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오는 크게 어려움에 벗이 오도다. 상에 말하기를 ‘크게 어려움에 벗이 옴’은 중정한 절도(節度)를 지켜가기 때문이다.[蹇卦 九五]
우리나라 말에 ‘개’자가 들어가면 가치가 떨어지거나 흔한 것을 뜻한다. 개나리, 개떡, 개꿈, 개머루 등등이 그 예이고, 또 좋지 않은 정도가 심할 때도 ‘개’자가 쓰인다. 개망신, 개망나니, 개판, 등이 그런 예이다. 왜 그럴까? 사람 옆에 붙어서 사람과 같이 정을 주고받으며 살지만 사람보다 못하고, 유사시에 매매 또는 식용으로 쓸 수 있는 가축이기 때문이다. 개를 예뻐하며 기르지만 사람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개만도 못한 인간, 개도 닷새가 되면 주인을 안다’고 해서 개의 의리와 충성심을 높이 사기는 했지만, 그래도 개는 결코 사람이 될 수 없는 동물이다.
얼마 전에 처갓집에 갔다가 ‘개망신’을 당한 기억이 난다. 막 집 앞에 이르러 초인종을 누르려고 하는데, 그때 마침 옆집 아줌마가 조그만 개를 안고 서있었다. 그런데 그 개가 우리 가족을 보고 짖어대는 게 아닌가! 그냥 짖는 것이 아니라 텃세를 부리듯이 요란을 떨자, 그 아줌마가 민망해 하며 개를 달랬다. 그런데 그 말이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괜찮아, 괜찮아. 네 오빠구 언니잖아…” 졸지에 우리 아이들이 개하고 한 가족이 되었다. “뭐라구요?”하며 어이없어하는 나를 내자가 얼른 집안으로 들이면서 “같이 사는 이웃이에요. 우리는 금세 떠나지만…” “아니 그래도 그렇지. 자기가 개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야 그렇다 치지만 우리 애들이 왜 개가 되어야 하는데?” 그런데 화를 내는 나만 이상한 사람이다. 장모님도 “요즘 다들 그렇게 불러. 개를 자식처럼 생각하면서 자신을 엄마 아빠라고 하는 걸 무얼 그러나?” 아이들도 거들었다. “아버지가 참으세요. 그 아줌마가 나쁜 뜻으로 그런 것도 아닌데….”
“내 참! 조선말 정수동한테 당한 노인네는 절이나 받고 개 형님이 되었지. 나는 그냥 문 앞에서 찬바람 맞으며 개 아버지가 되고 말았네.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곤 유심히 보니, 강아지를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는 아줌마도 있고, 산책길에 강아지를 보고 “체리야! 엄마 여기 있어. 같이 가야지!”하며 가족임을 강조하는 아줌마도 있다. 뿐만 아니라 가축병원에 애완견을 진찰한다고 하면서 ‘MRI, CT촬영장비 완비’라고 써놓은 애완동물전문병원도 눈에 띤다. 이제는 애완견 전용 TV프로그램을 방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개엄마나 개아범이 출근했을 때 혼자 남은 애완견이 심심하지 않도록 틀어놓는 용도란다. 미국과 이스라엘에 이어서 세 번째로 방영되는 것이라고 자랑이다. 이미 애완견을 돌봐주는 로봇(다윈봇)도 시판중이라고 한다. “참! 내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구나! 겸애가 개에게까지 미치는구나!”하면서도 세상이 개판이 되어가는 것인가 하는 찜찜함이 앞선다. 아마도 사람에 대한 불신과 외로움 속에 정을 줄 데가 없어서, 의리와 충성심이 있는 개를 위하기로 했나보다. 그렇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기계나 애완견 보다는 사람을 사귀는 것이 정도가 아닐까? 易에서도 “크게 어렵고 외롭더라도 사람으로서의 중정한 도를 지키고 있으면 친구가 온다”고 하지 않았는가?
尹相喆(대유학당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