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수 / 전북대 철학과 교수
요임금이 말하였다. “아! 너 순아, 하늘의 운수가 너의 몸에 있으니, 진실로 그 중용(中庸)을 잡아라. 사해가 곤궁하면 하늘의 복록이 영원히 끊어질 것이다.” 순임금도 이 말로 우임금에게 명하였다.(堯曰 咨爾舜아 天之曆數在爾躬하니 允執其中하라 四海困窮하면 天祿이 永終하리라 舜이 亦以命禹하시니라.「堯曰」1)
축구나 야구, 농구나 배구 같은 스포츠 경기를 생각해 보자. 양 팀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를 보며 관중들은 열광할 것이다. 그런데 선수들 이외에 경기를 더욱 재미있게 만드는 중요한 사람이 있다. 그건 바로 휘슬(whistle)을 들고 있는 심판이다. 심판은 경기 중에 정확한 중립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심판이 어느 한 팀만 유리하게 판정을 내리는 순간 재미있던 경기는 순식간에 관중들의 야유와 비난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심판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경기규칙을 숙지하고, 이 규칙을 선수들에게 공지하여 반칙을 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또한 경기 중 반칙이 발생했을 때, 중립적 위치에서 공정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처럼 최고의 심판은 스포츠 경기를 더욱 재미있게 만들고, 양 팀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심판의 중요성은 비단 스포츠 경기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니다. 어떤 사회단체의 대표자 혹은 국가를 책임지는 지도자 역시 스포츠 경기의 심판과 같은 존재이다. 이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한 쪽만을 유리하게 하거나 다른 한 쪽을 불리하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언제나 양자를 모두 고려한 상태에서 최대한 공정하게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구성원들로부터 진정한 지지와 공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학에서는 사람이 학문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경지를 중용(中庸)이라고 말한다. 중용은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런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때문에 공자는 “중용의 덕(德)이 지극하다. 중용을 실천할 수 있는 백성이 적어진지 오래되었다.(「옹야」27)” 혹은 “천하 사람들도 평등하게 할 수 있고, 높은 벼슬도 사양할 수 있으며, 날카로운 칼날도 맨발로 밟을 수 있지만, 중용은 어려운 일이다.(『중용』9장)”라고 말한다.
정치를 통해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도 중용을 실천하는 것보다는 어렵지 않다는 말이니, 중용이 어떤 경지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공자는 “군자는 중용을 행하고, 소인은 중용에 위배된다.(『중용』2장)”라고 말하며 중용의 실천 여부에 따라 군자와 소인을 구분하기도 한다. 결국 쉽게 도달할 수는 없지만, 중용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 바로 군자인 것이다. 유교적 전통에 따르면, 현명하고 공평무사(公平無私)한 사람을 군자라고 부르며 그들에게 위정자로서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반면, 군자와 정반대로 행동하는 소인의 경우는 비난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 이유는 매사에 치우친 판단과 과도한 행동을 일삼기 때문이다.
중국 고대의 성왕(聖王)이었던 요(堯)임금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왕위를 넘겨줄 순(舜)에게 이렇게 당부하고 있다. “이제 너의 덕(德)이 하늘의 뜻에 합당하여 왕의 자리를 너에게 주겠노라. 그러나 천명(天命)을 받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천하 만물에는 모두 중(中)의 도리가 있고 하늘의 이치가 있다. 네가 마음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하지 말고 일을 처리할 때마다 진실로 중용을 잡아 백성을 다스린다면, 온 천하가 그 덕(德)을 입어 천명을 오래도록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중용을 잡지 못하여 천하의 백성들을 곤궁하게 만든다면 천명이 영원히 끊어져 버릴 것이니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 여기에서 등장한 말이 바로 ‘진실로 중용을 잡음’이라는 말이다. 결국 천하를 잘 다스리는 방법이란 설명하기 어려운 고차원적인 원리가 아니라 그저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중심잡기’인 셈이다.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유언으로 남긴 윤집기중(允執其中)이란 4글자는 순임금에 의해 다시 16글자로 정리되어 우(禹)임금에게 계승된다. 이것이 바로 『서경(書經)』「대우모(大禹謨)」에 나오는 “인심(人心)은 위태하고 도심(道心)은 미세하니, 정밀하게 살피고 한결같이 해야 진실로 그 중도를 잡는 것이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이다. 이 구절의 의미는 ‘육체의 욕구에서 나온 인심(人心)은 항상 한쪽으로 치우치고 위태롭지만, 본성의 의리에서 나온 도심(道心)은 밝히기가 어렵고 어두워지기 쉽기 때문에 미세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쉽게 표출되는 인심이 아닌 내면 깊은 곳에 있는 도심을 밝혀 중용의 도리를 실천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결국 훌륭한 지도자란 매사에 중립(中立)을 지키고 공평함을 유지할 때 그 판단의 공정성과 진정성을 확보하게 된다는 말이다.