 그 역시 강직하고 청렴하게 살았으므로 노극청의 작고 싼 집이 적격이었다.

 

출장 갔던 노극청이 돌아와서 집이 은 12근에 팔렸다는 말을 듣고, 너무 비싸게 팔았으니 3근을 돌려주어야겠다고 했다. 그 길로 현덕수에게 찾아가서는 “예전에 이 집을 살 때, 은 9근을 주고 샀는데, 몇 년을 살면서도 더 좋게 고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근을 더 받아 12근에 판다는 것은 경우가 아니므로, 은 3근을 돌려드리겠습니다.”

 

현덕수도 강직한 것으로는 남에게 뒤지지 않는 사람인지라, “어째서 당신 혼자만 경우를 지키고, 나는 그렇지 못 하게 하시는가?” 라고 하면서 받기를 거절하였다. 그러자 노극청이 “내가 이때껏 살면서 의리에 어긋난 일은 하지 않았는데, 어찌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재물을 탐내는 짓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만일 낭중 어른께서 끝내 거절을 하고 받지 않으신다면, 은 12근을 모두 돌려드릴 터이니, 다시 내 집을 돌려주십시오.” 하였다.

 

자기보다 나이도 어리고 계급도 낮은 사람이지만, 그 생각이 자기가 지켜온 평소 신념과 다르지 않고, 또 가난한 자기에게는 그 집이 형편에 딱 맞는 집인지라 다시 집을 돌려주기도 어려웠다. 결국 할 수 없이 은 3근을 돌려받았다. 하지만 은 3근은 이미 정당한 값으로 지불했던 돈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주머니에 다시 넣고 쓸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내가 어찌 저 사람보다 못한 사람이 될 수가 있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그 은을 자기가 다니던 사찰에 바치며 좋은데 써 달라고 하였다.

 

당시는 무신정권에 의해서 꼭두각시로 세워진 명종이 다스리던 시기이다. 이의방,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 최충헌 등이 차례로 집권하며 사회질서를 마구 무너뜨림으로써, 권력이나 잇속이 우선하고, 크고 작은 반란과 농민봉기가 계속 발생했던 때이다.

 

당시 사람들이 모두 “말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 시대에 이러한 사람이 있었단 말인가!” 감탄하였다. 어찌 당시 사람만 놀랐겠는가? 내 것 남의 것 가리지 않고 이익을 추구하며, 지은 지 40년이 넘어 수돗물도 제대로 안 나오는 아파트를 20배~30배 더 비싸게 팔면서, “불로소득은 내가 참 좋아하는 소득이지.”하고 말하는 지금 시대 사람에게는 이해도 안 되는 거래였을 것이다.

 

하지만 산관출신 노극청이 만경군에 봉해지고 후손이 크게 잘 되었으며, 변방출신이라 과거도 보지 못했던 현덕수도 병부상서까지 승진했으니, 난세에도 홀로 명예와 분수를 소중히 지킨 복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역에서는 ‘계급이 낮고 가난하더라도, 작은 이익에 상관없이 소신껏 자기의 분수대로 살아가면 잘못이 없는 인생을 살 수 있다.’라고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