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수 / 전북대 철학과 교수
자하가 말하였다. “벼슬을 하고 남은 힘이 있거든 배우고, 배우고 남은 힘이 있거든 벼슬을 해야 한다.”(子夏曰 仕而優則學하고 學而優則仕니라.「子張」13)
『목민심서(牧民心書, 1818)』는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신유사옥(辛酉邪獄: 1801)에 연루되어 전라남도 강진(康津)에 유배된 지 18년째 되던 해에 저술한 책이다. ‘지방관의 책임과 임무’에 관해 쓴 책의 제목을 『목민심서』로 정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다산은 목민관(牧民官)이 되어 자신이 직접 좋은 지방행정을 펼치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 그는 귀양지에 있는 한낱 죄인의 몸으로 자신의 소망을 담아 마음으로만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마음의 글’이란 의미에서 ‘심서(心書)’라는 제목을 정했다고 <서문(序文)>에서 밝히고 있다. 전체 12편(각 편마다 6개조), 총 72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지방관이 부임할 때부터 퇴임할 때까지의 일들을 항목별로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현재에도 대한민국 공무원 교육의 필수교재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목민심서』에는 “다른 벼슬은 구해도 좋으나, 목민의 벼슬은 구해서는 안 된다(부임편 제1조)”라고 쓰여 있다. 다산은 백성과 나라를 향한 뜨거운 사랑과 열정이 있는 사람만이 목민관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만 백성들은 그 목민관을 신뢰하고 존경하며 그 권위에 복종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만약 일신(一身)의 안락만을 위해 목민관이 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기에게 부여된 권한과 책임을 사적인 이익 추구에만 활용할 것이다. 따라서 다산은 목민관이 되는 필수조건으로 애국(愛國)・애민(愛民) 정신을 강조한다.
학문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 배움을 통해 앎을 완성하는 것인가? 아니면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는 것인가? 이러한 물음은 ‘공부가 우선인가’, ‘실천이 우선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학문의 길에 있는 각자의 처지와 조건, 주어진 객관적인 상황이 저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학문의 길에서는 앎[지(知)]과 실천[행(行)]이 모두 중요하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만약 앎이 부족하다면 실천의 동력과 지속력은 자연히 감소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지식은 한낱 책상에만 머무르는 탁상공론이 되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이 때문에 공자는 자공(子貢)에게 “먼저 그 말을 실행하고 뒤에 따르는 사람이 바로 군자다.(「위정」13)”라고 말한다. 이는 얼핏 보면 ‘말보다는 실천이 앞서야 한다’는 의미로 보이지만, 언행일치(言行一致)의 중요성을 언급한 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산 역시 『목민심서』 <서문>에서 “군자의 학문은 수신(修身)이 반이요, 목민(牧民)이 반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학문을 하는 이유와 목적을 잘 설명해 주는 말이다.
중국 남조(南朝)시대 주흥사(周興嗣: 470-521)가 지은 『천자문(千字文)』에 보면, ‘학우등사(學優登仕) 섭직종정(攝職從政)’이란 구절이 있다. “배움이 넉넉하면 벼슬에 올라 직위를 얻어 정치에 종사한다”는 뜻이다. 물론 학문의 목적이 벼슬길에 올라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학문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혀 전문지식을 쌓았다면, 많은 사람들을 위해 그동안 쌓아온 지식을 널리 베푸는 것이야말로 지식인의 도덕적 의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때의 벼슬이란 개인적인 부귀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한 봉사의 길이요 신성한 의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배움을 통해 지식을 쌓은 군자가 벼슬에 오른다는 것은 학문의 완성인 동시에 아름다운 선택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